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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❸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약의 효능은 기미론(氣味論)의 전통적 관점과 현대 과학적 접근(약리학, 천연물화학, 시스템 약리학)을 융합하여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 한의사가 임상 현장에서 처방을 할 때 가끔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이 한약의 유효성분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전통적 한의학과 현대 과학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는 약재의 효능을 설명할 때 기미론(氣味論)을 이용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미론이란 기(氣)와 미(味)를 통해 약재의 효능을 해석하는 이론으로, 수천 년간 한약의 효과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그래서 많은 한의사들이 이 질문에 대해 “한약은 성분으로 치료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자. 기미론에서 미(味), 즉 맛은 무엇인가? 맛이란 결국 여러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섞인 화학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한약의 효능을 기미론으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 바탕은 결국 성분의 복합적 작용이다. 따라서 “한약은 성분으로 치료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실제로 한약의 효능은 성분이 존재하고, 그 성분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인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어떤 성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특정하지 못할 뿐이다. 한약 성분의 복합성과 상호작용의 중요성 현대 약리학과 천연물화학의 발전으로 한약의 성분을 더 세밀히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일 성분이 아니라 여러 성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약효를 나타내는 것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마황을 예로 들면, 마황에는 에페드린(ephedrine), 슈도에페드린(pseudoephedrine), 노레페드린(norephedrine) 등 다양한 알칼로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관지 이완, 교감신경 활성화, 발한 작용 등의 다양한 효능을 나타낸다. 그런데 마황의 전통적 효능인 ‘산한해표(散寒解表)’는 이들 성분 각각의 독립적인 효능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복합 성분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인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삼에는 약 50가지 이상의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 성분이 존재한다. 각각의 진세노사이드는 면역력 강화, 항염증, 항산화, 신경 보호, 피로 회복 등의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삼의 전체적인 ‘보기(補氣)’ 효능은 이 성분들의 복합적인 시너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성분 하나만으로 인삼의 효능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체적인 효능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한약의 효능연구에서 논리적 비약의 위험성 한약의 효능을 연구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논리적 비약이다. 특정 성분이 특정 효능을 나타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한약 전체의 효능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부자에서 하이겐아민(higenamine)이라는 성분이 강심 작용을 나타내지만, 이 성분 하나만으로 부자의 전통적 효능인 온리(溫裏)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이겐아민의 작용이 부자의 전체 효능 중 일부일 뿐이며, 이 작용 또한 성분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약 효능 연구의 올바른 접근 방법은 개별 성분의 약리학적 작용을 규명하고, 이렇게 밝혀진 여러 성분들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여 전체 효능을 나타내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을 통해 한약의 효능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기 위한 미래연구 방향 한약의 성분 연구를 통해 효능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최신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주목받는 접근법 중 하나가 시스템 약리학(system phar macology)이다. 이는 복합 성분들이 여러 표적(target)에 동시 다발적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황기(Astragalus membranaceus)의 면역력 증강 효과가 아스트라갈로사이드(astragaloside)뿐 아니라 다당류(polysaccharide)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현대적 접근 방식은 단일 성분의 효능 연구를 넘어서 성분 간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전체 약효로 연결되는지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생물정보학과 네트워크 약리학(network pharmacology)을 이용한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 방법은 성분 간의 상호작용과 효능을 데이터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약의 효능을 더욱 정확하게 규명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결국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는 최적의 방법은 개별 성분의 특성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과 동시에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내는 전체 효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의학의 전통적 지혜와 현대 과학적 접근이 조화를 이루며 상호 보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약의 효능 연구가 이 방향으로 발전할 때, 우리는 전통적 한의학의 가치와 현대적 과학의 정확성을 함께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4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두종(1896〜1988)은 의사로서 의사학을 전공한 학자다. 그는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서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부립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된 후 중국에 건너가 40세에 만주의과대학 동양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가 의사학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사학을 강의하면서 의사학 교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저술로는 『한국의학사(상·중세편)『한국의학사』(1966년), 『한국의학문화대년표』(1966년), 『동양의학사대강』(1979년) 등이 있다. 1981년 10월에 KBS 방송에서 TV 공개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東洋醫學의 世界’라는 제목의 12회에 걸친 강연이 진행되는데, 이 강연을 김두종 교수가 진행하게 된다. 필자가 한의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해였기에 필자의 아버지께서 방송이 나올 때 말씀하셨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때 진행된 강연을 바탕으로 김두종 교수는 이듬해인 1982년 3월에 『東洋醫學의 世界』라는 ‘KBS TV 공개대학시리즈⑦’의 강의 자료집 형태의 포켓판 책을 간행한다. 