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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06일 (금)

네팔과 히말라야가 전하는 겸손

네팔과 히말라야가 전하는 겸손

김경택 원장
(김경택한의원)

* 겸손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긴 머리를 자르고, 반백의 모발을 염색하고 다소곳한 세월을 만든다. 늘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네팔을 만나러 간다. 일주일 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괜히 잠을 설친다. 분주하고 허둥대고 얼굴이 근엄해지는 것은 마음이 이미 네팔과 히말라야에 갔기 때문이다. 설렘이 벌써 비행기에 탑승하고 저 높은 곳으로 떠난 상태이다. 서울 속에 네팔이 존재할 것이다. 

 

육체는 정신을 지지하고 지탱한다. 새벽 산책을 하고 아파트 계단을 무심히 오른다. 근력을 키우고 정신을 단단히 한다. 맑은 정신으로 네팔에 가야 한다. 목욕하고 삼배 적삼 입고 조상 제례를 지내는 선비의 엄중함이다. 서서히 기대가 증폭된다. 진한 사랑의 시작이고, 애무는 오르가즘의 전 단계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꿈꾸었다. 

 

네팔과 히말라야는 겸손의 교훈을 준다. 물질과 자연의 균형을 주문한다. 그 거친 산을 오르며 작은 자신을 발견하고 나대지 말라며 타이른다. 작은 존재 안에 그 가치가 있으니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심장은 가히 우주의 박동이다. 산을 오르는 트레커의 스틱 소리는 히말라야를 울린다. 무릎과 허리가 약해지는 세월을 전하며 건강에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보인다. 

 

지갑의 몇 장 지전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고층 아파트에 산다고 고급 인생이 아니다. 삶에서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며 사물을 보는 눈을 길으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엄한 가르침이다. 

 

겸손(humility)은 자비(humanity)와 연민(compassion)을 바탕으로 하는 내면의 세계이다. 척추와 관절은 해부학적 구조인데 자비와 연민은 인간의 정신적 영역이다. 그들은 인성과 품격을 만든다. 안거 기간 묵언 수행하는 선승처럼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갈구,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몸부림이니 열정이다. 높고 깊은 히말라야를 찾는 까닭이다. 벅차다.

 

* 네팔은 그리움이다

 

기다림이 없는데, 그들에게 약속한 것도 아닌데, 부채는 더더욱 없는데 그 곳을 찾는다. 그리움이다. 의료 진료의 현장을 잊을 수 없다. 몇 초 만에 작은 액정에 표시되는 혈압과 혈당. 요술 같은 자동혈압계와 혈당측정기는 그들에게 생경하다. 70 평생 처음이라는 검게 그을린 주름진 네팔 어르신, 천진한 맑은 눈의 어린이들, 순하디 순해 차라리 바보처럼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진료를 통한 공감, 교류, 교감, 그리고 소통이다. 

 

진료는 미소다. 살찐 서울의 한의사에게 침 치료받고 한방 엑기스 한약 한 봉지 받은 네팔인은 웃는다. 서로 반갑다고, 고맙다고, 또 만나자고 웃는다. 내가 당신의 존재를 존중한다고 두 손 모아 인사한다. 나마스테. 

 

초라한 차림새이지만 쉽게 보면 안 된다. 그들의 내면은 옹색하지 않고 넉넉하다. 말이 없다고 속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수직적 사회구조가 아니라 정신과 인성의 수평적 관계를 이루고 산다. 쉐르파족, 따망족, 네와리족 동족의 형제애를 나누어 얼굴이 맑고 밝다. 경제보다 포옹을 우선한다. 나눔은 그들의 공동체 의식이다. 그들을 통해 삶의 내면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침통을 챙기고 떠난다. 

 

네팔과 히말라야는 순수이다. 태초 지구의 탄생이고, 네팔인은 그 안의 존재이다. 척박한 다락논을 일구며 숲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또 하나의 히말라야다. 히말라야는 네팔이 있어 그 존재 가치가 있고, 네팔인은 히말라야를 통해 그 존재를 인정받는다. 자연합일, 방문객은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감성적 서정의 풍경뿐만 아니라 네팔과 히말라야, 그들의 내면을 사유하는 인문학적 서사를 찾고 싶다. 아직 더디다. 좀 더 진화된 존재로 다가가야 하는데 미숙하여 그곳을 찾는다.

