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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강솔 소나무한의원장

강솔 소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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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가 일기



지난 가을 학교에 다녀왔다. 나의 모교가 있는 중소도시는 내가 처음 학교에 갈 때도 지방의 소도시였고 지난 20여년동안도 계속 지방의 소도시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학교 앞 풍경도 마찬가지라서 학교에 새 건물이 몇 개 들어섰다고 해도, ***복사도 그대로 있고, &&복사도 그대로 있고, 농협도 한 이십년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심지어는 내가 대학 입학시험 보러 가서 잤던 민박집도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날따라 복사할 게 있어서 복사집 앞에 내렸는데 그 옆에 서점이 있었다. 우리 학과의 교재나 전공서적을 주로 파는 작은 서점이었는데 오랫만에 보니 반가왔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전공서적을 구하느라 전화를 걸곤 해서 아직도 전화번호부 어딘가에 그 전화번호가 남아 있을 것이다. 반가워서 들어갔다. 무슨 책이 있나 둘러보는데 군데군데 책꽂이가 비어 있다. “아니 책이 왜 이렇게 없어요?” 묻는 내게 “반품하느라 책을 싸서 그래요. 학생들이 책을 사지 않아요, 서점 닫을까 해요. 도저히 여기서 버틸 수가 없어요. 그나마 저는 오래 버틴 거에요. 경희대 앞의 서점도 몇 년 전에 문을 닫았고 대전대 앞의 서점도 올해 초에 문을 닫았어요”란다.



“애 키우고 밥 먹고 살아야하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요”라고 우울하게 말씀하셨다. “아니 그래도 학교 앞에 서점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안타깝네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저도 어제 반품하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한쪽 구석에 핸드폰 가게라도 해서 핸드폰 하나라도 팔아서 유지하면서 한쪽엔 서점해서 그래도 몇 년이라도 더 버텨볼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도 울먹울먹하였다. 학생들이 그나마 산다는 책들은 대체의학이거나 근육학 책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라고 하였다.



이 서점 안에서 이십여년 전에 친구들과 같이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학기 초에 책을 사겠다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친구들이랑 술 마셨던 적도 있었고, 그렇게 산 책 중에 읽지도 않은 책도 많아서 지금 책을 사지 않는다는 학생들에게 뭐라고 할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나는 이 디지털 시대에 문 닫을까 고민하는 서점 안에서 좀 슬펐다. 후배들이 사서 간직하고 싶을만한 책을 알려 주고, 자료를 축적해서 좋은 책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배들이 할 일이 아닐까 싶어서 나는 그럼 임상을 어떻게 하고 있나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여하간에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매일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학문과는 좀 종류가 다른 학문인데 대체의학에 관련된 책만 좀 팔린다는 전공서점이라니.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안에 있는 우리 학문에 대한 정체성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냥 서운했다, 변할 것 같지 않던 이 학교 앞 풍경 중에서, 이 서점이 사라진다는 것이 서운했다. 서점이 사양길이라는 것도, 인터넷 서점으로 학생들이 책을 구입 할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세대차이? 격세지감? 그런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냥 서운하다고 말하기엔 좀 다른 마음이 올라왔다, 뭔지 잘 모를.

일을 마치고 학교 앞 병원에 앉아 있는데 얼굴을 아는 교수님이 지나가시길래 반사적으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수업을 듣거나 그러지 않아서 몇 가지 접점이 있음에도 나를 아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반갑게 인사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도 알고 계시며, 나의 최근 근황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친근한 마음이 확 올라오면서 문득, 내 입에서 튀어 나간 말, ‘교수님 무척...중후해지셨습니다..’였다. 그분을 오랫만에 뵙고서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머리가 거의 하얗다’는 느낌이었다. 반백의 머리를 넘어서, 70%의 백색이랄까. 어딘가 청년 같은, 낭만적인 느낌을 풍기는 교수님이셨는데.. ‘늙었다는 얘기지’라고 웃으시는 그 얼굴은 여전히 청년 같으셨으나. 자주 보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시간이 그 분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서점에서 느꼈던 슬픔이랑 비슷한 느낌이 올라왔다. 교수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른한 채로 무료한 듯 앉아 있는 진료실 앞의 간호사를 보면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몇 사람을 보면서, 마음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 병원의 이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뒷자리에서 어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전라북도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타는 그 대화를 들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처음 그 도시에 갔을 때, 처음 그런 말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 혼자 있었던 때, 가 떠올랐다.



문득, 나를 시간이 통과해가는 것 같았다. 나를 통과해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그 느낌을. 시간을 움켜쥐고 있는 것과 반대로,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쥐고 애쓰는 느낌이 그냥 그림자 같다고나 할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나를 통과해서 흐르고 있다는 것, 나는 그저 그 흐름 안에 그 순간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던 시간이었는데, 시간 속의 풍경의 일부분으로 내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거라고나 할까? 말로 설명하긴 힘들다. 그냥 마음이 매캐하였다.



여섯시쯤 기차를 타러 역에서 기다리는데, 내가 탈 급행열차는 아직 오지 않는데, 전주 순창 남원 여수를 가는 기차의 안내 방송은 계속 들렸다. 지금 전주를 지나 순창 남원을 가는 들판을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 그 들판은 어떤 색일까. 남원 순창을 지나 여수를 가던 내 청춘이 그리웠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피와 살로 발 딛어야할 현실은 서울 가는 급행 열차에 있고 내 마음은 여수 가는 완행열차에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기쁨도 슬픔도 다 지나가리라..는 말을 오늘 아침에 보았다. 그렇다. 내가 움켜쥐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흘러가고 있다. 그 흐름 속에 내가 있다는 것, 시간이 나를 통과해서 흐르고 있다는 것, 나는 그렇게 누군가 무엇인가와 잠깐씩 ‘해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오랫 만에 해후라는 그림도 떠올랐다.-을 2010년 가을, 모교를 떠올리면 생각이 날 것 같다. 정말로 다 지나가리라는 것, 나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던 그 순간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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