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대법원 판례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통해 적법성이 인정된 한의사의 사전조제가 원외탕전실의 시설·인력·품질관리 기준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 속에 제한 논의의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법과 원칙에 따라 진료해 온 한의사와 원외탕전실에까지 규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국회 부의장)은 8일 보건복지부의 원외탕전실 관리·감독 부실을 지적하며 조제한약의 품질관리 강화와 한약제제 제조·공급체계 개선을 촉구했다.
남 의원은 ’24년과 ’25년 국정감사에서 원외탕전실 제도 개선을 요구했으나 복지부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관리·감독체계 전반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 원외탕전실 관리기준 미비…복지부 감독 부실 도마
원외탕전실은 2008년 9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탕전실의 외부 설치와 공동이용이 허용된 이후 운영돼 왔다. 이듬해인 2009년 5월에는 복지부가 원외탕전실 설치·이용 및 공동이용에 관한 지침을 마련했다.
남 의원은 이후 소수의 원외탕전실에 다수 의료기관의 처방이 집중되는 구조가 확산됐으나 정부가 시설·인력·운영기준을 충분히 정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원외탕전실 조제건수 제한 부재 △한약사 등 적정 인력기준 미비 △한약재 규격품 사용 여부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사 부족 등을 관리·감독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남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문제를 제기했으나 복지부는 “원외탕전실 제도 개선 연구용역과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실태조사 이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에 남 의원은 △복지부·식약처·심평원·지자체 합동점검 △한약재 규격품 사용 관리 강화 △한약사 1인당 일일 조제건수 기준 마련 △원외탕전실 적정 인력기준 정비 등을 제안했다.
◎ 대법원·복지부도 인정한 사전조제…불법 제조와 구분해야
원외탕전실의 관리·감독 문제와 한의사의 사전조제는 법적으로 구분해야 할 사안이다.
실제 대법원은 1992년 3월31일 판결(91도2329)에서 극미량 약제성분의 칭량 오차를 최소화하고 예상되는 처방에 대응하기 위해 한약을 미리 준비한 뒤 처방전에 따라 투약하는 행위를 제조가 아닌 ‘조제의 예비행위 내지 예비조제’로 판단했다.
복지부 역시 1997년과 1999년 유권해석에서 투약의 편의와 신속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예상되는 처방에 대비해 한약을 미리 준비하는 행위를 한의사의 적법한 업무범위로 인정했다. 이어 2014년에는 한의사가 장래에 조제할 약침액을 사전조제 요건에 따라 미리 준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행정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일부 원외탕전실의 위법 의혹을 근거로 적법한 사전조제까지 불법 제조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돼오고 있다.
◎ 원외탕전실 관리 강화하되 한의사 조제권 보호도 필요
남 의원은 한약제제와 조제한약의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식약처 허가 의약품과 처방·제형이 동일한 한약의 원외탕전실 조제대상 제외 △정제·캡슐·과립제·환제·산제·엑스제 등 특정 제형의 생산 제한 △환자별 처방전 없는 사전조제 금지 △탕제에 한정한 엄격한 예외 인정 등을 제안했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되는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26~’30)’을 들어 “국제 수준의 GMP 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를 받은 한약제제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은 ‘AI·한의약 혁신으로 국민건강 증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비전으로 △한의약 일차의료 강화 및 접근성 제고 △AI·디지털 대전환 △한의약 산업·글로벌 경쟁력 강화 △지속가능한 한의약 인프라 확충 등 4대 목표와 10개 전략을 추진한다.
한약 사전조제는 신속한 투약과 환자 편의를 위해 활용돼 온 조제방식으로, 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거나 특정 제형을 원외탕전실 조제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적법하게 운영해 온 한의사의 조제 자율성과 원외탕전실의 정상적인 업무까지 위축될 우려가 있다.
특히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이 오히려 적법한 사전조제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불법 제조와 합법적인 조제행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