 

* 봉사는 소통의 의식

 

이번 의료봉사활동은 네팔 에이전시의 권유로 산간 마을이 아닌 카트만두 인근 지역으로 정했다. 의료 환경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네팔인 중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네팔 정부에서 우리의 노숙자 같은 분들을 모아 관리하는 곳이다. 수용시설, 요양기관. 

 

진료실은 그들의 숙소에 테이블을 놓고, 침대에서 침 시술을 한다. 2월 찬 바람이 부는데 난방 시설이 없다. 그래도 하얀 가운을 입은 외국 의사가 많은 약재를 가져와 명절 대목 같은 분위기이다.

 

네1.jpg

 

환자들이 줄지어 진료실에 들어온다. 2명 중 1명은 휠체어 신세이다. 깜밥진 손으로 어렵게 자신의 휠체어를 굴린다.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 춥게 보인다. 무표정한 표정, 하지만 무언가 회한이 남은 얼굴들이다. 진료실 밖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밝고 맑은 음율이 수용소를 배회한다. 아마 잠들기 전까지 음악은 쉬지 않을 것 이다. 어둡고 차가운 사람들에게 밝고 따뜻한 음악을 전한다. 용기와 미래를 가지라는 주문이고 부탁이다. 

 

혈압과 혈당을 측정한다. 통역은 그동안 필자의 진료와 트레킹 때 동행한 네팔 현지인 N이다. 영어에 능하고 서툰 한국어는 소통의 통로이다. 가져간 300개 구충제를 노인 분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껍질을 까 직접 입에 넣어 준다. 절대 식사 후 복용할 것 같지 않아 N이 직접 경구 투여한다.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달바트를 먹는 네팔인들. 필자는 의료봉사시 항상 구충제를 준비했다. 

 

2~30% 환자는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가족의 버림받고 배회하는 인생이다. 친구도 없이 거리에서 살다 죽음 직전에 당국으로부터 구출된 삶은 척박하다. 면회 오는 사람 없는 모두 고아인데 서로 애정을 나눌 힘조차 없다. 

 

환자가 오면 먼저 전자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손끝에서 피 한 방울 채혈하여 혈당을 측정한다. N에게 결과를 알려주고, N은 환자에게 고혈압 당뇨병의 유무를 알려준다. 

 

하지만 압박골절로 하반신 마비된 중년 아저씨에게 혈압 혈당이 그리 중요한 건강지표가 아니다. 압박골절을 치료하지 못하고 평생 불구로 휠체어 신세인데 차라리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저 세상으로 떠나는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체념, 절망에 익숙한 시간을 보낸다. 몇 차례 수술과 회복과정을 거쳐야 그래도 사람 구실을 할 텐데. 첨단 의료시설과 수준 있는 외과 의료진, 그리고 벅찬 진료비. 그들에게 가당치 않은 세상일 뿐이다. 수용소에서 제공하는 하루 두 끼 달바트가 유일한 즐거움이고 생명줄이다.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와 반신불수 환자들이 줄지어 진료를 기다린다. 왜 이리 중풍 후유증 환자가 많은지. 고혈압인지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과다 염분, 지방식이 건강에 해로운지 모르고 섭취한 까닭이다. 힘든 생활 얼마나 신경썼을까? 한쪽 팔은 덜렁덜렁하고, 한쪽 다리는 질질 끌고, 어눌한 입은 무겁다. 

 

말 못하는 어린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는지 모른다. 파킨슨병, 팔을 흔들고 의식은 차츰 몽롱해진다. 동공이 풀린지 오래다. 많은 불면증 환자. 침 한 번으로 약 며칠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질환이던가? 

 

아! 한탄이다. 의학의 한계, 의료인의 무능. 진료실에 먹구름이 내려앉는다. 도움을 주겠다고 찾은 그 먼 길이 무색하다. 무력하다.

  

2일째 진료-한국에서 온 한의사가 한약 엑기스도 주고, 침 치료와 간혹 뜸과 부항 사혈해 주니 신기하고 고맙다. 입소문인지 공짜 치료 때문인지 환자 대기 줄이 길다. 

