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현대 한의학의 인물을 발굴하여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지난 역사를 정리하여 우리의 정신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근현대 한의학 인물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기준에서 분류하여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먼저,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궁중에서 활동했던 御醫들이다. 이들은 궁중에서 제왕과 왕족들을 치료하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국가의 운명의 부침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산증인으로 대우할 수 있을 것이다. 張容駿, 李鶴浩, 李峻奎, 洪在 , 趙炳瑾, 金性璂, 崔奎憲, 洪哲普, 方周赫, 徐丙孝, 盧駒榮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궁중에 御醫로 근무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궁중을 벗어난 후 서울 장안에 한의원을 개원하여 환자를 보면서 한의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각종 활약을 하였던 인물들이다. 궁에서 나온 후에도 일부 인물들은 계속해서 궁중과 연계를 유지하면서 구왕실 주치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洪在 , 徐丙孝 등이 이에 속하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둘째, 한의사 단체의 조직과 관리를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다. 개항 이후 서양의학이 들어온 후 전통의학의 위기를 느낀 한의사들은 단체의 필요성에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1898년 설립된 大韓醫士總合所에서 연이어 회장을 하면서 한의사 모임의 시작을 연 崔奎憲(1846~?), 李鶴鎬(1850~?)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이 단체를 이끌고 10여년이 지난 후 1912년에 醫師硏鑽會, 1913년 漢方醫會, 1915년 全鮮醫會, 1917년 東西醫學會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21년에는 東西醫學硏究會를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해방 후 1947년에는 東洋醫學會가 구성되어 학술적 연구를 시작하였다.
셋째, 학술적으로 각종 성과물을 내어서 학계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조선 최후의 官撰醫書인 『醫方撮要』를 지은 李峻奎(1852~1918), 『醫方大要』(1928년 간행), 『圖解運氣學講義錄』(1928년 간행), 『萬病萬藥』(1930년 간행), 『大東醫鑑』(1931년 간행) 등 多作을 하여 학계에 기여한 金海秀(1858~?), 『增補辨證方藥合編』(1927년 간행), 『麻疹經驗方』(1918년 간행), 『漢方醫學指南』(1941년 간행), 『辨證方藥正傳』(1964년 간행) 『李常和治療指針』(1986년 간행) 등을 간행한 李常和(1869~?) 등이다.
넷째, 한의학 교육을 위해 매진한 인물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同濟醫學校 설립에 기여한 洪哲普, 張容駿, 李鶴浩 등과 일제시대에 각종 강의와 교육으로 후진 양성에 기여한 金永勳, 田光玉, 成周鳳 등이 이에 속한다. 해방 후에 교육계에서 분투한 인물로 金定濟, 朴鎬豊, 洪性初, 金長憲, 金基澤, 李昌彬, 尹吉榮, 洪元植 등이 있다.
다섯째, 한의사제도의 성립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다. 해방 후 한의사제도가 확립이 가능하였던 데에는 尹武相, 李羽龍, 禹吉龍, 權義壽, 鄭源熹 등의 五人同志會(韓國醫藥會 회원들)와 서울에서 피난내려온 한의사 金永勳, 方周赫, 朴鎬豊, 朴性洙 등의 합심노력으로 가능하였다.
여섯째, 일제의 각종 탄압을 무릅쓰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1916년 4월2일자 每日申報에는 “全朝鮮醫生會를 保安法 第1條에 의하여 解散을 命하고 全朝鮮醫生會 關係者 池錫永, 金性琪, 崔東燮, 景道學, 張起學, 尹用培, 全鳳, 韓秉璉, 趙炳瑾, 朴麟緖 等을 鍾路警察署로 招致하여 今後 다시는 이같은 會를 設立하지 않겠다는 誓約書를 提出케 하다”라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시대에 全鮮醫會는 일제의 탄압을 받고 해산되고 말았다.
일곱째,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한의사의 발굴이다. 의외로 이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위성현 원장이 중심이 되어 데이터베이스에서 몇 명을 찾아낸 성과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실물자료 등과 관련 역사적 근거 등이 확보되어 유려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지면관계상 몇 가지 기준으로만 분류해서 근현대 한의학 인물에 대한 분류만 시도하였다. 근현대는 한의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시기는 자료에 대한 수집, 정리 및 분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자료에 대한 수집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십시일반의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이 시기 인물에 대한 정리의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근현대 인물사 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