강연이 12회에 걸쳐 진행되었기에 그 횟수에 맞추어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동양의학의 기초지식으로부터 발전 과정에 이르는 자취의 대강을 살피고, 송대의 음양오행 및 오운육기설과 금원사대가의 주장, 명청대 의학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 아울러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고려 및 근세조선에 이르는 발전 과정을 교육 제도, 醫方書의 편집 및 약품교류 등을 기술했다. 12회차에 맞추어 구성된 12장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괄호 안의 내용은 각 장에 담겨 있는 내용의 대강이다. △제1장: 동양의학의 기초지식(황제내경, 상한론, 맥경, 갑을경, 신농본초경, 명의별록 등) △제2장: 동양의학의 개화기(황제내경태소, 제병원후론, 천금요방, 외대비요, 왕빙의 황제내경소문, 침구의학의 설립 등) △제3장: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의학(삼국시대의 한의방의 수입, 통일신라시대의 한의방의 수입, 인도의학의 영향 등) △제4장: 동양의학의 한국 및 일본과의 상호교류 △제5장: 송대의학과 음양오행설 및 오운육기론(송대의방서, 음양오행설, 오운육기론) △제6장: 동양의학의 금원사대가 의설(금원사대가, 금원사대가 이외의 저명의가와 그 저서 등) △제7장: 고려시대의 동양의학(초기의학, 중기의학, 말기의학 등) △제8장: 고려의 향약구급방(향약경험방서들) △제9장: 명청시대의 동양의학(명대의학의 금원의학의 계승, 본초학, 그 밖의 의사들, 청대의학의 古今二派, 古今七派, 저명의가 및 의방서, 西洋醫學漢譯書 등) △제10장: 한국의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 △제11장: 동의보감(인용서목, 편집내용, 刊本 등) △제12장: 李石谷의 扶陽論과 李濟馬의 四象醫說(이석곡의 부양론, 기혈론, 신유양장변, 이제마의 사상의설,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의원론, 광제론, 사상인변증론 등) -
“한의약, 세계를 향해 강스파이크!”…김세진의 ‘생활의학’김세진 KOVO 운영본부장(국가대표선수협회 부회장·전 배구선수) [한의신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는 최근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회장 박노준)와 업무 협약을 맺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건강 증진과 스포츠 분야에서의 한의약의 역할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최고의 왼손잡이 스파이커로서 남자배구를 인기 절정의 스포츠로 이끌었던 김세진 부회장은 감독, 경기 해설가에 이어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본부장을 맡아 맹활약하고 있다. 이에 김세진 부회장으로부터 자신이 경험했던 선수 시절의 한의약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Q. 한의사협회와의 업무 협약에 대한 소회는? 매형이 인천 지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가족인 만큼 한의약 발전에 그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한의약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한의사협회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한의약이 스포츠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선수들로부터 그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확대되길 기대한다. Q. 선수 시절에 경험한 한의약은? 선수 생활 당시 한의진료를 정말 많이 애용했다. 저희 팀원들의 경우에도 골절이나 긴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 외엔 한의진료를 많이 받았다. 장시간 연습이나 경기로 인한 근육 긴장에서부터 배구의 경우 허리 부위가 생명인 만큼 상태가 안 좋아지면 곧바로 침이나 추나 치료 등을 받고 한약도 복용한 경험이 많다. 배구의 경우 경기 중 반복적인 동작과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특정 부위에 힘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어깨의 경우 스파이크, 서브 등에서 반복적인 오버헤드 동작으로 인해 회전근개 손상, 어깨 충돌 증후군, SLAP 병변 등이 발생하며, 무릎의 경우 점프 후 착지 과정에서 가해지는 부담으로 인해 점퍼 슬개건염, 전방십자인대 및 연골 손상이, 블로킹이나 공 리시브 시 충격으로 손가락 탈구, 인대 손상도 흔하다. 특히 점프, 회전 동작, 장시간의 경기로 인한 척추염좌, 디스크 등을 야기하기 쉬워 즉각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의약은 스포츠를 위해 존재해야 할 대상이다. 또한 선수 생활에 있어 수술은 장기간 회복과 재활로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부상 시 제때에 한의진료를 받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체감했다. 결국 선수 생활과 한의약은 매우 밀접한 관계다. 사진: KOVO Q. 스포츠계에서 바라보는 한의약은? 스포츠선수들에게 발생한 여러 부상 부위의 호전은 한의사분들께서 직접 시행하는 한의진료로 훨씬 빠르고, 효과적일 수가 있어, 늘 담당 주치의 선생님에게 안전을 보장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침 치료를 많이 받아왔는데 전문적인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통증 부위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작용해 불편함이 풀리는 느낌이 좋았다. 선수들이 많이 사용하는 힘줄과 인대에 손상이 발생하면 수술을 선택하게 되는데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하고,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도핑인데 한의약은 침, 추나, 테이핑, 한약 투여 등 도핑으로부터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의료라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소연 한의협 홍보이사와 김세진 국가대표선수협회 부회장 Q. 선수촌의 한의진료실 확대에 대한 생각은? 한의진료실이 설치된 진천선수촌을 살펴보면 그동안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지원을 통해 운영됐고, 한의의료진의 상시 대기가 아닌 요일과 시간적으로도 한정적인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인기와 수요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선수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한의진료실을 상시 운영하고, 종목별 주치의로 한의사 선생님들이 배치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양방의 경우 물리치료와 검사가 선시행되지만 한의약의 경우 현장에서 즉각적·직접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의진료와 스포츠는 꼭 동행해야 한다. 사진: KOVO Q. 이외에 강조하고 싶은 말은? 평소 한의약이 부작용 없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통용될 수 있는 의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의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계적인 K-Culture 시대로, 이제 한의사는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전통의학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상향하는 직역이 될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들에겐 ‘생활의학’로서, K-Sports엔 K-Medi로서 함께 하는 전문 분야로 육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우리 한의사 회원 분들께서 일선 현장에서 매진하시는 의료활동 하나하나가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의약이 국민들과 스포츠 양쪽에 희망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가길 바란다. 전국의 한의사 선생님들과 대한민국 한의약 파이팅! -
‘해보면 되겠지’, ‘하다 보면 되겠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초음파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난 지 벌써 1년을 향해 가고 있다. 마침, 이 기간에 한의의료기관이 수십 개가 몰려있는 지역에서 근무했다. 눈만 돌렸다 하면 최소 10개가 넘는 한의원, 한방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하루가 지나게 “어디도 초음파를 쓴대.”, “어느 원장님도 자격증 따셨대.”라는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곳에 있으면서 괜히 뒤처지는 마음도 들던 1년이었다. 그와 동시에, 정말 감사한 1년이기도 했다. 새내기의 콩닥거리는 마음을 수줍게 감추며 처음 회기동에 발을 들이던 날부터 십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너도나도 공부를 하겠다’며 달려들었던 해는, 내가 겪은 날들 중에서는 2024년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초음파 활용,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아” 덕분에 간만에 옛날 생각도 났다. 본과 어느 해 무렵,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유독 싱글벙글 웃으면서 수업에 들어오셨던 날이 떠올랐다. “너네는 이제 나가면 추나라는 걸 열심히 해야 할 거야.”