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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7일 (일)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89)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89)

한국의 儒醫論
“한국 한의학의 중요 구성 콘텐츠 儒醫를 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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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벌써 13년 전 필자는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부제: 儒醫列傳)』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기억이 있다.

한국 한의학을 인문학적 연구로 시행하는데 있어서 인물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조선시대에 국한해 본다면, 의학 종사자들은 일반적으로 △儒醫 △業醫 △藥種商의 세 부류로 나뉜다. ‘儒醫’는 儒學을 연구하는 학자가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된 경우이고, ‘業醫’는 대대로 醫業을 가업으로 하는 중인층에 속하는 의사들을 말하며, 藥種商은 단순히 약물을 사고파는 약물판매업자들을 말한다. 조선 전 시대를 통틀어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유의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儒醫란 일반적으로 儒敎的 사상을 바탕으로 醫學의 理致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당시 지식인들 중에서 의학의 이치에 통달하여 의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 중에는 의학적 지식이나 의료기술에도 정통한 학자가 있었는가 하면, 학자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의학을 전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고, 학자였지만 개인적인 필요에 의하여 의학을 연구한 사람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다. 


우리의 전통의료가 민간의료의 수준을 탈피해 이론적 근거를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유의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유의들은 문자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사물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기 때문에 단순한 치료경험이나 전래되어 오던 秘方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저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의서의 편찬은 대부분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이 시초부터 지식인들인 儒子가 중심이 되어 연구되었기에 유의는 일찍부터 존재하였다.


三國時代의 고구려에는 侍醫, 백제에는 醫博士, 採藥師, 呪噤師 등 높은 職任을 가진 의사들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교육자이며 어의들이었기에 지식 수준이 높았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여 유의의 초기적 형태를 지닌 의사들이었을 것이다.


南北國時代의 신라에는 ‘醫學’이라는 교육기관이 존재하였다. 특히 신라의 ‘醫學’에서 교육한 교육내용이 『本草經』, 『甲乙經』, 『素問經』, 『鍼經』, 『脈經』, 『明堂經』, 『難經』 등 醫經이 중심이었기에 수준이 높은 의사들이 계속해서 배출되어 유의가 나올 수 있는 기본적인 토양은 이 시기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高麗時代에는 과거제도가 정비되어 과거시험을 거친 자들이 의사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학문적 소양이 뛰어난 의사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식인 가운데 의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을 많이 만들어내어 유의가 지속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金永錫(1079-1166)과 같은 인물이 그 전형이라 할 것이다.


朝鮮時代에는 전시기에 걸쳐 수많은 유의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것은 백성들을 편안하게 돌봐 주어야 한다는 治者의 원리를 표방하는 儒學의 학문적 지향점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에는 유학자이면서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수많은 의가들이 활동하면서 儒醫는 하나의 醫師의 종류로 확실히 각인되게 되었다.


 

許浚(1539∼1615), 柳成龍(1542∼1607), 丁若鏞(1762∼1836), 李圭晙(1855∼1923), 金宇善, 曺倬(1552∼1621), 李昌庭(1573∼1625), 尹東里(1705∼1784), 李濟馬(1837∼1900) 등이 이러한 儒醫에 속하는 인물들로 이들에 대한 조사연구는 한국 한의학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접근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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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유의인 허준과 이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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