 

해외의료봉사. 비행기로 그 먼 나라를 찾는다. 숙소를 마련하고 진료실을 마련하고 밀려오는 환자를 진료한다. 이익이 없는 진료, 어쩌면 의시대고 폼 나는 일이다. 의학 지식이 풍부한 의료인이 병들고 마음 약한 환자에게 치유의 영역을 마련한다. 하지만 의료 봉사가 힘 있는자의 약자에 대한 혜택으로 정의하면 매우 옹색하다. 일방적인 베품의 상하 관계가 아닌 좌우 ‘소통’의 의식이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서로의 인성과 인정을 나누는 행위일 뿐이다. 네팔인과 히말라야처럼, 그들의 동질성처럼. 

 

아침 일찍 시작한 진료는 해지고 저녁 9시 뉴스 시간쯤 끝이 난다. 공진단이나 우황청심환 한 알 챙겨 먹고 싶은 피로감이다. 꽉 찬 하루, 오랜만에 삶의 가치를 느낀다. 2일간 170명 진료.

 

수용시설 측에서 2일 추가 진료를 요청한다. 진료 받지 못한 200명 가까운 환자가 있단다. 준비해 간 한약이 거의 소진되고, 의료인도 탈진 지경이다. 미안한 마음으로 합장을 한다. 서둘러 수용시설을 빠져나왔다. 비겁한 자비심.

 

* 감동이 크면 묵언이다

 

이제 트레킹 일정이다. 안개 때문에 4시간 늦게 도착한 포카라 공항에 가이드 겸 포터 꺼멀이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지프(Jeep)를 타고 트레킹 출발지로 향한다. 벌써 도착하여 한창 오를 시간인데 이제 출발하니 일정이 무너진다. 네팔 국내선 비행기는 보통 2~3 시간 지연 출발이 다반사다. 제시간 출발이 비정상이다.

 

출발 1시간 후, 작년에 트레킹한 마르디 히말(Mardi Himal) 출발지 카레(Khare)를 지나 나야폴(Naya pul, 1070m)에 도착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트레킹 출발지이다. 그런데 요즘 지프뿐만 아니라 버스까지 운행할 수 있는 산간 도로가 생겼다. 정부에서 관광객을 위해 히말라야에 지프 로드를 만들고 있다. 깊숙한 곳까지 산길을 만들어 관광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곳에서 30달러 지불한 입산 허가증(permit)을 제시해야 한다. 히말라야는 거의 입산 통행요금을 낸다. 은둔의 땅 무스탕의 경우 1인당 500달러이니 만만하지 않지만 네팔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니 인상 쓰지 말아야 한다. 

 

일행은 나야플에서 목적지 왼편 고레파니로 향한다. 산악도로가 있어 지프를 이용하기로 했다. 차는 차츰 굉음을 내고 심하게 흔들린다. 크고 작은 웅덩이를 피하고 큰 돌을 비켜나가야 한다. 특히 왼편 낭떠러지는 절벽으로 아찔하다. 잘못되면 시신 수습도 어렵다. 커브에서 혼을 크게 울려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반대편 차량과 비좁은 산길에서 만나면 낭패다. 뒤뚱거리고, 촐싹거리고, 오래된 타이어는 조금씩 밀려 승객은 불안하다.

 

네3.jpg

 

작은 마을과 계곡, 차츰 고도를 올린다. 물질을 이용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비겁한 가짜 트레커는 먼지를 맞으며 산길을 오르는 진짜 트레커에게 미안하다. 대개 유럽 사람 몇 사람이 팀이 되어 히말라야를 오른다. 아마 중간 어느 산간 마을에서 하룻밤 묶을 모양이다. 걸어서 트레킹하는 사람은 여유로운데 지프로 오르는 짝퉁은 저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는 상상에 공포스럽다.

 

울레리(Ulleri, 2080m)를 지나 차가 높이 오를수록 절개지의 속살이 드러난다. 포크레인이 산 허리를 잘라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난 산길이 거칠고 험하다. 다른 지프로 바꾸어 탄다. 도시형 지프는 사륜구동인데, 전문 산악용은 기어가 두 개 이다. 운전석 왼편(네팔 차는 운전석이 우측)에 일반 기어 1개와 그 아래 발쪽에 또 다른 보조 기어 1개가 설치되어 있다.

 

사륜구동 기어가 2개로 4*4 DW로 표기되어 있다. 가파른 산길과 질퍽한 빗길도 힘있게 오른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하지만 꾸준히 오른다. 원래 반탄티(Banthanti. 2300) 까지 지프를 이용하고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해가 기울고 있다.