라며 씨-익 입 꼬리를 올리시고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는 모습이, 무슨 말인지도 어떤 행동인지도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러고서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2019년에 ‘추나 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 기사가 나더니, 어느새 하루에 20명 가까이 추나 치료를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20명에게 10분씩만 추나를 해도, 진료 시간 중 3시간을 내리 환자 옆에 딱 붙어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 치료는 아예 못 하는 구조였다. 의료기기, 운용하는 자의 전문성에 큰 영향 그래서 그때도 2가지의 큰 의견 대립이 있었다. ‘국민에게 제공되는 의료 행위에서 한의치료가 확장 개입된 아주 긍정적 신호다.’, ‘임상 현장에서 한 환자에게 배분할 수 있는 진료 시간이 줄어들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 2025년이 된 지금, 그 대립으로부터 6년이 흘렀다. 결국 추나 치료는 우리의 치료 행위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환자들의 수요와 의료기관 매출의 양쪽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를 주었다. 추나 치료의 흐름을 경험한 우리는, 초음파에도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겠지.’, ‘쓰다 보면 돈이 되겠지.’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생각들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엑스레이, 미용기기, 혈액검사 등의 흐름을 타면서 방방 뜨는 분위기에 ‘일단 쓰고 보자’의 마인드를, 진단의료기기를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치료 행위/기기에 속하는 추나 치료와 미용기기, 그리고 제한된 항목만 허용된 엑스레이 및 혈액검사와 비교했을 때, 초음파는 차원이 다른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진단’의료기기의 중압감에 익숙지 않은 우리가, 진단이라는 권한이 주어지기 전의 분위기처럼 ‘괜찮겠지’라고 넘기는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진단의료기기의 개발부터 출시까지 과정을 요약하자면, 이 의료기기가 진단을 얼마나 1) 안전하게, 2) 정확하게, 3) 빠르게 해내는가를 입증할 수 있는 증빙서류 제출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음파는 그 어떤 진단의료기기보다도 비침습적이며 빠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남은 맥락에서 진단의 정확도에 대한 신뢰도는, 이토록 높은 가치를 가진 기기를 운용하는 자의 전문성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이, 우리의 책임감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이 내 업장, 내 환자에게서 나아가 내 후배, 내 학생, 내 연구에까지 이어져서, 한의치료의 진료 알고리즘에서 초음파라는 진단의료기기가 어떤 부분에서 더 안전하고, 더 정확하며, 더 빠르게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 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만해도 시골 동네의 작은 의원에 가면 초음파만으로 암을 조기 발견해 주는 의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잘 찾느냐고 묻자, ‘쓸 게 이거밖에 없으면 이거로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그 말이 참 멋있게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도 들어있었지 않나 싶다. 2025년, 현대 한의학 변화의 한 획 기대 그럼에도 작은 프로브(probe) 하나로 사람 수백을 살려낸 열정이 안광에 가득했고,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수그리고 있는 자세로 생긴 말린 어깨는 참 무거워 보였다. 고작 의료기기 하나의 중압감이 그렇게 까지나 된다고 꼭 말하고 싶다. ‘해보면 되겠지.’ ‘하다 보면 되겠지.’ 라는 말, 당연히 맞긴 하다. 의료기기인 이상 술기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며, 그 술기라는 것은 반복 말고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가짐만큼은 수백을 살려보겠다는 각오로, 그리고 이 기기로 정말 수백을 살려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2025년도 현대 한의학의 변화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
“한 달 간 경북 산불피해 이재민 한의치료를 하며”3월 26일 수요일, 안동시내 전체가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오후 6시, 상가의 전깃불 대부분은 꺼진 상태로 마치 좀비의 도시처럼 바뀐 상황에서 경북한의사회 김봉현 회장의 제안을 받았다. 이재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안동실내체육관에 방문해보자는 것이었다. 대학동기인 김 회장과는 지역에서 늘 함께 소통하고 있던 터라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며 그곳을 방문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던 그곳은 산불의 공포감보다 대피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과 건강 악화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불 때문에 두려워하고 속상해하고 있을 때 이처럼 많은 500여며의 이재민들은 실내체육관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기 자욱한 체육관에서 기침을 하고 밤잠을 설치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일 몇몇 분들에게 만일에 대비해서 한의원에서 갖고 온 천왕보심단과 우황청심원을 나눠 드리며, 내일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김 회장과 함께 서둘러 한의진료실 설치에 나섰다. 27일, 오전에 급히 진료실 장소를 정한 뒤 바로 이어 한의과진료실을 개소했다. 점심때부터 진료가 시작됐다. 안동분회 권도경 회장과 함께 진료실 시스템도 갖춰 나갔다.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은 한의원에서 갖고 왔으며, 환자에게 필요할만한 보험제제, 파스, 약침, 경옥고, 쌍화탕, 청심원, 천왕보심단 등도 주문했다. 주업이 봉사이고, 부업이 한의원 진료 초창기에는 한의과진료실에 대한 홍보가 덜되었는지 대피소에 계신 이재민들의 숫자에 비교하면 많은 환자들이 방문하지는 않았다. 곳곳에는 유명 정치인들이 행사장을 방문해주었고, 취재기자들도 수시로 왔다갔다하면서 한의과진료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27일 오후에는 실내체육관 대피소 외에도 안동시의 서부초, 용상초, 길주초등학교 대피소들을 방문했다. 그곳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수백 명의 이재민들이 밀집돼 숙식하고 있는 모습은 재난을 넘은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한의원에 침 맞으시러 오던 환자들이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돼 집을 잃고 절망하는 모습에서 큰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입장이 우울감으로 밀려왔다. 상황이 심각하다보니 한의원 진료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대피소에서 진료를 시작한 후 처음 2주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한의원 진료를 거의 내 팽개친 채 봉사에만 전념했다. 그야말로 주업이 봉사이고, 부업이 한의원 진료였다. 진료실 진료를 마친 이후에도 정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줌 회의까지 하게 됐다. 거의 매일 진료를 마친 후 오후 9시가 되면 경북지부 줌 회의가 시작됐다. 현재 진료 현황과 준비해야할 물품, 개선해야 할 것들, 대피소 변동 상황 등을 점검하다보면 2시간을 훌쩍 넘기가 일쑤였다. 입술이 부르텄고, 피로는 몰려왔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심각한 건강 상태를 생각하면 의료봉사의 고삐를 늦출 순 없었다. 한의사들, 재난현장에서 막중한 역할 수행 이재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불안한 마음 가시질 않을 때였다.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 한 분이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너무 심심한데, 안동은 지금 파크골프를 못 치니 경주에 차 맞춰서 파크골프나 치러 가자.” 그 환자 분의 히히덕거리는 통화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지금 너무 심심해서 경주까지 파크골프 치러 가실 거라면 대피소에 봉사하러 한번 가보시라고, 심심하기는커녕 눈코 뜰 새 없으실 거라고, 무안을 주고 말았다. 아마도 그 환자는 다시는 필자의 한의원에 오지 않겠지만, 그 당시 상황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의과진료실 개소이후 1주일이 지나면서 대규모 대피소는 환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분위기는 점차 소규모 대피소나 시골마을 경로당, 마을회관 등으로 이동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오후에 시간을 내 그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하게 됐다. 