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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6일 (월)

신미숙 여의도 책방-72

신미숙 여의도 책방-72

저속노화 vs 고속노화

신미숙02.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저속노화, 고속으로 정책화해 시민들 건강해지게 도울 것.” 이는 저속노화 창시자가 서울특별시 초대 ‘건강총괄관’이라는 비상근직 3급 국장직위의 시청 공무원으로(한달에 2회 이상 출근, 급여는 336만원) 2025년 8월1일 출근하며 언론사에 밝힌 당찬 포부였다. 

모든 분야가 속도 경쟁이기는 해도 노화라는 단어 앞에 저속이니 고속이니 단어가 붙어서 하나의 현상 혹은 열풍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나 또한 그 유행어의 물결을 외면하지 못하고 2023년 3월 의사 정모씨의 책을 인용하며 “한의학은 고령친화적인가?”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저속노화’라는 생소했던 네 글자는 왠지 오래갈 것 같았다. “어르신들 약 복용 중복해서 하지 마시라”는 대학병원 노년내과 의사다운 건전한 메시지와 함께 탄생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그가 햇반 껍질에, 편의점 도시락 커버에, 렌틸콩 포장지에 그리고 두유 박스에 저속노화 광고모델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을 때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부적절한 관계 어쩌고 저쩌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일이 터지고 나니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숨겨왔던 의심의 눈초리를 맘껏 드러냈다. “렌틸콩만 넣으면 라면도 저속노화 메뉴인가요?”, “잡곡식만 하면 만병이 다 낫나요?”, “저속노화, 알고보니 저속한 노화였다”, “저속노화의 고속나락” 등의 언어유희적 댓글 수만개를 생성시킨 후 저속노화 창시자는 2026년 1월11일, 일단은 활동을 멈춘 상태다.


시대착오적 단어로까지 추락한 상태는 아니지만 당분간 ‘저속노화’ 타령은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유사한 개념의 또 다른 힙한 신조어가 나타나 새로운 건강 유행을 선도할 것이고, 그 유행 또한 잠시동안은 영원할 것 같은 생명력을 발휘하다가 다양한 혹은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 후 초고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수십년 전 도올 선생님께서 “띄우느라고 한 번 써 먹고, 밟아 없애느라 또 한 번 써 먹는다”를 언론의 악질적 취미로 정의하신 바 있다. 대유행의 협곡 사이에서 눈치 빠른 자들은 늘 크게 챙기고 빨리 빠진다. 이것 또한 업계의 정해진 수순이다. 


AI기술의 발전…항노화 아닌 탈노화 시대로 접어드나?


‘저속노화냐? 고속노화냐?’로 1월의 글제를 정하고 보니 비슷한 내용을 자주 다룬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돌봄 문제로 “힘이거나 짐이거나”를 썼고, 아버지 기일에 맞추어 “2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며”라는 제목으로 죽음에 대한 책들을 리뷰했었다. 이번에는 돌봄이나 죽음이 아닌 노화가 주제이니 최소한 자기복제는 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글솜씨가 애매한 자의 부끄러운 몸부림이다. 


올해 초 친정 엄니께서 팔순을 맞이하셨다.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야 하는 중증 질환도 없으시고 따라서 복용하는 약도 없으시다. 98세를 사신 외할머니의 DNA를 물려 받으셨고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부지런한 생활습관으로 자기관리를 잘 해 오신 증거이기도 하다. 당신이 건강한 팔순이시면서도 TV에 등장하는 더 건강한 100세 노인들을 다룬 뉴스나 다큐를 유독 좋아하신다. 며칠 전에는 현재 5선 국회의원이신 83세 박모 의원님이 향후 국회의장을 꿈꾸고 계신다는 뉴스를 공유해주시며 엄니께서 덧붙이신다. “노인들 다루는 뉴스 그 어디에 좋은 거 있더냐? 오래 살아있는 것 자체를 문제인 것처럼 다루는 게 대부분이고 뉴스 화면에 나오는 노인들은 늘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거나 요양병원에 누워있더라. 그래서 우리 나이에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 보면 그저 부럽고 무조건 반갑더라.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노인네도 있으니 평범한 나도 더 힘을 내서 바쁜 척이라고 해야지 싶다.” 다짐을 내보이시던 엄니의 결론은 그 분이 후기 국회의장 되시는 데에 찬성 한 표라고 하셨다. 


