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에는 보람과 나눔의 기쁨이 있다”
지난 50여 년간 끊임없이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온 한의계 원로, 대전 유성구 성제한의원 김학진 원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부터 피난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에는 보건소도, 의원도 없었습니다. 진료비를 낼 형편이 안되는 피난민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진료해줬습니다. 그래도 기어코 사례를 하겠다는 환자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참 많이 얻어먹곤 했지요.”
김학진 원장은 그렇게 의료봉사를 시작했던 때를 추억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의료봉사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975년부터 기록해 둔 의료봉사만 세어 봐도 국내 203회·해외 51회로 총 200회가 넘는다고 한다.
대전시 산성동 무의촌, 서해 ‘삽시도’ 병원선, 충남 공주군 탄천면 수재민, 광주 천해경로원, 전남 신안 도서지역, 전북 무주·진안·장수 영세민 독거노인 대상 의료봉사 등 그는 전국 각지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어디든지 다녔다.
또 1985년 2월 실시한 필리핀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홍콩, 소말리아,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우크라이나, 스리랑카 등 해외에서도 의료봉사를 펼쳤다고 한다.
그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의료봉사에 대해 물었다.
“필리핀 북부지역으로 의료봉사활동을 갔을 때, 진료를 하는 도중 갑자기 총성이 났고 반정부군을 피해 24시간동안 지하실에 대피했습니다. 다행히 보초병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의료봉사를 하러 가는 길에 보초를 서던 병사에게 침 시술을 해줬던 것이 인연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합니다.”
또 김 원장은 가장 보람됐던 봉사로 2002년 우간다 의료봉사를 꼽았다.
“당시 우간다 오지의 난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원래 정해진 시간은 오후 6시까지였는데, 그 시간이 지나서도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버스 라이트를 이용해 밤 10시30분까지 진료를 했고, 그날 하루 동안 진료한 환자가 총 500여명이었습니다. 내과·소아과·약사 등을 비롯해 의료진 6명이 하루에 진료한 환자수로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늦게까지 힘들게 진료를 했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많이 느꼈고, 그때의 의료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김학진 원장은 그를 비롯해 아들, 손녀까지 3대가 모두 한의사, ‘한의사 가족’이다. 이제는 손자도 그를 따라 인술을 실천하는 한의사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 가족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돈 생각하지 말라. 의술은 인술이다. 의술을 통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봉사는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한의사인 아들, 손녀, 손자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술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봉사’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0세가 되어서도 의료봉사를 할 것입니다.”
올해 85세인 김학진 원장. 지금도 매월 정기적으로 대전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 및 윤락여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오는 5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52회째 해외의료봉사를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1942년에 침구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1974년 정식으로 한의사 자격을 얻어 한의사로서 진료를 하고 있는 김학진 원장은 지난해 대한침구사협회 회장직을 맡게 됐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침구사협회는 지금까지 평행선을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학진 원장을 통해 교집합을 찾아나가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를 매개로 앞으로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침구사협회의 협력관계가 돈독해지리라 기대해본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의료봉사활동에 임합니다. 금전적인 것을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의료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의료봉사를 통해 얻는 보람과 나눔의 기쁨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자꾸 의료봉사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의료봉사를 가면 기운이 솟는다고 말하는 김학진 원장. 그의 바람대로 100세까지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를 누비며, 의료봉사를 통해 인술을 실천할 김학진 원장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