진료여건은 무척 좋지 않았다. 대부분 장소에는 베드가 없어서 허리를 숙이고 침을 놔 드려야 했고, 곳곳을 옮겨 다니면서 진료를 해야 했기에 진료를 한 환자 수에 비해서 피로도는 훨씬 심하게 느껴졌다. 또한 대규모 대피소에 계신 분들에 비해 봉사 대상에서 소외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이 산불 현장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문밖을 나올 때마다 그 화마(火魔)의 상처를 보게 되니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분들의 건강이 더욱 걱정됐다. 하지만 이재민을 찾아 방문 진료하는 의료진은 우리 한의사들밖에 없었다. 침과 약침, 한약만 지니고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우리들만의 큰 장점이었다. 다른 의료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이기에 이재민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을 전해줬다. 다시 방문하였을 때는 전보다 증상이 좋아졌다면 반겨주었고, 이제는 잠을 잘 수 있다며 자주 와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재난현장에서 우리 한의사들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지금도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이유는? 봉사를 시작한지 1달 반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봉사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열심히 봉사했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의 한의치료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쉬고 싶은 마음을 접게 된다. 또한 멀리서 봉사를 하러 오시는 많은 동료 한의사들을 바라보며 이재민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우리의 봉사는 멈춰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번 봉사를 통해 우리 한의진료가 이재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어서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끼지만, 누군가가 힘들 때 도움을 주게 되면 내 심장이 이처럼 뜨겁게 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기도 했다. 개원 후 양방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내원한 환자들의 치료가 잘 되었을 때 한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고, 한의사인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 했지만, 최근 산불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에서는 더 큰 보람을 느꼈다. 매일 아침 깨어나 뉴스를 보면서 산불피해 이재민들이 임시주택에 기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분들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도 바란다. 우리의 한의치료가 그분들께서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너무나 큰 다행이라는 본다. 이 마음이 바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이유이다. -
“질병을 바라보는 한의학의 통합적 접근법은 매우 중요한 가치”애니 세펠린(Ani Seppelin) 학부생(노스이스턴대학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현재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에서 ‘한국 한의학의 임상진료 및 치료효과에 대한 인식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노스이스턴대학교 애니 세펠린(Ani Seppelin) 학생으로부터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 및 한의학에 대한 인식,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자신을 소개한다면.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노스이스턴대학교(Northeastern University)에서 세포 및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공중보건을 부전공하고 있는 우등생 (Honors Program) 학부생이다. 지난 몇 년간 보건 및 의료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해 왔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췌장암 연구를 수행했고, 독일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했으며, 미국과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직접 비교하기 위해 여러 기관들을 방문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한국 한의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는 연구와 환자 진료, 그리고 의료접근성(health accessibility)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전인적인(holistic) 의료 접근을 실현하고자 한다. 즉 표면적인 증상 치료를 넘어 환자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것이 저의 목표다. 이와 같은 비전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었으며, 물론 한국의 문화, 맛있는 음식, 따뜻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K-드라마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Q. 이번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공존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로, 두 체계가 상호 보완하며 다양한 치료 선택지를 제공하는 구조에 매료되었다. 또한 이러한 한의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전달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연구 목적 중 하나다. 이를 통해 각국의 문화적 가치와 신념을 존중하며 보다 전인적인 의료모델을 수용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특히 예방의학과 환자 중심 치료가 점점 중요해지는 이 시대에, 미국인이자 미래의 의료인이 될 저로서는 이러한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번 연구는 한의학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인식과 일반적인 신뢰도를 조사하게 된다. 간단한 설문조사와 30분 가량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으며, 설문을 통해 참가자들의 이용 경험, 신뢰도, 효과의 인식에 대한 질적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인터뷰를 통해 의료인, 일반시민, 지역사회 종사자를 대상으로 보다 심층적인 경험과 관점을 수집하게 된다.” Q. 한국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의학에 대한 연구 관심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으로 자라면서 전통적인 방법과 현대의료가 독특하게 융합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플 때마다 할머니께서 직접 약초차나 집에서 만든 보조제를 끓여 주셨고, 그 모든 치료법은 세대를 거쳐 내려온 지혜를 바탕으로 정성스럽게 준비된 것이었다. 전통적인 아르메니아 의학과 현대의학을 함께 경험하면서, 저는 제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과 함께 건강과 예방의학에 대한 보다 전인적인 관점을 갖게 됐다. 이같은 경험은 저로 하여금 대체의학과 전통의학 전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바로 동아시아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특히 미국 내에서 한국은 의료 기술, 혁신, 첨단 기술, 그리고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교수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온라인 조사를 통해 한국이야말로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조화를 이루는 현대 사회의 완벽한 예시를 보여주는 나라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특히 한국 한의학이 문화적으로 뿐아니라 학문적·임상적으로도 깊은 존중을 받고 있다는 점에 크게 끌렸다. 