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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이수진 교수

이수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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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학 표준화에 앞장서자”

하나의 표준 제정은 국제적으로 큰 파급효과 가져

국제표준 선도는 한의학 세계화·국제화의 ‘지름길’



우리는 하루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표준에 둘러싸여 살고 있을까? 시간에도 표준이 있어 우리는 시간 약속을 정할 수 있고, 아침에도 시간에 맞춰 일어날 수 있다. 1초의 표준은 세슘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세수를 할 때도 지름 15mm라는 일정한 표준과 국제규격에 따라 제조된 수도꼭지를 사용하며, 한국의 표준 전기인 220V와 두 개의 둥근 핀이 달린 모양이 표준인 플러그를 이용해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게 된다.



집 밖의 세상에서는 더욱 많은 표준을 발견하게 되는데 적색과 녹색이라는 신호등 색깔은 세계 공용이며, 공공안내표지 표준인 그림 기호는 글보다 더욱 손쉽게 정보를 전해주게 된다. 컴퓨터를 켜면 PC 운영방식의 국제표준인 윈도우즈 및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인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게 되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표준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많은 표준들에 둘러싸여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컴퓨터를 구동시키는 운영체계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윈도우즈이고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익스플로러이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즈 95라는 운용체계를 표준화시켜 세계적으로 통용시킴으로써 현재 전 세계 PC 시장의 95%를 장악해 세계적인 갑부가 됐다.



빌 게이츠의 사업방식에 대해 독점과 불공정거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고, 현재는 표준 제정 과정에서 협의를 중요시하므로 빌 게이츠처럼 독점적으로 PC 회사에 운용체계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표준을 만들 수는 없게 됐으나 윈도우즈가 사용자의 편리성과 호환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이었기에 세계 PC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반면에 애플사의 컴퓨터 운용체계인 Mac OS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 시리즈보다 한수 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윈도우즈에서 자랑하는 장점들을 이미 Mac OS에서 구현되었던 기술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c OS는 PC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으니 Mac OS는 자사의 컴퓨터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운용체계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 사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세계 표준으로 만듦으로써 전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으며 현재 빌 게이츠는 세계 표준의 신화로 불리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표준이란 협의에 의해 작성되고 인정된 기관에 의해 승인됐으며,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적 수준의 성취를 목적으로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사용을 목적으로 규칙, 지침, 또는 특성을 제공하는 문서를 의미한다.

즉, 표준이란 공인된 기관이 정한 기술과 행동에 관한 모든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에 모든 위정자들은 정권을 잡으면 곧 표준을 제정해 그 국가와 사회를 장악하고자 했으니 진시황이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자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일했던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표준이 국제적으로도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근래의 일인데 세계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국제 거래에 국가들이 의존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국가간 교역 촉진을 위해 무역거래 방식과 물건, 서비스를 표준화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의 단일 국제표준의 영향력이 심화되고 표준이 시장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표준화 활동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며 그에 따라 각 국가 및 표준화 기구는 상호 협력 및 경쟁을 하면서 세계 표준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표준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유럽, 미국, 일본 등은 국제표준 선점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ISO 회의에 다년간 참가해 온 전문가들에 의하면 미국은 근래에 들어서 표준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표준전문가를 장기적으로 양성하고 있어 10~20년 이상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각 국가에서 국제 표준화 활동에 힘쓰고 있는 것은 표준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표준이 정해지고 나면 다른 것은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니만큼 치열한 경쟁이고 혹자들은 표준전쟁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표준이 국가나 사회의 흥망성쇠를 갈라놓았던 예는 많이 볼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시 남군은 소총의 표준이 없었지만 북군은 방아틀과 노리쇠를 바꿔 낄 수 있도록 소총을 표준화시킴으로써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1904년의 미국 볼티모어 대화재시 소방호스와 소화전의 규격이 서로 달라 호스를 소화전에 연결하지 못해 불길을 조기에 진화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어떤 하나의 표준이 정해지는 것이 당장 우리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수많은 표준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처럼 결국에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고, 국가와 회사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표준인 것이다.



근래 전통의학 표준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초기의 전통의학 국제 표준은 WHO를 중심으로 이뤄져서 경혈 명칭의 표준 등이 출판됐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적으로도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에서는 경혈위치의 표준이나 전통의학용어의 표준화를 이뤘으며 현재 WHO에서는 ICD-11 개정판에 전통의학 내용을 포함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에서도 전통의학과 관련된 전문위원회가 구성돼 전통의학의 국제적인 표준화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전통의학을 다루는 전문위원회인 TC249의 첫 번째 공식회의가 지난 6월 북경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quality와 safety를 다루는 working group을 만들고 한약과 침에 관한 내용을 먼저 다루는 것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으며 내년 초에 2차 회의가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위원회의 경우 중국이 ISO에 전문위원회의 신설을 제안했고 현재 간사국을 맡아 중의학 중심의 전통의학 표준화를 이루고자 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한국의 정책적 대응이 더욱 절실하다.



전문위원회의 이름만 하더라도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으로 정하려고 시도했으나 지난 1차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해 일단 다음 회의에서 정하는 것으로 미뤄놓은 상황이며, 다음 회의에서는 또 중국이 어떤 안건을 가지고 나올지 여부와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계속해서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한의사협회 산하의 표준연구원을 중심으로 이런 다양한 국제 전통의학 표준화활동에 대응하고 있으나, 아직 국내 한의계나 정부의 관심이 많이 미흡한 실정이다.



중국이 표준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한국보다 좀 늦은 시점으로 보이나 현재 상당히 저돌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ISO에 전문위원회의 신설을 요청함과 동시에 굉장히 어설프기는 하나 다양한 분야의 표준을 만들어 놓고, 그러한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정부·학계·전문가 집단이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정부나 학계, 전문가 집단의 관심과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인다.



표준이 우리 생활 주변에 스며들어 있으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의학이 이미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표준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표준은 이미 하나의 국가, 하나의 사회 안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갖게 된다.



전통의학의 국제표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때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한의학이 세계 속의 의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도 판가름 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의서인 동의보감은 세계 전통의학 서적 중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이미 세계 최초로 일회용 침의 국가표준을 만들어 가지고 있다.



근래에는 수천년의 임상경험을 다양한 기초 및 임상연구를 통해 국제적인 저널에도 많이 발표해 세계에 한의학을 알리고 있다. 그만큼 한의학은 세계로 뻗어나가기에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자신감과 관심, 그리고 지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한의학의 한국표준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표준이 있어야 국제기구에서 전통의학 표준을 만들고자 할 때 국제표준으로 제안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바로 한의학의 세계화와 국제화를 이뤄내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한의학은 이미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 최고의 한의학을 어떻게 국제표준으로 만들어 내고, 진정한 세계 최고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느냐에 모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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