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형 원장과 스승 김기택 교수의 인연
『後世處方學』으로 결실 맺은 학문적 보은
金基澤(1909~1976) 교수는 平北 宣川 출신으로 호가 素虛이다. 한의사 집안에서 성장하여 어린 시절부터 醫書를 강독하다가 滿洲의 間島 延吉에까지 가서 李常和(1869~?)가 주재하는 漢醫學講習所를 履修하고 귀국하였다. 해방 후에 동양의약대학에 1기생으로 입학한 이후에 동양의약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한의사 趙世衡(1926~2004)은 1960년대 후반 무렵 전 동양의약대학 교수였던 김기택 교수를 만나게 된다. 동양의약대학의 13기로 晩學으로 1964년 졸업한 조세형은 학창시절에 김기택 교수가 일찍 학교를 그만둔 관계로 강단에서 그를 만나지는 못하였다. 이날 종로 5가의 수세한의원에 찾아가서 만나게 된 것이다.
김기택 교수는 조세형 원장에게 “나한테 와서 배우라. 올 때에는 쪽박을 엎어 들고 오지 말고 제대로 받쳐들고 오너라”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설익은 선입견을 버리고 白紙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조세형 원장은 이때부터 한의사 同學들과 삼삼오오 1주일에 2회씩 강의를 통해 원전과 임상의 奧義를 전수받기를 7년이나 이어지게 되었다. 이 즈음에 이들은 김기택 교수를 회장으로 모시면서 ‘古今醫學硏究會’라는 한의학 연구 모임을 발족하여 김 교수의 60平生 갈고 닦은 學과 技를 모두 전수받고자 하였다. 조세형은 이 모임의 학술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김 교수의 강의에 심취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냈고, 아울러 김 교수의 고귀한 인격과 학구열, 현세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大學者의 기풍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김기택 교수는 1976년 작고하게 되는데, 이 무렵 “나의 藏書를 바탕으로 素虛書院을 세우고 學會를 永續하되 原典과 臨床이 완전히 일치되는 學風을 지키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였다. 김기택 교수의 저서로 『(病理方藥解說附) 後世處方學』이 있다. 이 책은 1960년대에 한의대 교재로 사용된 것으로 古典을 직역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을 가지고 있어서 언어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기에 개정판을 만들어 현대의 한의사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그동안의 강의 내용까지 첨가하여 완벽한 책으로 만들어낼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 것이다.
조세형은 가리방으로 만들어진 『後世處方學』을 현대어로 바꾸어 접근성을 높이고 여기에 그동안 김기택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첨가하여 1971년 12월에 『(素虛) 後世處方學』을 완성하였다. 가리방으로 만들어진 『後世處方學』은 조세형 원장과 대학 동기인 崔鎭昌 원장의 부인께서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 기증한 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補氣劑, 補血劑, 補氣血劑, 補心劑, 補陰陽劑, 補脾胃劑, 補肺劑, 發表劑, 表裏劑, 祛風劑, 通吐劑, 攻裏劑, 和解劑, 理氣劑, 理血劑, 去寒劑, 淸暑劑, 利濕劑, 潤燥劑, 瀉火劑, 除痰劑, 消導劑, 收澁劑, 婦人方劑, 小兒方劑, 殺蟲劑, 眼科劑, 耳科劑, 鼻科劑, 口脣病劑, 舌病劑, 牙齒病劑, 咽喉病劑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257개의 처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처방마다 처방구성, 加減法, 主治, 病理, 方解, 길잡이의 순서로 설명이 붙어 있다. 특히 처방마다 사람의 정면도를 그려놓고 여기에 이 처방의 主治에 해당하는 부위를 지목하는 형식으로 圖示하고 있다. 비주얼을 보완하여 지식 전달의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 김기택 교수의 학문이 제자 조세형에 의해 활용도가 높아진 새로운 형식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 김기택 교수의 후세처방학 고본과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진 조세형 편저의 후세처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