한국에서는 한의사가 되기 위해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균형 있게 배우는 6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 의학이 병존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는 한국이 이 분야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통합의료를 실현하려는 국가적 의지를 잘 보여준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이러한 모습은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실제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제가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 한의학을 더 배우고,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다. 한국에 온 이후 저는 다양한 한의학을 체험해봤다. 침 치료, 뜸 치료, 쌍화차, 대추차, 인삼차, 인삼 복용 등을 경험했고, 서울약령시에도 방문해 다양한 약재를 구매해 보기도 했다. 또한 산청의 동의보감촌과 서울약령시의 서울한방진흥센터도 방문하며 한의학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앞으로도 제 삶 속에서 한국 한의학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Q. 평소 한국 한의학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으로 한국 한의학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라는 인식을 받았고, 실제로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특히 한의학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 식습관과 웰빙 개념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는 곧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자신의 가치와 선호도에 맞춰 치료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강한 의료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결합된 모델은 보다 포괄적이고 환자 중심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며, 이는 미국에서도 참고할 만한 의료시스템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Q. 경희대 한방재활의학과 교실과 어떻게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한의학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연구 기반을 갖춘 기관을 찾던 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은 단연 돋보였다. 경희대 한방병원은 한국 내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방병원 중 하나다. 연구 및 임상교육, 통합의료에 대한 높은 수준의 헌신이 제 연구와 매우 잘 맞았다. 처음에는 경희대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에 직접 문의를 했고, 교수님과의 협업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후 교수님들의 연구 분야를 검색할 수 있는 경희대 플랫폼을 활용해 제 연구 관심사와 일치하는 교수님을 찾던 중 송미연 교수님의 프로필을 발견하게 됐다. 송미연 교수님의 연구주제는 저의 관심 분야와 매우 밀접했고, 특히 재활의학은 장기회복과 맞춤형 치료를 연결해주는 핵심 분야이자 한의학이 강점을 보이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 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제 연구 목적에 매우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Q. 현재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지금까지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100명 이상의 응답자가 설문에 참여했으며, 많은 분들이 인터뷰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응답 속도가 다소 둔화되는 양상이 있어, 설문 및 인터뷰 참여자 모집을 계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는 참여자 유지, 연구에 대한 인식 제고, 인터뷰 일정 조율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향후 결과가 매우 기대된다.” Q. 미국과 한국의 한의학의 차이점은? “솔직히 한의학은 미국에서 그다지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보통은 소규모 클리닉 중심으로 운영되며, 접근성이 떨어지고 보험 적용도 제한적인 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통합적 치료 접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방의학의 중요성도 점점 인식되고 있으나, 미국의 의료시스템 구조상 여전히 자금 지원이나 연구 지원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한의치료는 침치료이며, 일부 보험사들이 이를 보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자격과 면허 제도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면허 제도와 전담 병원, 엄격한 교육과정이 체계화되어 있지만, 미국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소화되어 있어 제도적 기반이 약한 편이다.” Q. 이번 연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의학은 단순히 보완적 의료가 아니라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다. 수천년에 걸친 임상적 활용 사례를 바탕으로, 한의학은 서양의학만큼 환자들 사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증상 관리에 그치지 않고 질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통합적 접근법은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메시지를 전통의학이 익숙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는 국가들, 특히 미국에 전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치료 옵션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다. 의료인과 환자의 관점을 모두 공유함으로써 전통의학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벽을 확인하고 신뢰의 다리를 놓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물론 이는 교육과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Q.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한의학의 미래는 통합과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한약은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보충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으며, 최신 기술이 접목된 형태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한의학도 그 흐름에 발맞춰 진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도 통합의학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포함되고 있고, 학생들에게도 환자를 보다 전인적으로 이해하라는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과 더불어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지지를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다소 약해지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서양의학 기준으로 볼 때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천년간 이어져온 치료법이 효과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의학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과학적 연구와 보험 적용 확대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는 비용 문제도 큰 요소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치료가 보험에 포함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이외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연구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도와주신 한국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특히 이 연구를 흔쾌히 수락해주신 송미연 교수님과, 함께 협력해주신 신우철 교수님, 지수환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 연구는 저에게 있어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형성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한의학에 대한 인식 개선과 신뢰 구축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미국에서도 한국 한의학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일본 고치현 ‘마키노식물원’에 다녀와서…[한의신문] 최근 일본 고치현 출신의 식물학자인 마키노 토미타로 박사(牧野富太郎, 1862∼1957)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고치현립 마키노식물원’을 찾았다. 