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0.3℃
  • 맑음10.0℃
  • 맑음철원11.4℃
  • 맑음동두천13.1℃
  • 맑음파주10.1℃
  • 맑음대관령3.2℃
  • 맑음춘천10.9℃
  • 맑음백령도11.8℃
  • 맑음북강릉9.8℃
  • 맑음강릉11.7℃
  • 맑음동해10.5℃
  • 맑음서울14.9℃
  • 맑음인천15.4℃
  • 맑음원주12.3℃
  • 맑음울릉도11.7℃
  • 맑음수원12.6℃
  • 맑음영월10.2℃
  • 맑음충주11.0℃
  • 맑음서산11.3℃
  • 맑음울진11.2℃
  • 맑음청주15.0℃
  • 맑음대전13.3℃
  • 맑음추풍령12.6℃
  • 맑음안동13.6℃
  • 맑음상주14.8℃
  • 맑음포항14.9℃
  • 맑음군산12.7℃
  • 맑음대구15.3℃
  • 맑음전주12.5℃
  • 맑음울산13.9℃
  • 맑음창원17.0℃
  • 맑음광주13.6℃
  • 맑음부산16.9℃
  • 맑음통영15.8℃
  • 맑음목포12.8℃
  • 맑음여수16.0℃
  • 맑음흑산도12.0℃
  • 구름많음완도13.8℃
  • 맑음고창10.5℃
  • 맑음순천9.9℃
  • 맑음홍성(예)11.0℃
  • 맑음11.5℃
  • 구름많음제주14.9℃
  • 맑음고산14.7℃
  • 맑음성산14.5℃
  • 맑음서귀포16.0℃
  • 구름많음진주14.7℃
  • 맑음강화13.3℃
  • 맑음양평13.1℃
  • 맑음이천13.9℃
  • 맑음인제9.3℃
  • 맑음홍천11.1℃
  • 맑음태백6.0℃
  • 맑음정선군7.6℃
  • 맑음제천8.1℃
  • 맑음보은11.7℃
  • 맑음천안12.8℃
  • 맑음보령8.7℃
  • 맑음부여10.5℃
  • 맑음금산13.0℃
  • 맑음12.2℃
  • 맑음부안12.0℃
  • 맑음임실10.7℃
  • 맑음정읍11.4℃
  • 맑음남원10.0℃
  • 맑음장수7.9℃
  • 맑음고창군10.7℃
  • 맑음영광군10.6℃
  • 맑음김해시15.9℃
  • 맑음순창군11.0℃
  • 맑음북창원17.0℃
  • 맑음양산시16.5℃
  • 맑음보성군14.0℃
  • 맑음강진군13.1℃
  • 맑음장흥11.6℃
  • 구름많음해남11.9℃
  • 맑음고흥12.4℃
  • 맑음의령군14.7℃
  • 맑음함양군13.4℃
  • 맑음광양시13.9℃
  • 구름많음진도군12.2℃
  • 맑음봉화7.1℃
  • 맑음영주9.9℃
  • 맑음문경14.3℃
  • 맑음청송군9.3℃
  • 맑음영덕11.5℃
  • 맑음의성10.9℃
  • 맑음구미12.8℃
  • 맑음영천13.9℃
  • 맑음경주시12.1℃
  • 맑음거창12.0℃
  • 맑음합천12.7℃
  • 맑음밀양15.3℃
  • 맑음산청14.1℃
  • 맑음거제14.2℃
  • 맑음남해16.2℃
  • 맑음12.8℃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8일 (금)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3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3

B0042010032329042-2.jpg

B0042010032329042-1.jpg

‘동의보감’을 모두 암송한 의병장



한말의 학자 黃玹(1855~ 1910)이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한말의 역사책인 ‘梅泉野錄’에 郭鍾錫이라는 인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郭鍾錫의 기억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동의보감을 한 번만 보고 모두 암송하였다 하였으니, 그의 총명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예술을 통달하고 병법도 연구하였다.”



곽종석은 민비학살사건과 단발령 때 각지의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각국 공관에 열국의 각축과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영남과 호남의 유생들의 연서를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호소문을 金昌淑을 통해 파리에 전달한 파리장서사건을 일으켰다.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였고, 도가와 불가의 서적에도 밝았다고 한다. 25세에 李震相의 문인이 된 후로 학문에 전념하였고, 을미사변 이후로는 각국에 일본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인물이 ‘동의보감’을 한번 읽어 보고 모두 암송하였다는 것은 그가 평소부터 의학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儒者로서 의학 연구를 겸한 이 시기의 사회적 풍조와 그의 도가와 불가에 대한 깊은 지식도 의학 연구를 하게된 원동력으로 작용되었다.



그는 의학에 조예가 있었던 李震相의 제자로서 이 학맥은 李退溪의 학통과 이어진다. 李退溪가 의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보면, 의학 연구는 이 학맥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곽종석의 간찰.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