일론머스크와 피터딜이 내놓은 AI의 전망에 의하면 올해부터 2028년 사이에 인간 한 명의 지능을 완전히 넘어서는 AGI(범용인공지능)가 등장하고 화폐의 가치나 저축의 개념이 흔들리며 화이트칼라 상당수가 AI로 대체되는 등 교육과 고용 시장을 포함한 근본적인 경제 구조가 폭발적으로 바뀔 거라고 한다. 고용에 있어서도 AI를 활용하여 성과만 낸다면 20대든 50대든 무관하게 채용이 가능하므로 나이도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20대들의 신입채용을 줄이고 있다. AI 덕분에 항노화가 아닌 탈노화의 시대로 접어든 기분이다. 저속노화냐 고속노화냐의 건강유지 방법의 탄력적 선택 대신 탈노화가 가능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비가역적 분리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AI로 풀장착한 노인은 영에이티로 조롱받는 대신 노인 아닌 노인, 영원히 사는 갓파더로 추앙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노인은 없다』(마크 아그로닌, 한스미디어,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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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음이 문제라면 나이듦은 해결책이다. 

- 최고의 의료 서비스와 보살핌을 받더라도 기본적인 활동에 제한을 받으면 삶의 기쁨도 줄어든다. 

- 노인이라는 허상을 지워 내고 보면, 그 안에는 깊이 있고 다양하며 생명력 넘치는 노년의 문화가 존재한다. 

- 나이듦에 관한 긍정적인 자기 인식이 자리 잡힌 사람들은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사람들보다 생존율 중위값이 7.5년 더 길었다. 

- 노화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도 높은 목적의식, 성취의식이 존재한다. 

- 나이가 들면 우리는 모두 육체적, 심미적으로 퇴화한다. 우리 대부분은 나이가 50대 이상이 되면 뇌의 능력이 바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이듦에 관하여』(루이즈 애런슨, 비잉,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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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학은 오늘날을 만성질환 전성시대 혹은 고령화 질환 유행시대라 정의한다. 그러면서도 노년층과 노인의학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만년 2순위다. 

- 안티에이징은 노인 집단과 노화의 특징을 거부하고 부정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다. 

- 생물학 외의 다른 눈은 모두 감아 버린 현대 서양 의학은 큰 그림의 일부만 보고 있다. 

- 20세기 들어 노화와 임종이 마치 반드시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건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의학은 스스로를 죽음이라는 절대악에 대항하는 무기라 자처해 왔다. 

- 의학은 인간이 자연스러운 생의 단계를 보다 편안하게 넘기도록 돕는 사회적 수단이어야 마땅하다. 

- 현재 최고령 세대는 어떤 의료 행위를 제안받든 최우선 관심사는 통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 노년기는 길고 개인차가 있으며 상대적이다. 현대인 대부분이 심신이 현저히 쇠하기 전에는 노인 호칭을 극구 거부한다. 

- 오늘날의 의료 체계와 그 바탕 패러다임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 중대하고 결정적인 그 무언가가.  


『노화의 정복』(로즈 앤 케니, 까치,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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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생물학적 노화는 아주 일찍 시작된다. 30대에 접어들면 노화 과정이 세포 안에서 이미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 몇몇 연구들을 통해서 질병 상태와는 상관없이 ‘젊다고 느끼는 만큼 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인식 자체가 다른 요인들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노화 과정의 속도를 7년만 늦추어도 각각의 나이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 사회적 참여와 인간관계는 혈관질환을 감소시키고 이것이 다시 치매를 발생시키는 혈관적 원인을 줄여준다. 사회적 접촉이 뇌를 보호해주는 이유를 이것으로 추가 설명할 수 있다. 

- 스트레스에 예민한 사람은 코르티솔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아져 치매의 위험을 2배로 증가시킨다. 

- 50세부터는 매년 근육량이 줄어든다. 우리 몸은 신체활동을 위해서 디자인된 수렵채집인의 몸이다. 


『왜 늙을까, 왜 병들까, 왜 죽을까』

(이현숙, 21세기북스,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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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세 이상 남성에서는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80% 정도 된다. 이런 암의 특징은 나이가 들수록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 한의학 서적에서 암을 기록한 것은 <황제내경>이다. 이 기록이 기원전 3세기에 나타났으니 서양의 기록보다 100년 이상 빠른 것이다. 동양에서는 수술을 하지 않았고 서양에서는 17세기에도 수술을 했다. 