고치현은 시고쿠 섬의 남부에 위치한다. 그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독학으로 식물을 연구해 일본 최고의 식물학자에 올랐다. 식물학명 중 명명자 부분에 자주 나오는 ‘Makino’가 바로 위의 마키노 박사를 가리킨다. 황련(Coptis japonica(Thunb.) Makino), 천궁(Cnidium officinaleMakino) 그리고 당약의 기원식물인 쓴풀(Swertia japonica (Schult.) Makino) 등의 학명을 명명한 학자다.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식물원으로 들어서니 일본의 삼(參)으로 불리는 죽절삼이 대여섯 그루가 숲 속에서 자라고 있다. 죽절삼은 뿌리 모습이 대나무 줄기와 비슷해 이런 이름[竹節參]이 붙여졌으며, 고려 인삼과 다른 종이다. 중국에서 죽절삼 재배지를 간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죽절삼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식물원에서 제일 먼저 필자를 반겨준 죽절삼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뒀다. 식물원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약용식물 구역에서 중요한 약초를 발견했다. 바로 카기카즈라(カギカズラ)의 일본이름을 가진 구등(鉤藤, Uncaria rhynchophylla)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구등(華鉤藤, Uncaria sinensis)이라는 식물에 가시가 달린 어린가지를 약재 조구등(釣鉤藤)이라고 하며 식약처 공정서인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위의 식물인 ‘구등’ 그리고 일본에서는 ‘카기카즈라’라 부르는 같은 식물의 가시를 약재로 쓴다. 이 약재는 한국·중국·일본에서 사용하는 기원식물이 좀 복잡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범의귀과의 약초 상산(常山)도 이곳서 만났다.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서 약재 상산은 약초 상산(Dichroa febrifuga)의 뿌리를 가리킨다. 상산은 용토약(涌吐藥)으로 분류하지만 말라리아 치료, 해열 작용도 가지고 있다. 상산은 한국에서 볼 수 없으므로 열심히 이 식물의 여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제주도에도 상산이 자란다. 제주도의 상산은 과명이 운향과이고 학명은 Orixa japonica이다. 위에서 약재로 쓰는 범의귀과의 상산(常山)과 다른 식물이니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구등 위쪽에는 초마황(草麻黃, Ephedra sinica)이 나무 울타리 안에서 재배되고 있다. 초마황의 초질경은 약재 마황(麻黃)이다. 초질경에는 ephedrine이 주성분으로 포함되어 있고 발한, 해열, 진해, 진통약으로 사용한다. 마황 뿌리에는 초질경과 반대 효능인 지한 작용과 혈압강하작용이 있는 ephedradine 성분이 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속썩은풀, 황정, 하수오, 오수유, 지모, 황금, 용담, 산사나무, 치자나무, 배초향, 사철쑥, 잔대, 박하도 약용식물구역에서 잘 자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개느삼과 인삼을 만난 일은 이번 식물원 탐방의 성과였다. 약용식물 구역을 둘러본 후 레스토랑 쪽으로 내려가는데 희귀한 식물이 보인다. 눈이 부실 정도로 수많은 보라색 꽃이 피어 있는 Mucuna sempervirens이다. 이 식물의 황홀한 모습에 이끌려 동영상도 찍어본다. 우리나라 이름은 없지만 monkey tamarind, velvet bean 등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구글 자료를 찾아보니 아프리카와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열대 콩과 식물이며 접촉 시 발생하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식물을 지나니 왼쪽에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관상용 꽃양귀비가 아닌 약으로 쓰는 진짜 양귀비다. 관람객들이 양귀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언덕 아래에 포장을 마련하여 방문객들은 위에서 식물을 내려다본다. 양귀비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서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직 꽃이나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식물원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의 전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만난 마키노 박사의 1949년도 서재가 인상적이다. 5만여 권의 서적에 둘러싸여 밤낮으로 책상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질 복원되어 있다. 서재 오른쪽에는 식물 표본 제작에 사용했던 엄청난 양의 폐(廢)신문이 쌓여 있다. 마키노 박사가 평소 얼마나 많은 식물 표본을 만들었는지 전시된 신문 분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마키노 박사가 사용했던 흡습지인 폐(廢)신문은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신문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여 훌륭한 자료로 남긴 그들의 기록 수집 정신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전시관 입구에 세워진 마키노 박사의 흉상 바로 옆에서 박사의 숨결을 느끼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본다. 한편 마키노식물원 내 도서실에 필자가 발간한 약초도감인 ‘동의보감 우리 약초와 약재’(박종철 저, 푸른행복, 2022) 한 권을 기증했다. 800페이지의 무거운 책자를 한국서 가져가고 식물원서 오전 내내 가방에 넣고서 식물 사진을 찍은 후 오후에 도서실 담당자를 만나 도서를 기증했다. 이같은 일이 쉽지 않았지만 존경하는 마키노 박사의 도서실에 필자의 도서가 진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뿌뜻하다. 한국에 도착한 지 6일 만에 도서실 담당자와 ‘공익재단법인 고치현 마키노기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도서실에 책자를 소장한다는 감사 편지를 받았다. 마키노식물원에서 함께 수고해 주신 강영숙‧나도선‧박정일‧신승원‧오기완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96)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환자를 맞으면 나는 환자의 脈을 짚는다. 그 진맥을 통해 병세를 보고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수많은 환자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진맥하였다. 이 책은 그 꿈과 희망을 되새겨 보는 내 처음이자 마지막 회고록이다. 내가 꿈을 진맥하듯이,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어린 꿈나무들이 꿈과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 가난의 굴레를 벗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고향 분들과 모교 및 장학회 관계자들, 한의사협회와 동업계의 지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위의 글은 한의사 허인무 선생의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2006년 도서출판 엔터에서 간행된 허인무의 자서전)에 나오는 저자 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허인무 선생(1937〜2016)은 1937년 충남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서 빈농의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다가 16세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신문 배달 등으로 돈을 모아서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여 합격하고 부산 가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움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각종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이어갔던 경험 속에서 그는 꿈을 버리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고, 1965년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내인당한의원을 개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한의사로서 지역사회에서도 일꾼으로 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일친선협회 상임이사, 청량리경찰서 자문위원장, 청량리세무서 세정위원,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위원, 경희대학교 부설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 자문위원 등이 이러한 활동이었다. 