 

그곳에 제법 큰 롯지가 1개 있는데 한적해 하룻밤 묶어도 좋을 듯하다. 산속의 정적과 함께 지내면 히말라야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할 수 없이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목적지 고레파니(Ghorepani. 2750m)까지 올랐다. 지프는 롯지가 운집한 마을까지 들어간다. 산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히말라야를 가까이 즐길 수 있다.

 

필자가 20여 년 전 1박 2일 걸으며 오른 코스인데 지프로 3시간 만에 땀 흘리지 않고 올랐다. 애기주머니가 튼튼한 임산부는 이 산길을 피해야 한다. 자연의 현대화 활용인지 퇴행인지 모른다. 히말라야의 포옹인지, 인간의 탐욕이 빚은 재앙인지 모른다. 

 

가이드 10년 이상의 꺼멀은 전망 좋은 롯지로 안내한다. 구름이 걷히고 서서히 설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방문객들은 숨을 죽인다. 저만큼 히말라야가 벅차게 반갑다. 다울라기리(Dhaulagiri, 8267m),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south, 7219m), 히운출리(Hiun Chuli, 6444m), 마차푸차레(Machapuchare,6993m)가 산맥을 이룬다. 맑고 밝은 만년설이 위용을 드러낸다. 고단한 일상은 치유되고, 잡다한 생각은 소멸된다. 만년설이 가슴으로 들어와 눈물이 된다. 울컥하다. 감동. 한동안 이런 풍광은 보지 못했다. 

 

하얀 만년설을 보고 있으면 가슴속의 번뇌와 분노가 사라진다. 특히 ‘하얀 산’의 뜻을 가진 다울라기리는 유난히 하얗다. 태초의 순백색, 방문객은 순수의 세계로 들어간다. 지구에서 제일 착한 백색이니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야 한다. 그림 그리는 화백은 캔버스에 저 백색을 표현하지 못해 미칠 것 이다. 직접 히말을 찾아 미치고 마십시오. 거대한 바위에 걸친 만년설은 오랜 세월 거친 바람과 태양을 받아 수행한 자연이니 인간이 표현하기 힘들 것 이다. 저 백색, 저 설산은 석가가 되고 예수가 되니 가히 신앙이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르고 일몰의 태양이 히말라야에 걸친다. 히말은 서서히 변신, 붉게 변한다. 황금산(gold mountain). 황금 가사를 걸친 부처가 된다. 환희, 감탄, 환호.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히말라야를 닮은 소녀 

 

푼힐(Poon Hill, 3210m) 전망대는 고레파니에서 1시간 거리. 히말라야 트레킹의 초보 코스로 적은 고생으로 많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일출을 보러 많은 세계 트레커들이 헤드랜턴을 켜고 새벽 산길을 오른다. 서서히 일어나는 히말라야가 생명체로 다가온다. 고레파니 롯지에서 본 히말을 좀 더 높은 곳에서 넓게 볼 수 있다. 고산증도 없이 히말라야를 만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한다. 가볍게 갈릭(Garlic) 수프와 삶은 계란이면 족하다. 롯지 마당 테이블에서 히말을 보면서 식사를 즐긴다. 세계에서 제일 럭서리한 조찬이다. 저 맑고 밝은 히말의 기운을 흡(吸)한다. 정신적 육체적 식사이다. 

 

식사를 마치고 꺼멀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히말을 닮은 아주 평온한 사진이 나온다. 새벽부터 만년설과 같이 지내 트레커는 그 설산을 닮았다. 오랫동안 간직할 추억의 사진이다. 

 

