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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안상우 박사

안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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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기념사업의 성과



열정과 환호로 맞이했던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이 지난 7월30일 벌써 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2007년 전국민의 기대와 한의계의 여망을 담아 출발했던 동의보감 기념사업은 출발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미력했지만 지난 3년간 쏟아부었던 노력과 애정만큼이나 성과도 컸고 애로도 많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400년 가까이 돌봄 없이 외면당해 오던 우리 의약의 원형이 3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첫 번째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수많은 뒷얘기와 기막힌 사연들이 점철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꼭 기억하고픈 일 3가지만 적어 남긴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심의위원회를 거쳐 한국등재후보로 선정되어야 했다. 우리가 사업을 맡기 전에 이미 2차례에 걸쳐 기록유산 등재 시도가 있었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점이 많아 제대로 심의대상에 오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문화재에 비하여 한의서는 과학기술서이고 문화재 분야에서는 다소 이질적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 유산으로서 동의보감의 장점을 부각하고자 몇 일 밤낮 고민을 거듭하였다. 우선 다른 문화재에 비해 해외에 널리 알려진 점을 적극 부각하기로 하였다.



고궁대첩과 첫눈 속의 낭보



2007년 12월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회의실에서 개최된 문화재위원회가 첫 번째 고비이자 성패의 분기점이었다. 우리는 국내 최고의 문화재 수장기관인 규장각이나 국학진흥원 같은 국내 유수기관과 경합해야 했다. 그날 우리의 맞상대였던 국학진흥원의 유교목판은 무려 7만여장이 수집된 대규모 컬렉션이고 국학 분야에선 대단히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기에 넘기 어려운 상대로 여겨졌다.



게다가 상대측은 기관장과 임원들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한 반면 우리는 실무자 몇 사람만 프레젠테이션에 응한 입장이어서 분위기가 압도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관련 자료를 입수하여 논리적으로 당위성을 치밀하게 구성하였고 동의보감의 역사문화적 가치 외에 국내외 인지도와 현재적 가치를 역설하였다.



그날 평소 조용히 우리 사업을 지원해 주었던 김춘근 과장이 현장에 찾아와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였고, 발표가 끝난 후 장시간 동안 격론이 이루어지는 내내 회의장 밖에서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결과를 기다려 주었다. 한참만에야 겨우 진행자를 통해 결과를 귀뜸받았고 감격의 환호성을 외칠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나오니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에선 소담한 눈꽃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축배와 뒤풀이가 이어져야 했으나 그분은 결과 보고를 이유로 축하말씀만 내려놓은 채 총총히 사라졌다.



그것이 그분과의 생전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간암 말기의 힘든 여건에서도 직무를 저버리지 않고 한의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던 그분의 정성을 등재가 확정될 때까지 내내 가슴에 묻어두고 지내야 했다. 나중 이날의 극적인 상황을 전해들은 동료는 한의학이 승리를 거둔 고궁대첩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한의학공정과 아시아 전통의학의 교류 협력



국내 단독 후보로 선정된 이후로 줄곧 동의보감의 세계사적 가치와 보존가치를 집약하는데 주력했지만 무엇보다도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다름 아닌 중국측의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몇 해 전에 한국측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한 강릉단오제에 대해 중국에서 유래한 단오절을 한국측이 빼앗아갔다는 네티즌들의 항의와 비난이 쇄도했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법으로 중국이 원조라고 자부하는 아시아의학의 종주국 자리를 한국에게 빼앗겼다는 시기어린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이미 중국측은 우리보다 앞서 중국전통의학의 8가지 분야에 대해 이미 무형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해 놓은 상황이였기에 더욱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거론된 소수민족의약에는 조의약(朝醫藥)도 포함되어 있어 그대로 무형유산에 등재된다면 한국의 사상체질의학을 비롯한 한의학의 기본이론과 진단치법 등 태반이 중의학으로 가름할 상황이었다. 다행이도 기록유산에 앞서 발표한 무형유산 등재에 중의학은 기각되었다.



등재 후에 중국의 네티즌들이 다소 예민하게 반응하였지만 자국내 자성론으로 이어져 예측보다는 그다지 거센 반발은 없었다. 올봄 일본에서 개최한 한·중·일 합동의사학 학술대회에서는 오히려 鄭金生·梁永宣 교수를 비롯한 중국측 참가자들은 이번 성과를 두고 전 아시아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한 공로가 크다며 크게 축하하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황제내경이나 상한론, 본초강목 같은 중국의학서가 다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라고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국한의계가 오히려 중의학계나 아시아 전통의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활로를 열어준 것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고대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공통된 의약문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특성을 갖고 발전해 왔다. 전통의학은 저급한 원조논쟁이나 상대비교가 아니라 교류협력을 통한 상생과 공존의 방향을 지향해야만 한다.



최종심의는 머나먼 이역 땅 카리브해의 고도 바베이도스에서 결정되게 되었다. 우리는 이름도 생소한 이곳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만에 세계지도나 지구본을 돌려야 했다. 날짜가 임박하자 무심한 듯 보이던 각계 분야에서 참가단이 급조되었고 우리의 과열된 분위기가 혹여 심사장의 국제여론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조심해야 할 정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사실 한국측은 무난히 등재되리라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지만 실제 본회의에서 탈락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고 만에 하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변수가 있을까봐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바베이도스에서 외친 동의보감, 꼬레아



지구 반대편에서 이루어진 그날의 쾌보는 우리 시각으로 새벽 3시경에 답지되었고 나는 휴가를 미뤄둔 채 가족들과 함께 불려나와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잠자리에 누웠다가 한밤 중에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한여름 밤에 서설이 내리는 듯한 청량감을 느꼈다. 새벽 동이 트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업단에 등청한 나는 그날 하루 내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각 방송사와 언론매체로부터 쇄도하는 인터뷰와 취재에 응해야 했다.



이후 달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지난 1년간 각계 요로에서 과분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한 남양주시에서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선정하는 다산문화대상을 수상한 것은 제세구민의 의학자로 자리매김할 다산선생의 탄생지에서 큰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포상금은 전액 장애인복지관에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의학 소개서를 점자책으로 개발하는 비용으로 기부하였다. 그것이 구암 선생이나 다산선현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라 생각하였지만 사업단의 동료들에게는 미안스럽기 그지없다.



최근 동의보감 간행 400주년을 기념하는 ‘2013 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지가 선정되었다. 2013년의 엑스포와 일련의 국제행사가 단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한의계의 중론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듯이 이제 우리는 동의보감의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한국의 전통의약을 전 세계로 진출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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