위에서 밝혔듯이 자신을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로서 묘사한 것은 “꿈을 발견하여 꿈을 심어주는 한의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신조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신조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각종 기자재와 장학금을 기탁하는 사업을 이어왔다. 모교인 상월초등학교에 피아노와 컴퓨터 등 교육 기자재를 기증한 것을 계기로 1999년 2억원의 기금을 기탁하여 재단법인 동릉장학회를 설립했고, 2000년에는 모교 부산 가야고등학교에 2억원의 장학기금을 기탁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모교 가야고등학교로부터 ‘자랑스러운 가야인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고향 상월면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동릉 허인무박사 공덕비’를 건립했다. 그는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의 그 고단함과 나무껍질이나 우물물로 배를 채웠던 굶주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작정 부산으로 배움의 길을 떠난 후 단 하루도 학비 걱정 없이 지낸 날이 없었던 그 배움의 길과 한의사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도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금 동릉장학회의 장학금을 받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수백명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것은 결코 학비가 전부는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배울수 있다는 희망과 배움의 길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용기를 나누어 주고 싶다. 매년 장학금 수여식에서 아이들과 악수를 나누면 그 아이들의 脈이 느껴진다. 나는 그 뛰는 맥에서, 그 아이들이 가진 배움에 대한 열정과 미래를 향한 꿈을 診脈한다. 나는 그렇게, 죽는 날까지, ‘꿈을 진맥하는 한의사’이고 싶다.” -
어? 이건 뭐지?- 사진으로 보는 이비인후 질환 <44>정현아 교수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현재 질환으로 온 증상에 기존에 있던 병력이 더해져 증상이 심화되거나 변화되면서 증상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고막만 잘 살펴봐도 환자의 과거력을 알아가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4월19일 42세 남성 환자가 돌발성 난청 이후 발생한 이명을 치료받기 위해 내원했다. 우선 문진표와 이명설문지를 작성하고, 청력검사 이후 문진표를 바탕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환자는 지난해 12월2일경에 좌측 돌발성 난청이 발생해 고용량 스테로이드제 복용과 5회 고실내 주입으로 치료를 마친 후 2월14일경 고주파 영역에서 부분 회복을 했고, 두 달 후인 4월18일에 마지막 청력검사를 한 번 더 해보고 종료하자는 소견을 들은 상태다. 기다리는 2달간 청력은 조금씩 지속적으로 호전된다고 느꼈으나, 고주파 위주의 이명이 있고 귀가 꽉 차는 증상이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힘들다고 호소했다. 특히 귀가 갑갑한 느낌으로 하루 30번 이상 귀를 열거나 닫는 동작을 한다고 했다. 요즘 환자들이 그렇듯이 이 환자도 질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상태로, 난청이 호전되면 이명도 좋아지고 귀 갑갑함이 줄어든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있는지 궁금해 했고, 진료를 봤던 타 이비인후과에서 진주종이 있어 나중에 불편하면 시술을 해준다는 말도 들었던 터라 진주종이 현재 증상과 관계가 있는지도 알고 싶어했다. 초진 당일 청력검사에서 난청이 발생했던 좌측은 완전히 호전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명설문지 검사결과도 THI 26점, TPFQ 15.8로 진료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돌발성 난청 후유증 상태인가 했는데, 이상한 점은 귀 갑갑한 증상이 발생 4개월이 지나도록 감소되지 않고 한달 전부터는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였다. 돌발성 난청의 귀 충만감은 초기 발병시의 증상으로 대부분 청력이 호전되면 점차 소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막을 살펴보던 중 특이한 모습이 관찰돼 추가적인 문진과 더불어 진료실에서의 간단한 확인을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살펴보니 고막에서 보인 것은 변연성 천공과 호흡만으로도 고막이 움직이는 개방성 이관 상태였다. 첫째 환자가 기왕력으로 가지고 있던 것은 이관폐쇄와 이로 인한 변연성 천공(이완부 함몰)이다. 변연성 천공은 보통 중이염으로 발생하는 고막 중심부에 발생하는 중심성 천공과 달리, 이관장애로 인해 중이강의 음압상태가 지속돼 이완부가 함몰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고막내함은 고막 전체가 내함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지지력이 약한 이완부가 특히 함몰되어 천공(변연성 천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자는 돌발성 난청 발병 전부터 비염으로 오랜 기간 이관폐쇄가 있어 고막이 전체적으로 내함되어 있고, 변연천공이 있는 상태였으며 여기까지는 발살바법 정도로만으로도 귀 답답함은 풀리고 일상에서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둘째로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고막으로 이관개방증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이관개방의 원인은 돌발성 난청이 발생하던 시기에 맞물린 체력저하, 수면부족과 고용량 스테로이드 복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돌발성 난청을 거치면서 이관증상이 기존의 폐쇄에서 개방으로 전변되고 있어 기존에는 단순한 귀갑갑함이였다면, 현재는 증상이 훨씬 심해져 음식을 씹으면 귀가 멍멍해지면서 말소리가 울려들리고 피곤하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축구 같은 운동을 하면 발살바법으로는 증상이 풀리지를 않았으며 반대로 코를 살짝 들여마셔 귀 닫는 동작을 해야 조금 편해지는 상태였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환자의 고막은 장력이 많이 저하되어 호흡에 따라 움직인다는 정도가 아닌 펄럭인다고 표현할 정도이긴 했다. 환자는 이명으로 병원을 찾기는 했지만 실제로 불편해하는 증상은 이관개방으로 인한 귀 갑갑함이였다. 먼저 이관의 기능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만형자산에 연교·만형자·우방자를 가하여 처방했고, 비통·거료·관료·청궁·예풍혈 등 혈자리를 자극했으며, 거료·예풍혈 뜸치료를 병행했다. 마지막으로 평소 즐겨하는 축구나 달리기 계단오르기 같이 땀흘리는 운동을 당분간 멈추고 많이 불편하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귀를 열고 닫는 동작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칼럼 21회차 이관개방증 참고). 4월19일에 치료를 시작해 현재 5회차 치료 중으로 초진당시 귀 갑갑함으로 고막을 여닫던 횟수가 30번 넘었으나 현재는 하루 3∼5회 정도로까지 증상이 줄어들고 있다. 개방증이 발생한지 오래되지 않고 치료에 순응적인 환자였기 때문에 호전도가 빠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돌발성 난청 이후 이명, 청각과민, 귀 충만감, 소리왜곡 등 여러 청각증상으로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이 많다. 기존에 과거력이 전혀 없던 환자는 후유증에 준해 치료하면 되지만, 이 환자의 경우처럼 복합적이면서 변화하는 경우에는 환자의 증상을 잘 확인하고 무엇보다 고막진을 통해 진료에 단서를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이비인후과에서 슬쩍 들었던 진주종 또한 변연성 천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주종에는 선천성과 후천성이 있고, 후천성은 대부분 이관장애나 반복적인 중이염이 오래되면서 발생한다. 후천성 진주종의 전구단계로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이완부가 함몰이 되는 형태(변연성 천공)이고, 또 하나는 이 함몰부에 각질이 발생하는 형태가 있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서 각질이 축척하며 진주종을 형성하게 된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지금 후천성 진주종의 전구단계 한 형태인 변연성 천공인 것이다. -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 제공하고 싶다”배현수 교수(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편집자 주] 최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배현수교수가 종양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를 선택적으로 표적해 사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고형암에서 항암 효능을 나타내는 펩타이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관련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에 게재했다. 