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는 상투적인 말 가슴으로 느껴
용기를 내어 많이 보고 만나고 부딪치고 느껴보기를 바래
여행을 떠나온 지 5개월. 한숨 돌리면서 중간정리를 해 볼만한 시기인 듯하다. 중동을 여행했던 기억은 벌써 아득하고,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사진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는 추억 이야기로만 기억될 뿐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오가고 있겠지. 내가 걸었던 그 길을 그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걷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느낀 중동, 그들이 느낀 중동. 여행자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주제는 ‘다양성’이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모두들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가치를 타인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기에 한 가지 기준만으로 점수를 매겨 줄을 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것을 가슴으로 많이 느꼈다. ‘성공한 삶’의 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어 모두를 천편일률적으로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에만 매달리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한국사회가 서글프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실패자, 낙오자, 꼴찌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모두들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많이 했던 중동여행을 끝내고 지금은 유럽으로 넘어와 있다. 라트비아, 스웨덴,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등 사진 속에서만 봐 오던 그런 곳에서 실제로 걸어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이 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집들과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 꽃밭, 그리고 잘 꾸며진 박물관들은 중동의 고대 유적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또한, 내 안으로만 파고들었던 지난 다섯 달과는 달리 이제 내 밖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낭을 메고 움직이는 생활이 이제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첫 기사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비행기 안에서 혼자 잠을 설칠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심이 컸다. 익숙한 것만 계속 반복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던 지난 24년간의 세월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거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안정된 환경에서 좁은 시야만 가지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하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여행은 액체와 같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의 짧은 팔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도망가 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새 인가부터 낯설었던 일들도 곧잘 익숙해져 가고 내 스스로가 더욱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도 더욱 넓어지는 것 같다.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열등감 그리고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내 마음 속에 있는 장애물을 하나하나 조금씩 넘어서는 재미도 맛보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세상의 가치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고 따라서 움직였다면, 지금은 조금씩 내 마음 속의 소리를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는 상투적인 말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여행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공중보건의사 원서를 취소버튼을 누르던 불안했던 그 선택의 기로에서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여행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피성으로 밥 먹듯 관광나오는 것은 오히려 반대한다. 하지만 일상의 쳇바퀴에 갇혀서 스스로 무의미하다 생각하며 인생을 소모하기 보다는 용기를 내어서 많이 보고 만나고 부딪치고 느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앞으로 6개월의 시간이 오롯이 내 앞에 놓여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