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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3일 (수)

한의사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란?

한의사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란?

7년간의 나무 진료소를 마치며---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 사회와 공동체에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정예원 한의사.png

처음 나무 진료소 요청이 들어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청소년 진료에 대한 의무감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진료 전 참고 사항에 ‘정규 교육에서 이탈한 청소년이 많으므로 학교생활에 관한 질문을 자제할 것’, ‘핸드폰, 카드와 같은 분실 위험이 있는 물품들은 상담 시 시야에서 제거할 것’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런 지침들을 전달받으며 ‘탈 가정 여성 청소년 상담과 진료라는 특수한 케이스를 관련 경험이 없는 한의사가 잘해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나무 진료소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나무 센터(장승배기역 소재)에서 월 1회 운영이 됐습니다. 센터를 방문하는 여성 청소년들은 가정 폭력을 경험하거나 탈가정한 경우가 많았으며, 범죄에 노출되거나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진료의 목적은 단순히 질병 치료에 있지 않아”

 

때문에 한의 진료의 목적은 단순히 질병 치료에 있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건강지식 함양, 생활습관 교정, 진료 도중 상담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위험 상황 포착, 활동가-기관과의 연계까지가 나무 진료소 한의사의 주된 업무였습니다.

 

활동 특성상 성 관련 민감도가 높았기에 참여 한의사와 진료 보조는 여성 의료진과 한의대생으로 구성됐습니다. 진료 시설과 자원이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 물자는 기본적으로 청년한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의료진은 환자 당 10~30분 정도의 긴 상담시간을 가지며, 여성 청소년이 처해 있는 위험 상황을 파악하는데 주력했습니다. 

 

7년간 누적 진료는 242회로 집계되었으며, 진료 과목은 근골격계 35.54%, 정신과 21.9%, 호흡기계 12.4%, 소화기 질환 9.92%, 면역질환 9.5% 미용·부인과·안과 2.5%를 차지했습니다.

 

진료 초기에는 근골격계, 소화기, 호흡기계 위주로 다빈도 질환을 예측하여 진료 물품을 준비해 갔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정신과 비중이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불안, 불면 등 정신과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정신과 처방약을 장기복용하고 있는 여성 청소년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주요 상담 내용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여성 청소년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기에 관련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 유사 성산업에 노출

 

FTM(Female to Male·여→남, 남성으로 전환), MTF(Male to Female·남→여, 여성으로 전환) 등 성 정체성의 과도기를 겪고 있거나 성적으로 소수자인 학생들도 종종 만났습니다. 성 정체성 문제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과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탈가정을 선택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열악한 환경 탓에 면역력 저하되어 만성적인 면역질환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도 많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부인과 질환과 성매개 감염(STD)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진료를 이어가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이 성매매나 유사 성산업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생계유지나 숙소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성이나 금전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 또한 문제 요인으로 보였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사회적 보호망의 부재와 돌봄의 사각지대, 어른들의 방관과 무책임이 있었습니다.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

 

2025년 12월. 서울시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7년간의 나무 진료소를 활동을 황망하게 마치게 됐습니다. 활동가들은 센터 내 청소년들을 타 기관과 연계하여 돌봄과 지원이 끊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저는 지난 진료 기록들을 정리하며 이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고문을 씁니다.

 

정예원 한의사2.jpg

 

아이 하나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 사회와 공동체에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 구성원인 성인으로서, 건강을 책임지는 직능을 가지고 있는 한의사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나무진료소에서 연대해주신 원장님들, 진료보조 학생분들,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원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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