본란에서는 배현수 교수로부터 연구를 시작한 계기 및 향후 연구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연구를 시작한 계기 및 배경은? “면역세포 조절을 통한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던 중 자연계의 독성분(venom)들이 펩타이드 형태로 면역세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중 인간에서 효능이 보고된 한 물질이 동물모델에서도 강력한 항암효과를 보인 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후 해당 물질의 특성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암세포 자체에는 직접적인 독성이 없으면서도 종양 크기를 효과적으로 줄인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됐고, 이는 면역세포에 작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면역항암제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됐다. 더불어 추가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의 표적이 종양 내 존재하는 M2형 종양관련대식세포(TAM)이며, 그 결합 분자가 활성화된 형태의 CD18 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기반으로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분자구조를 재설계하고, 세포 특이적인 독성 펩타이드를 결합해 신물질 ‘TB511’을 합성한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용혈 작용과 같은 독성은 제거되고, 항암 효능만을 증폭시킨 새로운 신약후보 물질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Q.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이를 해결한 과정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난제는 TB511의 결합 타깃인 분자 구조체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먼저 대식세포에서 발현하는 수십만 개의 단백질로부터 TB511이 결합하는 단백질을 질량분석기로 선별하는 작업과 이후 선별된 수십개의 단백질을 하나 하나 유전자편집 기술로 제거 하면서 결과적으로 TB511이 CD18 단백질에 결합한다는 점은 밝혀내면서 큰 고비를 넘기는 듯 했지만, 또 다른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즉 CD18은 정상 면역세포 에서도 광범위하게 발현되는 단백질이라는 점에서, 암 특이적인 표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세웠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던 중, 미국 박사과정 시절 연구하던 G 단백질(G protein)의 구조-기능 상관성이 떠올랐다. CD18은 인테그린 계열 단백질로, 활성화 상태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혹시 ‘활성형 CD18’이 종양 내에서 특이적으로 존재하며 TB511이 이에만 결합한다면, 종양 특이적인 반응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이에 따라 AI 기반 단백질 결합 분석, 인간 조직 샘플, 인간화 동물모델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끝에 이 가설을 입증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TB511의 세포 내 이동 경로를 규명하는 실험이 필요해졌고, 학부 시절부터 친분 있는 화학과 강성호 교수와의 협력을 통해 고해상 3차원 단분자 추적 현미경을 활용한 실험으로 TB511이 세포막을 통과해 세포질로 이동하는 시간과 속도를 직접 검출해 내는 데도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애물은 편견이었다. 기존 신약 개발 방식은 바이오마커를 먼저 규명하고, 그에 결합하는 약물을 찾는 방식인 반면 이번 연구는 이미 사용 중인 약물에서부터 출발해 거꾸로 표적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학계에서 익숙하지 않은 접근 방식이 었고, 연구진 내에서도 수차례 검증과 토론을 반복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꾸준함과 문제 해결 중심의 사고방식,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유기적인 협력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기존 인간에 쓰여왔던 물질을 재해석해 창출한 신물질이기에, 임상에서의 효과를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됐다.” Q. 이번 성과가 기존과 어떤 부분이 차별화 됐는지? “TB511의 가장 큰 차별성은 ‘정밀 종양 타겟팅’ 기능이다. 기존 면역조절 약물은 광범위하게 작용해 정상 면역 세포까지 억제할 위험이 있었던 반면 TB511은 종양 내 에서만 활성화된 CD18을 표적으로해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또한 펩타이드 기반 물질이라는 특성은 항체 기반 약물에 비해 제조, 전달,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며, 종양 침투력이 뛰어나고 신장 배출율이 높아 테라노스틱스(진단+치료) 용도로의 확장 가능성도 갖추고 있다. TB511은 단순히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넘어, 암이 숨어있는 면역환경 자체를 바꾸는 정밀 면역조절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향후 이 기술이 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난치성 질환에도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Q. 향후 실용화를 위한 과제는? “활성형 CD18 기반의 펩타이드 치료제는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고형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특히 병용치료뿐만 아니라 단독 치료제로서도 개발 가능성이 크며, 다양한 고형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면역억제성 M2 대식세포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췌장암,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더불어 고형암뿐 아니라 대식세포의 과활성이 병인의 핵심인 MASH,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등에서도 응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 실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먼저 약물의 안정성과 반감기를 개선한 제형 개발 및 활성형 CD18 구조를 활용한 동반진단법 확립, 펩타이드의 낮은 면역원성과 제조 효율을 유지하면서 약동학 특성 개선 및 대량생산 공정 확립이 있다. 현재 국내외 제약사들과의 기술이전 및 공동연구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임상 진입 및 실용화를 위한 후속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Q. 꼭 이루고 싶은 목표나 후속 연구계획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지금까지의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활성형 CD18을 표적으로 한 정밀 면역조절 신약이 실제 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TB511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1/2a상 시험을 승인받아 올해부터 본격적인 임상연구에 착수하게 됐으며, 신속승인을 통한 조기 신약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군에서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임상 데이터로 입증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연구를 통해 활성형 CD18이 M2-TAM의 특이적 바이오마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확보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면역세포 리프로그래밍 전략이나 약물전달 플랫폼 확장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TB511을 넘어, 다양한 고형암 및 자가 면역 질환에 적용 가능한 정밀 면역조절 플랫폼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로, 이를 통해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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