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엽서의 시대이다. 엽서가 유행하게 된 데에는 엽서 앞면에 있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단순히 당시 사진 기사나 화가가 묘사한 시대적 단상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진 기사와 화가의 시각 혹은 그 작품을 의뢰한 사람의 의도를 드러내주는 시대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엽서에 나오는 이미지와 설명문을 통해 시대적 상황과 제작자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에 대한 연구서들이 나와서 엽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떠오르고 있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만든 『사진엽서로 떠나는 근대기행(The Journey to the Modernity)』, 권혁희의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등이 그러한 류의 저작들이다.
일제시대는 엽서가 많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그 범위는 풍속, 유물, 인물, 유적, 사건 등 다양하다. 특히, 일제의 조선침략 이후 조선개발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박람회를 열고 안내 팜플렛과 엽서를 만들면서 조선의 침략을 미화하는 전략에 철저하게 엽서를 이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는 풍속 관련 엽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었다.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 무식하고 피폐된 조선민중의 이미지, 옛날 서당과 신교육 시설을 대비하여 놓은 엽서, 무당과 주술, 각종 기생 관련 이미지 등이 그것이다. 특히 기생 관련 엽서는 수백종에 이른다. 이들은 기생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조선을 환락과 관음이 넘치는 땅으로 외국에 소개하려 하였다. 이것은 기생의 이미지를 통해 외국에 조선에 대한 왜곡된 타자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필자가 지난 몇 년간 수집한 일제시대 엽서 가운데 두 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한국의 인삼에 대한 삽화가 담긴 그림엽서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시대 한약국 앞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이다.
첫 번째 인삼 관련 엽서는 일제시대 제국주의의 시선을 그대로 우리에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황당하다. 조선인삼도 아니고 ‘고려인삼’이라고 써놓고선 ‘人蔘’이란 단어도 ‘人三’으로 써놓았다. 인삼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이미지를 구기기 위해 ‘高麗’라는 말을 첨가하고 ‘인삼’도 ‘人三’이라고 하여 인삼의 영적 이미지를 상쇄시키고자 한 것은 아닐까? 전체적인 글의 의미는 잘못 읽으면 “고려시대 사람 셋(高麗人三)”이 되고 만다.
인삼 위에는 어떤 제약회사의 로고인지는 모르지만 세명의 인물이 팔뚝을 올리고 체조하는 모습이다. 아래 왼쪽에 있는 인물의 팔끝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마치 잘못 비쳐져서 독립만세로 보일까봐 조심하고 체조하면서 몸을 사리는 듯한 조선인의 모습을 희화화한 듯하다.
게다가 인삼 앞에 모델처럼 서있는 사람이 기생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상당히 요염한 자태로 서 있다. 게다가 기대고 있는 오른손 아래에 서양의학을 표상하는 십자가 그림이 그려 있는 양약을 담고 있는 약장이 있다. 몸 뒤로 동백나무가 올라간다. 동백은 일본에서는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차고 다녔던 질병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가 있는 나무로 일본인들이 애호하는 식물이다. 도대체 무엇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려는 것인가? 마치 전통의학 한의학을 등지고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서양의학에 기대어 안락하자는 것인가?
두 번째 아이들이 놀고 있는 사진엽서는 우리들의 시선을 혼란시킨다. 필자만해도 이 사진을 기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입한 데에는 뒷배경에 있는 ‘乾材局’, ‘…生堂藥 ’라는 글자 때문이었는데, 이 엽서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니 관심사가 오히려 사진 모델인 놀이하는 아이들인 모양이다. 실제로 일본사람이 쓴 엽서의 제목을 보니 영어로는 “Playing of girl”, 일본말로는 “少女板飛逾び”이라고 쓰여있다. 즉 번역하면 “소녀들이 널빤지 위에서 뛰면서 놂”이다.
한약으로 상징되는 한의학의 공간은 이 이미지대로 본다면 여자 어린이들이 문앞에서 널뛰기나 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간판의 주위는 조선의 멸망과 함께 퇴락하는 조선의 전통을 상징하는 금가고 떨어져나간 벽면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마치 전통으로 상징되는 한약국 앞에서 놀면서 안락을 느끼고 외부의 핍박이 오면 언제든지 안으로 도망갈지도 모르는 듯하다. 아니면 전통의학의 몰락과 함께 이 공간이 없어져서 이들은 다른 안락한 공간을 찾아야 될 운명인지도 모른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엽서를 통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시선을 한국인들에게 투사한 제국주의적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어 그 뿌리부터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시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제시대에 나온 두 장의 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