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東醫’ 創刊號
한의대 學生會誌의 시작을 열다
“學生漢醫學會가 結成된지도 於焉 一年이 가까워 오는 이 때에 그렇게도 오랜 陳痛을 겪고 드디어 東醫라는 이름의 會報가 全貌를 나타내는 것을 보니 여러 會員들과 함께 無限한 喜悅을 禁할 길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三百六十名의 全會員이 한의학과 結緣한 以後 많은 情熱을 쏟은 結果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玉童子의 誕生을 祝福해야 할 것은 勿論 앞으로 어떻게하면 健全하게 키워 나갈 수가 있을가도 다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대한 바른 理解를 가지지 못하고 그 오랜 歷史가 잘못인 듯 嘲笑해 버리려고 합니다. 하기야 모든 文明이 刻變時遷 새로워가기만 하는데 유독 한의학만이 五千年前으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면 웃을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學問까지도 때를 따라 變遷해 가야만 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會報를 세상에 내어놓는 意義는 實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의학 其 姿態는 낡은 것이나 그 原理는 未來의 燦爛한 醫學과 새 文化를 建設하는데 確固한 基築이 되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이 基築을 爲하여 일할 사명을 지니고 모인 여러 會員들은 그 연장이 될 東醫로서 힘껏 싸워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위의 글은 1958년 9월에 東洋醫學大學 學生漢醫學會에서 간행한 학술지 성격의 잡지인 『東醫』의 創刊號에 나오는 당시 會長 任英宰의 “未來의 醫學과 새 文化의 基築을 쌓는 일에 힘을 다하자”라는 제목의 創刊辭이다. 東洋醫學大學에 학생한의학회가 만들어진 1년이 지난 시점에 이와 같은 학술지가 간행되게 된 것에 대한 감회를 적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에 보기 드문 칼라판으로 표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에 대해 당시 학술부장이었던 康舜洙는 ‘表紙解說’에서 “原色을 쓰면 俗된 感을 주지나 않을까 念慮되였으나 東洋醫學 固有의 思考原理를 象徵하려는 意圖에서 原色을 쓰기로 하였다. 푸른 바탕은 東方을 强調하고, 圓內의 靑色은 春(東), 赤色은 夏(南), 白色은 秋(西), 黑色은 冬(北)을 表象하며, 풀은 空間에서 季節의 變化(時間)에 依하여 生, 長, 收, 藏과 生命現象이 이러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칼라판으로 표지를 작성한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이었다. 그리고, 사방의 색깔을 갈려 놓고 가운데에 식물을 그려놓은 것은 자연의 변화가 한의학에서 중요한 인식의 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잡지의 제일 앞에는 당시 學長이었던 朴鎬豊(필명은 楠 學人)의 “創刊에 際하여”라는 글이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同 글에서 朴鎬豊은 학술지 간행의 시의적절함을 치하하면서 앞날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이어서 당시 회장이었던 任英宰의 위의 창간사와 金長憲의 “溫故知新의 態度를 堅持하라”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글들이 학술적 논고로 구성되어 있다. 蔡仁植의 “三焦에 對한 硏究”, 李柱連의 “나의 臨床手帖에서”, 金完熙의 “崩漏에 對한 나의 小考”, 李昌彬의 “眞中風에 대한 古典的考察” 등이 그러한 글들이다.
뒷부분에는 1958년 현재 학생한의학회회원명부가 실려 있다. 여기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니, 顧問은 당시 敎授였던 朴鎬豊, 朴性洙, 金長憲이었고, 會長은 任英宰, 副會長은 李珩贊, 李錫山, 總務部長 卞廷煥, 學術部長 康舜洙, 涉外部長 卜箕乙, 出版部長 金甲洙 등이었다.
이 자료는 前 慶熙大 韓醫大 學長 이형구 교수의 기증에 의해 현재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 보관되어 있다.
◇1958년 최초의 학생회지 ‘東醫’에 나오는 임영재 회장의 창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