
아바타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한의사들 요즘 세상에 맞는 일 하고 있나?
아바타(Avatar)라는 영화의 국내 흥행 성적이 13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대한민국 국민을 아바타를 본 사람과 아바타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엄청난 광고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실제 아바타 3D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고 아바타와 관련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뒷이야기는 영화보다도 더욱 흥미로웠다.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스토리를 틈틈이 습작으로 남기는 것이 취미였던 트럭운전사 제임스 카메룬은 1977년 <스타워즈>를 본 이후 본인이 꿈꾸어왔던 시나리오가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시나리오 집필과 특수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1984년 처음으로 <터미네이터>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그 이후 <에어리언2><터미네이터2><트루 라이즈><타이타닉>을 통해 흥행성과 작품성을 보장하는 헐리우드의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실제로 2009년에 나온 <아바타>의 각본은 1995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처음의 시나리오는 지구가 황무지로 변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이 파란 피부의 토착민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파견되어 자신의 DNA가 주입된 아바타를 통해 임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이었고 그 당시 카메룬 감독의 머릿속을 차지하던 이러한 구상을 시나리오로 옮기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2주에 불과했다고 한다.
처음 시나리오가 최종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다름 아닌 기술력 보완을 통한 보다 섬세하고 완벽한 화면을 원했던 그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기존의 모션 캡쳐(motion capture)라는 방식이 아닌 이모션 캡쳐(emotion capture)를 이용하여 배우들간의 터치(touch), 세밀한 표정연기 등을 보여줄 수 있었고 가상 카메라(virtual camera)를 개발하여 살아있는 실제 인물과 동일한 CG(computer graphic)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작업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14년이라는 시간을 끊임없이 구상하고 기술적 뒷받침을 같이 고민하며 기다렸다는 것도 존경스럽지만 4년간의 긴 제작기간을 통해 거의 100%에 가까운 완성도를 이루어냈다는 것 역시 카메룬만의 독보적인 면모이다.
그저 화면 속에서만 살아있는 영화 속 세상이지만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을 포함한 모든 공간을 창조하면서 세계 일류의 예술가들을 동원해 영화 속 등장 인물과 생물체, 의상, 무기, 운송수단, 환경 등을 디자인했으며 언어학자 폴 프롬머 도움을 받아 13개월만에 판도라의 토착 종족 나비(Na’vi)족의 언어를 탄생시켰고, 그것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배우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UC 리버사이드의 식물학부 학과장 조디 홀트를 고용해 왜 판도라의 식물들이 밤이 되면 형광빛을 띠는지, 어떤 원리로 하늘 위에 산이 떠 있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근거들을 만들어냈으며 그 밖에도 천체 물리학자와 음악 전문가, 인류학자들이 힘을 합쳐 판도라의 대기 밀도를 계산하고, 나비(Na’vi)족들의 음악을 창조했다고 하니, 영화 한 편에 18년이라는 시간이 소비되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아바타와 같은 소위 잘나가는 “요즘 영화” 한 편을 보며 “요즘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대개 품질이 뒤떨어진 물건이나 혹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들을 접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라고 말이다. “요즘 세상”에 한의학을 공부한 나를 혹은 우리를 되돌아보자. 의사들이 가장 자주하는 한의학 폄하 발언 중 하나인 “저는 태어나서 한약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구요, 한의원이 뭐하는 데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접할 일이 없는 한의학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의사들은 “요즘 세상”에 맞는 공부를 하고 “요즘 세상”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의사들의 시대적 소명, 아니 그런 거창한 주제들을 떠나 아주 소박하게 한의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을 우선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다. 한의사라는 존재의 유무가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까?
