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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06일 (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505)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505)

1965년 동양의과대학의 『의방유취』 간행
“의방유취를 간행해 새로운 한의학의 르네상스를 불러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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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65년 7월7일 동양의과대학(경희대 한의대 전신)의 의방유취중간위원회에서는 『醫方類聚』를 간행한다. 비록 일본에서 1861년 다시 간행된 『聚珍板 醫方類聚』를 옾세트판으로 작업해 완성한 것이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서 볼 때 매우 거대한 작업을 완성한 것이었다. 

醫方類聚重刊委員會의 편집 및 총괄을 맡은 姜弘範의 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보건에 그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한의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이 진귀한 문헌을 사장함이 한의학계를 위하여 애석한 일이며, 또한 본서를 창간하신 세종대왕 성지를 받드는 의미에서 동양의과대학 중심으로 본서의 중간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의방유취중간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에 학장 이종규를 선임하고, 부위원장에 교수 권영준, 위원 부교수 윤길영, 부교수 채인식, 부교수 안병국, 조교수 강효신, 전임강사 최용태, 편집 및 총무에 강홍범, 재정간사에 강효신, 필경 및 인쇄 전담에 최형태 외 20여명, 교정에 李在瑛 등으로 구성하였다. 서기 1965년 1월에 시작하여 동년 7월에 총동원 연인원 4893명으로 완성하였다. 끝으로 색인편찬에 조력해주신 분들과 일본판을 대여하는 호의를 베풀어 주신 연세대학교 도서관장 元一漢씨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위의 발문의 일부 내용을 통해 이 『의방유취』를 重刊한 목표와 시기를 알 수 있다. 사실 동양의과대학은 1962년 포고된 학교정비령에 따라 1학년 모집이 중지된 상태였다가 한의사협회의 호소문 발표와 학생, 교수 등 당국자들의 간담회 등 다각적 노력으로 1964년 6년제 한의과대학으로 승격되어 동양의과대학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의방유취』를 간행하여 학술적 일신을 꾀하고자 하였던 것이었다.이 때 사용된 의방유취 판본은 『聚珍板 醫方類聚』로서 1852년 일본에서 키타무라 쵸간(喜多村直寬)이 복간하여 만든 것이었다. 

 

안상우의 「『醫方類聚』에 대한 의사학적 연구」(경희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0년)에 따르면 『醫方類聚』는 세종조에 초고본(1445년), 세조조에 교정본(1464년), 이후 성종초에 초간본(1477년)을 간행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 한의학을 대표하는 의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 일본 장군 가토기요마사(加籐淸正)가 조선 궁궐에 들어와 『醫方類聚』를 찾아내 일본에 가져가서 日本의 多紀家에서 보존하고 있었던 것을 1852년에 키타무라 쵸간(喜多村直寬)이 복간하여 聚珍版 『醫方類聚』를 간행하게 되었다. 1876년 일본과 丙子修好條約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때 日本은 조약체결을 기념해서 예물로 이 聚珍板 『醫方類聚』를 2질 가지고 오게 되었다. 훗날 이 일본에서 예물로 가지고 온 聚珍板 『醫方類聚』는 고종 때 어의였던 홍철보에 의해 연희전문(훗날 연세대)에 기증되어 보관되게 되었다. 이 연세대 보관 聚珍板 『醫方類聚』를 동양의과대학에서 대여하여 1965년 『醫方類聚』를 간행하게 된 것이다.

 

청강 김영훈 선생(1882〜1974)은 10권 1책 부록의 1권 앞부분에 “吁以醫方類聚與東醫寶鑑我國之文化財中第二雙璧”이라는 휘호를 적어놓고 있다.

동양의과대학 이종규 학장은 다음과 같이 서문을 쓰고 있다.

 

 

“…우리는 되찾은 우리의 문화재를 알뜰히 가꾸고 길러서 이 땅에 풍성한 과학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이 침체기에 있는 우리나라의 한의학계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키는 한 계기가 된다면 본 대학교 교수나 출판 관계자들이 오랫동안 이 서적 중간에 바친 노고와 본 대학의 경제적 출혈은 과분한 영광과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돌아올 보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한의학의 연구발전에 새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절박한 책임감에서 이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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