2일째 타다파니로 향한다. 1시간 좀 지나 작은 능선 작은 전망대 타프라단다(Thapla Danda, 3165m)이다. 돌계단에 걸쳐 차를 마신다.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남봉 등이 눈앞이다. 더 밝은 햇살을 받은 히말은 더욱 건강하고 친근하다. 어쩌면 이번 트레킹의 정점이다. 엄숙한 시간이 흐르는 것은 고요하기 때문이다. 가끔 저 만치 힘들게 올라오는 트레커가 보일 뿐 사람이 없다. 운집한 새벽 푼힐 전망대하고 비교가 된다. 꺼멀과 단둘이 저 장엄함을 즐긴다. 고요해야 산의 내면을 볼 수 있고, 그 엄숙함이 방문객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한적한 겨울, 또 호젓한 타프라단다 언덕은 보기 드문 뷰 포인트이다. 다소곳한 히말라야를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고레파니에서 2시간 산행하면 데우랄리(Deurali, 2990m). 좁은 계곡 사이에 2개 롯지가 몰려있다. 소녀가 먼지를 일으키며 앞마당을 쓴다. 강한 태양에 그을린 얼굴의 소녀가 정숙하다. 어쩌면 카트만두 한번 나가지 못하고 이 깊은 산속에서 히말라야 햇살과 바람과 성장했을 것이다. 물질보다 자연 속에서 자라고 있을 소녀에게 준비해 간 선물(양말, 볼펜, 노트)을 건네주니 당황한다. 쑥스럽다. 그리고 이내 방으로 쏙 들어간다. 아마 밤새 삼색 볼펜으로 일기를 썼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대도시 한번 나가지 못하고 그 산골에서 살아갈지 모를 그 소녀에게 ‘히말라야 딸’이라고 위로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지. 

 

고레파니에서 목적지 타다파니(Tadapani, 2710m) 구간은 V형 산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가고, 또 한참 올라간다. 등산객들이 제일 싫어하는 지형으로 극기를 요구한다. 그 거친 산길을 20kg 넘는 짐을 지고 오르는 짐꾼 포터들을 만난다. 맨몸도 걷기 힘든 산길인데 빵빵한 배낭 3~4개를 노끈에 묶어 등에 메고 이마에 걸치고 거친 땀을 흘린다. 고된 노동의 대가는 1일 25달러, 그 중 5달러는 여행사가 떼어간다.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비를 받는 것과 같다.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는 격이다. 노동 강도는 쎈데 한국 근로자의 1/10 수준이다. 나마스테. 지랄. 

 

도착한 타다파니는 제법 큰 롯지가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룬다. 짐을 방에 두고 코카콜라(작은 패트병 4,000원)를 꺼멀과 나누어 마신다, 갈증이 풀려 따뜻한 유기농 레몬티(1,500원)를 들고 롯지 옥상에 오른다. 구름이 배회하는 히말라야가 신비롭다. 겨울 히말라야는 오후 2시가 지나면 구름이 끼기 시작하여 서둘러 감상해야 한다. 푸른 숲 저편의 만년설이 차갑다. 따뜻한 감성보다 차가운 이성의 산군들이 벅차다. 따뜻한 찻잔을 감싼다. 온기를 느낀다. 

 

오늘도 벅찬 하루였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연속인 그 험한 산길을 걸었다. 중간 롯지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산행을 즐기면 좋았을 텐데, 평소 벌떡증이 발생했다. 끝없는 전진, 중단 없는 전진의 DNA. 꺼멀이 6시간 코스인데 4시간 만에 도착했다며 대단한 체력이라고 감동한다. 하지만 그 칭찬은 비아냥일 것이다. 역시 나는 한국인이다. 지랄. *병.

 

* 물질과 자연

 

3일째 타다파니에서 간드룩(Ghandruk, 1990m)으로 향한다. 아침 트레킹을 떠나면 하룻밤 묶은 롯지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짧은 인연이라 아쉽고 한편 짠하다. 롯지 자녀인 10대 소년 소녀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아침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수줍게 웃는 모습이 히말라야의 일출을 닮았다. 서서히 빛을 건네는 태양의 조심스런 일출처럼 소박한 미소를 사진에 담아 간직한다. 준비한 초콜릿과 단백질바를 건네며 아쉬움을 달랜다.

 

간드룩 가는 산길은 환상적이다. 높낮이 없는 능선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간혹 왼편 숲 사이로 하얀 히말라야가 존재를 드러낸다. 잠시 멈추고 눈을 마주쳐 예의를 갖춘다. 평탄한 흙길 3시간이면 간드룩에 도착한단다. 어제처럼 급하게 가지 않기, 힘들지 않아도 휴식하기, 다시 못 올 길이니 가슴에 담기 등등. 그래도 12시 전에 도착할 것이다. 그럼 오후 내내 넘치는 시간이 문제이다. 