최근 의료일원화 관련 토론회에 나온 “한까”(한의학을 한없이 무시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이르는 인터넷 속어) 의사로 유명한 모 선생님께서 “현대 천문학이 밝히지 못하는 분야가 많다고 해서 천문학 분야의 지식을 점성술사에게 묻고 의지할 수 없듯이 현대의학이 질병과 치료방법에 있어서 아직 다 밝히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고 해서 그런 부족함을 한의사들이나 대체보완의학에서 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의사들에게 점성술사 취급을 받는 한의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화가 끓어오르지만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는 의사들에게만 과연 잘못이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도 동시에 가져보게 된다. “한의학이 다 그렇지 뭐…” 라는 식의 자포자기 분위기로 대표되는 우리의 안일함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여 결국 이러한 문제는 “다, 내 탓이오…” 라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통해야만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점성술사 취급을 받는다는 억울함을 우리가 아닌 그 다른 어떤 사람이 과연 풀어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14년을 기다린 끝에 여러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아바타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오랜 세월 한의계에 흘러다니는 암묵적인 합의와도 같은 한 문장이 퍼뜩 떠오른다. “침, 뜸, 한약은 절대적으로 우수한 치료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많은 효과들을 검증해 내기에는 현대과학이 아직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라는 우리끼리만 통용되는 사실 아닌 사실 말이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룬과 한의계의 지난 세월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카메룬은 14년을 그냥 기다리지 않았다. 그 과정 중에 끊임없이 다른 유사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감독하며 많은 기술들을 시험해보고 시도해보고 실패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배웠던 그 귀한 실패의 값을 치루었기에 가능한 2009년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1980년 당시의 한의학과 2010년 오늘의 한의학을 비교해 보자. 이 30년이라는 시간의 추이 속에 한의학은 과연 얼마만큼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 왔을까? 물론 변한 것도 많다. “많이 발전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외부적인 변화는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것 말고 내부적인 혹은 보다 근본적인 학문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면 “YES”라는 대답이 나오기에는 아직도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스페인 피부과의사 한 분을 치료할 기회가 있었다. 늘 두통으로 고생해 오던 중 한국에 학회 참석차 들렀다가 침 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일행 중에 한 명이었던 내 친구가 나를 떠올리고 급히 연락을 취해서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효전한의원 송정화 원장님이 계셔서 원장님께 모시고 가서 미용침(cosmetic acupuncture)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드렸고 약간의 좌측 안구쪽 통증이 남아 있다고 하셔서 다시 호텔로 돌아와 한 번 더 침 치료를 해 드렸다.
타이레놀을 오랫동안 복용했었지만 별다른 호전이 없었던 Dr. Jane은 정말 머리가 맑아졌다며 이것저것 내게 물어오시는데 내가 알고 있는 한의학적 지식을 정확한 영어로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어느새 머릿속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갑자기 Dr. Jane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영화 <Paranormal Activity>를 보았냐면서, 본인 생각에 전통의학의 많은 부분이 “paranormal activity”인 것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내는데도 아직도 침을 포함한 전통의학이 보편적인 의학이 되지 못한다면 영원히 paranormal acitivy(초자연적인 현상)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말이다.
스페인 의사의 입에서 듣게 된 “한의학=paranormal activity?” 라는 이야기와 한까 원장님의 “한의사=점성술사?” 라는 이야기가 묘하게 오버랩(overlap)되는 듯 했다. 한의계도 카메룬 감독처럼 14년의 기다림과 4년의 제작과정을 통해 <아바타>같은 전세계적인 작품 한 번 내 놓을 수 없을까?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1700만원의 제작비로 7000배의 수익을 낸 것처럼 한의학이 돈이 되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그런 효자상품이 되어볼 순 없을까?
“국립 최초”의 꼬리를 달고 곧 200병상 규모로 개원을 앞둔 부산대학교 한방병원에서 바라다 본 경남 양산의 허허롭게 비어 있는 땅이 오늘따라 처연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는 이 빈 공간을 무엇으로 과연 채워야 할까? 과연 채울꺼리가 있기는 하는 걸까? 한의학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남지 않기 위한 대책을 위해 오늘부터라도 14년 후의 대박 작품을 위한 구상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다.
카메룬, Help me!!
◇신미숙 교수와 Dr.J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