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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신미숙 교수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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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이프 한의사회가 결성된다면

우리가 고발해야 할 우리는 누구인가?



2009년 11월1일, 30~40대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로 이루어진 프로라이프 의사회(‘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명칭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프로라이프 의사회(www.prolife-dr.org)로 명칭이 변경됨. 프로라이프(prolife)라는 명칭은 1960~70년대 미국에서 태아의 생명을 지지하는 ‘pro-life’와 산모의 선택을 지지하는 ‘pro-choice’간의 논쟁에서 유래했다고 함)는 낙태 근절을 위한 행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의미로 향후 낙태시술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에 이어 대국민 호소문과 결의문까지 한꺼번에 내놓았는데, 성명서에서 의사들은 과거 비윤리적으로 낙태가 만연된 사실에 대해 가장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어서 “사회, 경제적 사유와 태아 이상으로 인한 임신 중절은 현행법상 모두 불법 낙태”라고 강조하며 엄정한 법집행과 낙태 근절운동에 일반 시민들이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의사들의 희생적인 행보는 “아주 잠깐만, 낙태시술을 금지하자”는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불법 행위 자체를 없애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의 하나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커 보인다. 실제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2010년 2월 초, 불법 낙태수술을 하는 병원 3곳과 의사 8명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고 그저 물 밑에서 쉬쉬하던 낙태 논쟁을 수면 위로 올려놓음은 물론 대한민국 전역을 그야말로 ‘낙태’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는 지난 2월21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낙태,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프로그램의 방송으로 이어져 낙태가 대한민국의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였다.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시도와 용기에 ‘신선하다’는 단순무식한 한 줄 감상평 밖에 내놓을 수 없지만, 그 무엇보다도 젊은 의사들이 이 크고 무겁고 어둡고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은 산부인과 의사 즉, 본인들의 치부를 스스로 열어젖히고 암묵적으로 고이고이 내려오던 선배 의사들의 환부에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에 눈물겨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료가 동료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의 어려움은 그 고발을 결심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고발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결심보다도 수십 배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뻔하게 예상되는 터, 혹여라도 어느 동료 의사 혹은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선배 원로 의사들에게 몸서리쳐지는 협박을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괜한 조바심마저 든다. 어떤 상황이었든 “이건 솔직히 옳지 않아!”라는 큰 결심 하에 “낙태시장”이라고까지 불리우는 이 시장을 감히 발로 뻥 차버릴 수 있는 그들의 쿨(cool)함에 경외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이번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대국민 성명 및 언론보도 등을 살펴보며 나는 내심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원래 명칭이었던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명칭이 주는 찡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약 2년 전, 대한병원협회에서 발표한 후반기 전공의 모집 현황을 보면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은 모집정원을 모두 초과한 반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은 미달됐으며, 흉부외과, 예방의학과 등은 지원자가 한명도 없다고 한다. 특히나 산부인과는 사후피임약이니, 출산파업이니 등등의 이유로 이미 개원가에서는 “산부인과는 갈수록 쪽박이다”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 지 몇 년 되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윤리성’을 추구하며 소위 “착하게 살기”를 하겠다고 선언하신 셈이니… 누가 이들을 나무라겠는가? 고발당한 동료 의사들마저 솔직히 억울해하기에는 명분이 없지 않는가?



“의사가 의사를 고발한다”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발칙한 도발은 일시적인 사회현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선, 의사가 의사를 고발했다는 것 자체가 내부정화를 스스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도덕성을 의사 전체들에게 나눠준 셈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더라도 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 즉 긍정적인 가치를 위해 본인의 밥그릇을 버리겠다는 프로라이프 의사들에게 어느 누가 박수를 치지 않으리오?



몇몇 의식있고 희생정신 있는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 덕분에 ‘산부인과 의사들’ 그리고 ‘낙태’가 사회의 중심이슈로 떠오르면서 “의사들은 공익의 가치를 위해 앞장서고 있으며 의사들은 사회의 이슈를 이끌어가는 집단이고 의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참으로 윤리적이고 정의롭다”라고 하는 꿀떡같은 칭찬을 국민들로부터 얻게 된 것이 내심 부럽다.