 

간드룩은 매우 큰 마을로 학교도 있고 설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풍광이 좋단다. 하룻밤 묶으며 설산을 감상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데 정오 전에 도착하면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가 있단다. 그 버스를 타면 바로 포카라로 갈 수 있고, 호텔에 따뜻한 샤워와 시원한 맥주가 있다. 그동안 설산 충분히 보았으니 하산해도 좋지 않은가. 하얀 만년설 그 산이 그 산이 아니던가. 오후 내내 무엇을 할지? 

 

선택, 갈등, 고민. 한편 하루 일찍 도시로 내려가도 반기는 사람 없고, 오기 힘든 히말라야인데 굳이 빨리 도시로 갈 필요가 없다. 평소 여유있게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설산을 보면서 여유를 찾는 것도 좋지 않은가. 멍석을 깔아주면 놀지 못하는 우리들 아닌가. 여유로운 시간 속에 무엇인가 얻기 위한 품격의 여행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간드룩에 도착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 히말라야를 닮은 음악

 

간드룩 마을 중간쯤 작은 공터가 있다. 오토바이, 지프, 버스, 마을버스 등이 머물러 있는 나름 터미널이다. 포장되지 않아 먼지가 푸석하지만 세계에서 경치 좋은 정류장이다. 저 멀리 히말라야 산군들이 마을을 지키고 승객들을 환영한다. 어쩌면 폐차장에 있을 버스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신차 출고 이후 세차를 한 번도 안했을 것이 확실하다. 고물차가 여행객들은 안달이지만 네팔인들에게는 매우 친근하다. 사람만 고물이 아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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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출발한다. 트레킹을 마치고 만년설과 이별이다. 이별은 달달한 쓴맛이 있다. 버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가고, 차창의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서서히 멀어진다. 운전기사는 무엇이 신나는지 음악을 튼다. 굉음, 경쾌한 타악기와 관악기가 연주를 하고 높은 옥타브로 네팔 아가씨들이 음률에 맞춰 노래한다. 경쾌한 장조인데 왠지 내면에 슬픔이 젖어있다. 아픈 사연을 감추었을 뿐이다. 척박한 민족의 아픔을 즐겁게 표현하며 위로와 연민을 전한다. 좀 경쾌한 아리랑 같다. 아리랑은 아리랑이다. 나쌈 피리리 네팔의 음악이 히말라야를 닮았다. 감성적 안정과 정신적 풍요를 노래한다. 왠지 울컥하고 눈시울이 시린 것은 히말라야와의 이별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트레커는 얼른 선글라스를 찾는다. 반대편 지프에서 일으키는 먼지가 확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음악은 더욱 경쾌해진다. 서서히 마을을 내려가는 버스는 먼지를 남기고, 산길은 아쉬움을 남긴다. 뒤편으로 설산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승객은 더 많아진다. 

 

힘든 진료와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역시 뽕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중독성 있는 네팔과 히말라야는 정신 건강에 좋은 마약이다. 오면 힘들지만 떠나면 또 오고 싶은 곳이다. 아마 귀가하면 다음 트레킹 코스를 인터넷 검색하느라 분주할 것 이다.

 

* 수척한 세월

 

산에서 도시로 내려와 제일하고 싶은 것은 따뜻한 사워다. 호텔 욕실은 트레킹 내내 그리웠다. 끈적이는 몸과, 떡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설산은 순수의 감동을 전하지만 사람 꼴을 유지하기 힘들다.

 

도시로 돌아온 트레커는 면도기를 들고 욕실 거울에 선다. 잠깐 숨을 멈춘다. 그리고 놀란다. 모발처럼 검정일 거라는 코와 턱수염을 보고 경악한다. 그동안 한 달에 한 번 치루는 가임여성의 생리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머리 염색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염색한 머리처럼 콧수염도 검게 나올 거라는 착각이 있었다. 염색으로 세월을 감춘 음흉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무대의 주인공으로 착각한 현실을 깨닫는다. 청춘으로 착각한 광대는 이제 서서히 무대를 떠나야 하는 슬픈 세월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인가 검은 커튼이 내려올 순간을 예측한다. 광대의 대사는 힘이 빠지고 관객은 객석을 빠져나갈 것 이다. 하지만 광대는 더 큰 목소리로, 더 우아한 율동으로 품격있는 연극을 즐기기로 했다. 주인공으로 존재하는 당찬 몸짓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자위한다. 

 

히말라야는 여윈 세월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준다. 하얀 수염을 검게 만든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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