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한겨레신문 의료전문기자
·저서: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
한 의사 출신 의료전문기자가 한의학에게 바란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말만 변하지 않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의학의 역사도 이를 증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서양의학이 의학의 중심이 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서양의학의 위상 역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서양의학의 역사에서도 이런 변화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면 150여년 전 유럽에서는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됐다. 젬멜바이스라는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전 철저한 손 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근거 중심의 평가는 한의학에게는 새 기회
지난해 인플루엔자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가장 강조되던 생활습관 가운데 하나인 손 씻기를 서양의학에서 본격적인 근거를 가지고 권고한 역사가 겨우 150여년 됐다는 뜻이다.
또 지금 손 씻기가 수많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기본적인 수칙이라는 데에 의심하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 이 손 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젬멜바이스는 주류 의학계에서 ‘말도 되지 않는 논문’이라는 비판 아래 거의 ‘왕따’를 당하다시피 했다. 꼭 이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심지어 그는 정신질환을 앓기도 해 말년에는 정신병원에서 보내다 숨지기까지 했다. 젬멜바이스의 논문이 나온 뒤 약 30년이 지나 인간이 세균을 발견하면서, 젬멜바이스의 논문은 의학계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손 씻기처럼 중요한 위생습관이 의학에서는 왜 그리도 역사가 짧을까? 또 손 씻기가 과연 의학 기술 또는 서양의학의 기술인가?
또 다른 사례 한 가지를 더 설명해 보고자 한다. 좋은 약들이 많이 나오고 예방백신까지 있지만 여전히 결핵 때문에 최근에도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한해 평균 3000명 가량이 이 결핵으로 숨졌다.
지난 2월20일 기준 2009년 유행한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사망이 240명에 이른 것에 견주면 결핵이 얼마나 심각한 질환인지 대략 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결핵과 관련해서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결핵균의 존재를 발견한 1880년대보다 50년이 앞선 그리고 결핵 치료약을 발명한 1940년대보다 약 100여년 전부터 결핵으로 인한 사망이 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결핵균의 발견과 결핵 약의 발견은 결핵으로부터의 사망 위험을 줄이는 데에 중대한 공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에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항생제나 예방백신으로도 완전 퇴치가 불가능한 결핵으로부터 우리 인간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항생제나 예방백신이 있어도 결핵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이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서양의학이 실제로는 그리 역사가 깊지도 않고 아직까지도 한계가 많다. 당장 과거 10년 동안만 해도 서양의학이 다루는 영역과 의학기술은 매우 많이 달라졌다.
10년 뒤에 또 의학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 만성질환이 크게 유행하게 되면서 최근 서양의학의 새로운 기술이 집약돼 개발되는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의학의 변화가 논의되고 있다. 한의학의 개념을 포함해 대체의학도 이 가운데 하나의 큰 관심사이다.
이는 서양의학이 과거 약 100년 동안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의학의 관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암, 뇌졸중 등 질병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과 같은 원인 병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사람 전체로 관심을 옮겨야 하고,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어떻게 올릴 수 있느냐가 새로운 관심이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서양의학을 비롯한 모든 의학 기술의 평가에 실제로 건강 수준을 높이느냐 또는 사망 위험을 낮추느냐 등에 대한 답으로 근거를 중심에 놓고 평가하게 됐다. 새로운 약품이나 의료기기 등이 무조건 높은 값을 받아야 한다거나 사람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약이나 의료기기보다 사망 위험을 낮추고 건강 수준을 높이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런 근거 중심의 평가는 수많은 새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생산해 내는 서양의학에 무서운 메스(수술 칼)가 되고 있다. 동시에 이런 근거 중심의 의학 역시 한의학을 비롯해 대체의학에게는 기회다. 과학을 비롯해 서구의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근거를 중심에 놓고 평가하면서 새롭게 건강 수준을 높여갈 의학을 만들어 갈 수 있고 이를 대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 새 질병 양태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한의학이 이렇게 변화하는 질병 양상과 의학의 평가방법이 달라지는 현상에 제대로 적응하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한의학에 대해 배운 바도 없고 잘 모른다. 다만 한의학이 앞서 말한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잘 모르면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빈다.
현재 한의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면 과연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과 같은 의서들에 나와 있는 질병의 치료법과 건강 향상법을 현대인들에 맞게 얼마나 변화시켜 왔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적절한 치료법이나 건강법을 제시했을 것이다.
또 시대가 조금씩 바뀌면서 후세 의학자들이 일정 부분 수정하고 첨삭하면서 더 나은 의서가 됐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책들이 만들어졌을 때와는 근본적으로 시대가 다르다. 비행기로 하루만에 전 세계로의 이동이 가능하게 되고 지하철, 자동차 등 교통의 발달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과일을 먹게 되고,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식습관도 매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처럼 농사만 짓지 않고, 이제는 공해로 찌든 도시에서 살면서 사무실에 앉아서만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컴퓨터, 텔레비전의 발달로 먼 풍경을 바라볼 기회도 별로 없어 시력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엄청난 시대 변화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면 건강하다’는 원칙은 통할 수 있겠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과거의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 변화와 이를 통해 나타나는 질병을 한의학이 설명할 수 없다면 이제는 더 이상 의학 및 의술로서 기능하기보다는 ‘봄, 가을이면 보약이나 한 번 먹기’ 위해 찾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마저도 최근 급속하게 커지는 영양제 및 건강기능식품에 내어 주고 있음을 보면 이 역시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 관리, 통합의학적 관점이 대두된다
하지만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다. 질병 중심이며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질병의 원인체에 집중하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그 기본이 질병이 아닌 사람 전체를 보는 의학이었다.
건강 수준을 높이면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돼도 예방백신이나 치료약 없이도 우리의 면역력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사람 전체를 보는 의학의 기본인 것이다. 물론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뇌졸중, 암, 치매 등과 같은 중증질환은 물론이고 고혈압, 당뇨 등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합의학적인 관점이 다시 대두되고 있음은 앞서도 계속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더 필요한 관점은 현대의 환경 변화와 현대인의 생활습관의 변화에 맞는 근거일 것이다. 감염질환의 시대가 아닌 만성질환이 중심이 되면서 서양의학은 단순히 치료가 아닌 근거가 꼭 있어야 하는 치료로 바뀌었으며, 또 생활습관 변화 등을 유도할 수 있는 보건의료제도의 개편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몸과 마음의 전체적인 균형을 갖추는 치료가 실제적인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이를 통해 한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치료자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관리하면서 손 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위생습관은 서양의학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변화하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한의학으로 국민들의 건강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