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4년 거행된 한의사단체 동서의학연구회의 진흥대회
“한의사들의 지위를 보장하라”
1934년 10월15일에 한의사단체인 東西醫學硏究會에서는 진흥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임원진을 확충한다. 이것은 그해 10월19일자 東亞日報의 “全國 漢醫師들로 구성된 東西醫學硏究會는 定期總會를 개최하고 機關紙 「東洋醫學」의 發刊 漢醫學敎育機關의 設置 및 漢方醫學業者의 地位保障 등을 討議決定하다”라는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동서의학연구회는 한의사들의 친목과 학술 진흥을 목적으로 1921년 설립된 단체이다. 초창기에 ‘東西醫學硏究會月報’등을 간행하고 김성기, 지석영, 김재순, 이완규, 김명녀 등이 연이어 회장을 하면서 회세의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일제의 감찰 등 탄압으로 인하여 활동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東西醫學硏究會月報’는 1923년부터 1925년까지 혁신호를 포함해서 모두 7회에 걸쳐 간행되고는 중단되고 만 것이다. 이후로 활동도 10여년간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의학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는 우려 속에 1934년 진흥대회를 개최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이날 회장으로 金明汝이 선출되었고, 부회장에 安孝式, 李明善, 간사에 김동훈, 김연환, 김영훈, 조헌영, 이원모 등이 선임되었다.
동서의학연구회에서는 順化病院에 한의사 李乙雨를 선정·추천한 것과 함경북도 위생과와 전주약령시 등이 주체되어 한의학강습회를 할 때에 田光玉을 강사로 추천한 것 등을 그간의 공적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져 1930년대 중기까지 한의학은 폐절되지 않고 이어지게 된 것이다.
1934년 10월15일 동서의학연구회진흥대회 석상에서 공포된 ‘東西醫學硏究會振興大會趣旨’라는 제목의 취지문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全世界的으로 漢方醫學의 價値가 漸次認證되어서 漢醫學振興의 機運이 濃厚한 이때에 朝鮮서는 그와 反對로 있던 漢醫學이 絶廢되랴는 狀態에 있다. 이어찌 痛歎할 일이 아니랴.
漢醫學敎育機關은 아직 設置되지 않고 漢方醫生試驗制度까지 未久에 法令上으로 廢止된다고하니 이 때에 袖手傍觀의 態度를 繼續한다면 朝鮮의 漢醫學이 絶廢되고 말 것은 免할 수 없는 事實이며 그것이 먼 將來에 있지도 않고 目前에 발서 닥처온 일이다.
우리 東西醫學硏究會가 漢醫學의 發展과 漢方醫藥業者의 地位向上을 目的하고 創立된지 이미 十餘年이 되었으나 이러타는 業績을 나타내지 못하고 갖은 醜態를 演出하다가 近來에 와서는 全然침息狀態에 빠진 것은 實로 참愧를 禁치 못하며 그 責任을 우리 全會員이 다같이 저야 할 것이다.
朝鮮은 古來로 世界無比의 靈藥인 人蔘을 비롯하야 효力이 特이 優秀한 漢藥의 産地로 有名하며 漢醫學의 發源地는 支那나 朝鮮에 와서 더욱 많이 發展되고 더욱 많이 普及된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經驗하는 돈적게 들고 神奇하게 病이 쉽게 낫는 이貴重한 醫學을 우리 代에 와서 絶廢시킨다는 것은 數千年來 祖先의 努力을 저바리는 것이오 적게는 朝鮮民衆에게 크게는 全人類에게 다시없는 罪惡을 犯하는 것이다. 어찌 그 뿐이랴 우리의 無能은 全朝鮮漢方醫藥業者의 地位를 危殆케 하야 스스로 그 生命線을 끊고 坐而待死하는 불상하고 어리석은 處地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重大한 時期에 臨하였으며 一方으로 新聞紙上에 新進學者들이 漢醫學振興의 必要를 高調하는 것을 볼 때에 있는 힘을 다하야 勇敢히 이러서지 않을 수 없다. 이 機會에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안으로는 漢醫學의 學術的發展을 圖하고 밖으로는 漢方醫藥業者의 地位의 向上保障을 힘쓰며 한거름 나아가서 漢醫學敎育機關의 設置, 漢醫存續의 方途를 講究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本大會를 開催하는 것이다.”
<- 1934년 동서의학연구회에서 공표한 진흥대회 취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