- 죽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더 하지 않고 에너지도 아주 조금만 만들어내면서 세포 분열을 안 하는 현상이 노화의 가장 기본적인 세포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 텔로미어의 길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구조가 중요하다. 이 구조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생체 시계를 늦추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 텔로미어가 짧아진 세포에서는 염증 반응이 나타나고 면역 세포가 노화한다. 

-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깃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 이게 바로 개인 맞춤형 의학으로 가는 기반이 될 것이다. 

- 과학에서는 진리가 승리한다는 사실. 어떤 비밀도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다. 


『과속 노화의 종말』(박민수, 허들링북스,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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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전자 변화가 쌓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슐린, 코르티솔, 성장호르몬 이 세 가지 호르몬은 노화 속도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 통계적으로 암을 빼면 만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원인 중에서 혈관 질환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 백세 건강의 초석은 단맛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제당의 끝판왕인 밀가루는 담배의 니코틴, 술의 알코올과 비견될 정도이다. 

- 과일을 주스 형태로 섭취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과일 속 섬유질은 파괴되고 당은 액체 형태로 농축되어 우리 몸에 빠르게 흡수된다. 

- 최근 오래 앉아있는 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몸은 원래 서서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 커피와 같이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 외에도 만성 탈수를 유발하는 음료들이 있다. 탄산음료와 과일주스, 술이 그것이다. 

- 노화와 장수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핵심축은 5M이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멜라토닌(Melatonin), 마이오카인(Myokine), 마인드(Mind),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5가지가 제대로 기능하고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나이 먹는 속도를 늦추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여러 이유로『흑백요리사 2』를 외면하고 있다가 최종 우승자가 최강록님이라는 뉴스를 보고서야 최종편을 시청했다. 두 아이들이 중고생이었을 때, 간식이나 야식을 먹을 때 자주 보던 유투브 채널 중 하나가 『마스터 쉐프 코리아』 시리즈였다. 그 중에서도 시즌2 우승자인 요리사 최강록에 대한 아이들의 팬심이 신기했다. 그를 열렬하게 추앙한다기보다는 ‘그냥 요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묘한 아저씨’라고 표현했다. 그 매력이 궁금하여 나도 같이 따라 보다가 자연스럽게 그의 팬이 되었다. 어메이징한 달변가들이 장악한 예능판에서 초단위, 분단위, 월단위로 유행어와 유행식당의 트렌드가 바뀌는 초스피드 대한민국에서 13년만에 나간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다시 1등을 차지할 꿈을 꾸기 아니 그것을 현실로 이뤄내기의 난도는 상상불가이다. 그는 『마쉐코2』에서 우승을 하고도 바로 속도 전쟁에 뛰어들지 않고 물 들어오려는 순간 노를 버렸다. 그만의 파격과 역설로 오늘날 더 큰 성과를 냈을 수도 있다. 고문에 비유되는 끈질긴 재료 손질과 징그러울 정도의 성실이라는 근성의 초심을 유지했다는 점이 기본값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요리가 아닌 사람에게 감동을 받은 대중들은 13년 전보다도 더 진지한 축하를 보내고 있다.  


노화 완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한 태도는?


세계 최고령 현역 스프린터로 활약 중인 이탈리아의 엠마 마젠가(Emma Mazzenga, 1933년생)님의 기사를 읽었다. 고령임에도 체력과 근력을 유지하며 다수의 세계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마젠가님의 신체적 특성을 노화 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추적 중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18개월 간격으로 그녀를 검진하며 노화 진행도를 관찰했는데, 최근 검사에서도 심폐 지구력과 근육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50대 일반 성인 수준, 근육 세포 구조와 회복능력은 20대 건강한 단거리 선수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장수와 건강 유지의 비법에 관한 질문에 남긴 한결같은 대답은 다음과 같다. “중요한 건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항노화든 탈노화든 노화 완화를 원한다면, 저속노화의 추구보다는 고속노화의 회피 방법을 찾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 굳이 속도로 표현하자면 저속으로 생존하자는 것이다. 저공 비행으로 유급만 면하고자 장학금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국시합격만이 목표였던 많은 한의대생의 소박한 소망과 유사하다. 단거리 도전을 시작했었던 53세 때부터 40년째 주 3회, 회당 1시간 정도의 운동루틴을 한 번도 중단한 적 없는 93세 마젠가 할머니의 끈기를 실천하다 보면 올 한 해도 어쩌면 해피엔딩이 가능할 것 같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그래서 커다란 성공은 못 이루고 끝나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자주 엄습해 오더라도 멈추지 않고 저속으로라도 계속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도할 수 있는 현명한 삶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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