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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정우열 교수의 노자이야기 完

정우열 교수의 노자이야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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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아는 것이 진정한 밝음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남을 아는 것이 지혜[智]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이고, 남을 이김이 힘 있음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이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부유함이고, 힘써 행하는 것이 뜻있음이며 제자리를 잃지 않음이 오래가는 것이고 죽어도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壽)를 누리는 것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지(智)’라고 했는데, 이때의 ‘지(智)’는 ‘지략(智略)’이나 ‘지모(智謀)’ 같은 말에서 보는 것과 같은 훌륭한 지혜가 아닌 ‘꾀’ 같은 것이다. ‘인(人)’은 나를 포함한 보통사람으로 뒤의 ‘자(自)’와 대를 이룬다. 대를 이루지만 서로 배타되는 대가 아니라 ‘나 없는 너 없고, 너 없는 나 없다’는 표리관계의 대(對)인 것이다.



자기를 이기려면 정말로 강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자기를 아는 것이 ‘명(明)’이라고 했다. 이때의 ‘명(明)’은 사물의 깊은 이치를 깨닫는 체험적 인식능력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지(智 )’나 ‘명(明)’은 안팎으로 환하게 깨달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려면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는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철학과 같은 학문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문화적·역사적 맥락 등을 알아 보려한다. 그러나 상대방이나 인간전체의 외적·객관적 사실만 아는 앎은 피상적인 ‘지(智)’에 불과하므로 불충분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는데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네 주제를 파악하라’는 말이다. 남을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이기려면 ‘정말로 강함’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강함’이라고 했을 때 ‘강(强)’이라는 글자를 썼는데, 이는 『노자』 전체를 통해볼 때 무력·폭력을 뜻하는 말로서 배격해야할 것으로 쓰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기를 쳐 이김이 바로 그 ‘강(强)’이라는 것이다.



즉 ‘강(强)’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는 덮어놓고 힘을 쓰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면적 강함이다. 예를 들어 남에게 한대 얻어맞았을 때 당장 맞아 죽는 일이 있더라도 일어나 대들고 싸우는 것을 보통 ‘용기’있는 일이라 한다.



사실 이런 ‘용기’는 정말 비겁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강함(깡다구)이다. 그러나 화가 나더라도 참고(사실 엄격히 말하면, 도에 따라 사물을 보는 사람은 화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팔팔한 기백을 죽인 채, 차분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함으로 상대방이 꼼짝 못하도록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강함이다. 이것은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히브리성서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리라”(잠 16:32)고 한 말이 있다. “자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함(知足者富)”이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명한 일이다. 성서에서 바울도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느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고 했다.



요즘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적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 ‘필요(need)’보다도 ‘욕심(greed)’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또 ‘강행함이 뜻있음(强行者有志)’이라고 할 때의 ‘강행’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유가나 법가에서 주장하듯, 남보다 뛰어나려고 불철주야 노력해서 자기의 뜻[志]을 편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도와 하나 되기 위해 근면역행(勤勉力行)하고, 그러다 보면 도와 하나 되겠다던 본래의 뜻이 어우러짐을 뜻하는 것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도(道)의 것이로다



성서적으로 보면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의 본래 자리는 도의 자리이다. 이 자리를 잃지 않고 지킴이 영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죽어도 멸망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장수라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久]’이니 ‘장수[壽]’니 하는 말은 몸은 죽지만 영혼은 살아 남는다는 서양의 영혼불멸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개체로서의 우리 몸이 영원이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중국고대의 양생술이나 신선술의 입장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의 상대적 이원성을 초월하여 도와 하나됨으로 도에 따라 생성 변화하고, 도에 따라 생성 변화함으로써 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함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도의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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