그리고 이제 거울에 비친 나를, 우리를, 그리고 젊은 한의사들을 생각해본다. 우리에게는 ‘진정으로 한의학을 걱정하는 한의사들의 모임’이라는 게 있었던가? 내가 보기에는 갈수록 ‘진정으로 내 한의원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의사들의 모임’만 팽창하고 있는 느낌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같은 한의학, 한의사들의 윤리성을 반성하고 고발하는 소위 ‘프로라이프 한의사회’(가칭)라도 조직이 된다면 우리가 고발해야할 우리는 누구일까?



태반주사도 근거불충분으로 시장에서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고 하는데 일선 한의원에서 수백만원씩 받으며 시행하고 있는 그 많은 비보험의 패키지 치료들은 충분한 치료효과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돈 없는 후배들에게 진료 참관의 값으로, 혹은 비법 전수의 값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하시는 잘 나가는 선배님들을 이참에 싸그리 고발해 버릴까? 아니면, 한 해 수백명의 죄 없는, 철 없는 거기에 실력도 감각도 비전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한의사들을 양산해내는 한의대 교수들을 모두 고발해 버릴까? 우리끼리만 알아주는 석사·박사인 허당스러운 학위를 거래하는 한의대를 그저 재단에 돈 벌어주는 두둑한 지갑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11개 사립대들을 고발해 버릴까?



우리 스스로가 한의계 이곳저곳에 산재해있는 암 덩어리들을 도려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언론으로부터 혹은 타 직능단체로부터 한의학 관련 부정적 보도를 끝도 없이 듣게 될 것이고 바깥에서 날아온 화살들에 일일이 맞대응하느라, 혹은 늘 변명으로 가득찬 사후약방문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한의사가 동료 한의사를 고발할 수 있는 자체 정화시스템을 마련하여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과정을 겪어내야만, 그 많은 문제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맘 편하게 당당하게 진료에만 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반대 사회운동의 깃발을 보며 이 시대의 젊은 한의사들은 어떤 가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을까를 반성해보게 된다. 진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익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온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한의사들의 윤리성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그런 운동 말이다. 이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쏠린 사회적 관심에 유난히 눈길이 갔던 것은 늘 주변학문으로 취급당하는 한의학, 그 한의학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 나도 주인공 한 번 하고 싶다…” 는 치기어린 질투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민건강보험 점유율 5%에도 못 미치는 완벽한 비민족의학이 되어버린지 오래인 변두리의학 한의학을 언제까지 ‘민족의학=한의학’이라고 억지만 부릴 것인가?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을 진학하고 찻집을 하고 혹은 사업을 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해외에서 여행사를 하고 사법고시를 보는 그야말로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진출하는 한의사들이 많아지는 작금의 상황이 과연 한의학과 한의사의 외연을 넓히는 것일까? 아니면 한의학에서 본질을 찾지 못한 한의계 인재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발악일까? 자꾸 다른 분야로 도전하는 이런 추세가 한의계에 득일까 아니면 독일까?



한의학과 한의사는 이 사회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진정으로 한의학을 걱정하는 젊은 한의사들의 모임’이라도 하나 결성해서 긍정 마인드로 점철된 한의사들을 모집하고 한의학의 진정성과 한의사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전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어 그렇게도 외쳤던 ‘한의학의 세계화’의 첫발까지도 내딛을 수 있는 가슴 찡한 그 무엇, 그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좀 뛰어 봐야 할 때가 온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1993년 한약분쟁 당시 끝도 없는 토론으로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던 과거의 한의대 용사들은 다들 어디에 숨어계실까?



다들 생활의 달인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 뒤치다꺼리 하시느라 하루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들 계시겠지. 프랑스 시인 폴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다지…. 우리 젊은 한의사들 모두가 가치 있는 일에 재미있는 도전을 시도해 보는 용기를 내어보았으면 좋겠다. 우선은 강단에 서는 축복을 가끔 망각하고 지내는 나부터 먼저 변해야 할테고…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다보면 “진짜 피로회복제는 한의원에 있습니다”라는 광고를 TV에서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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