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성인은 항상 몸에 도(道)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를 지키니까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사표(師表)가 된다. 그러면 성인이 지니고 있으면서 지켜야할 덕목은 무엇인가? 첫째, 부자현(不自見)이라 했다. 자기를 스스로 나타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엔 피알(PR)시대라고 해서 자기선전을 해야지 자기선전을 안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선전을 안해도 알게 되어 있다. 진흙 속에서 진주가 빛나듯이.
그러므로 ‘명(明)’이라 했다. ‘명(明)’은 밝다는 뜻이다. 잘 드러나 보인다는 말이다. 자기를 스스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출중하다. 둘째는 부자시(不自是)라 했다.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창(彰)’이라 했다. 여기 ‘창(彰)’도 드러난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기 의견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으니까 그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면, 상대방의 생각은 그르게 된다. 바로 그 옳다고 하는 것, 그것이 ‘자시(自是)’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부자시(不自是)’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니까 그가 뭇사람들 위에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현(自見)’이니 ‘자시(自是)’니 할 때 그 ‘자(自)’는 성서의 언어로 말하면 하느님 아버지를 등졌다고나 할까, 떨어져 나왔다고나 할까 하는 뜻에서 말한 자기다.
에고(ego)가 내재(內在)한 이기(利己)의 자기다. 그런데 ‘부자시(不自是)’라 했으니 그런 자기가 아닌 하느님과 하나가된 합일된 자기이다. 그러니까 ‘하나’인 도(道)를 한결 같이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를 나타낸다거나 자기주장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일 따위는 할 수도 없고, 또 하지도 않는다. 셋째는 ‘부자벌(不自伐)’이다.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벌(伐)’은 ‘자랑할 벌’자로 뽐낸다는 뜻이다. ‘부자벌(不自伐)’이라 했으니 스스로 뽐내서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공(有功)’이라 했다. 공덕(功德)이 있다는 말이다. 요즘 열심히 공들여 잘하고도 공치사해서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자랑하지 않아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뭇사람이 알아준다. 공(功)이란 스스로 내세우면 사라지고 말지만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면 영원히 남는다. 예수님도 자선을 베풀 때에는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그게 남몰래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석가는 이런 것을 ‘무주상보시(無住常布施)’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공(功)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내세우고 싶은 마음, 또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 이런 맘들이 어찌나 뿌리가 깊은지 뽑아내기 어렵게 박혀있으니 말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러니까 태양 폭발 때부터 나의 유전자 속에 이미 들어 있어 왔다. 그걸 불가에서는 ‘업(業, Karma)’이라 하고 성경에서는 ‘원죄(Original sin)’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부자긍(不自矜)’이라 했다.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장(長)’이라 했다.‘장(長)’은 ‘어른 장’자로 우두머리란 뜻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즉 스스로 긍지를 갖지 않기 때문에 남의 우두머리가 된다. 결국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