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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김인범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김인범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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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는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上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막막함



지난 봄부터 우리 한의계에 기대를 갖게 했던 일이 하나 생겼었다. 우리 한의학의 자랑인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신청되어 7월말에 그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동의보감기념사업단이 주축이 되어 그 동안 등재 의의와 당위성 등 논리 개발과 등재 신청에 따른 준비와 진행을 계속해 오면서 상당부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은 할 수 있었지만 국제기구의 결정이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7월말 이름도 생소한 바베이도스에서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한의계와 관련기관이 그 회의에 참가단을 구성하여 홍보와 문제제기에 대한 대응을 하기로 하였다.



7월20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마지막 전략회의를 가졌다. 이날은 최종적으로 참가단으로 확정된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김기옥 한의학연구원장, 최영호 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 조동주 문화재청 사무관, 권오민 전 사업단 기획실장, 정소영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직원 그리고 필자가 참석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직원이 그동안의 유네스코 회의의 분위기와 참가단이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 등을 설명하는 동안 필자는 갑자기 막막함을 느끼게 되었다.



국제기구 회의에 처음 참가해보는 대부분의 참가단 일행은 그 설명이 유일한 정보였는데, 회의에 참가하여 위원들을 접촉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고 심지어는 감점의 요인이 되며, 공개적인 홍보를 할 수도 없으며, 잘못하면 다음에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각종 세계문화유산의 등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의보감의 심사도 언제 어느 순서에 하게 될지 전혀 사전통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회의에 처음부터 결정 순간까지 잠시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막연하게 현지에서 열심히 위원들에게 홍보하면 우리의 할 일을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필자 등은 막막한 심정으로 다음 주에 바베이도스를 가야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멀고 먼 여행길



중남미 카리브해의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바베이도스는 우리나라의 거제도 정도 되는 섬나라로서 1625년 영국사람이 상륙한 이래로 30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6년 독립한 인구 28만 정도의 조그마한 나라이다.

여기서 회의를 열게 된 것은 이 위윈회의 의장이 바베이도스 출신이었기 때문이다(이번 회의에서는 호주 출신이 의장으로 선출).



7월27일 오후 협회를 출발한 필자는 인천공항에서 참가단 일행과 만났다. 다들 약간은 설렘과 긴장 속에 인사를 나누고 멀고 먼 비행 일정을 시작한다.

13시간을 넘게 날아가 뉴욕을 도착한 일행은 다음 날 새벽 바베이도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뉴욕공항에서 13시간의 대기 상태를 보낸다. 이른 아침 바베이도스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먼저 뉴욕에 와있던 서경호 서울대 교수(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와 전택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 같은 비행기로 바베이도스를 향하게 된다.



서울대 서경호 교수님은 어쩌면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숨은 최고의 공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위원으로 계시면서 등재과정에 필요한 적절한 조언과 자문을 계속해 주셨던 분으로 공개적으로 공로를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지시간으로 28일 오후 1시30분 뉴욕을 떠난지 5시간, 한국을 떠난지 32시간 만에 바베이도스에 도착을 했다. 카리브해의 휴양지라는 말에 약간의 기대를 했었는데 조용하고 낙후된 휴양지에 불과한 조그마한 섬마을 그 자체였다.

바베이도스 교육부 차량으로 숙소로 이동한 우리 일행은 벌써 마음이 급했다. 우리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내일부터 회의가 열리게 되는 Christ Chuch에 있는 Accra Beach Hotel로 향했다.



혹시라도 위원 중 일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회의장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하고 참가단이 앉을 자리를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호텔에는 그 흔한 프랭카드 하나 없었고, 과연 여기가 국제기구의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안내표시도 없었고, 회의장 내부도 초라하기만 했다.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요란하게 치장하고 동네가 온통 거기에 맞춰서 장식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위원들에 대한 접촉이 금지되어서인지 위원들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다시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숙소 돌아와 마지막 점검과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위원들의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 자료를 검토하고,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위원들에게 접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결국 기회가 되는 한 일대일(man to man) 접촉을 최대한 하기로 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동의보감에 부정적인 견해들을 정리해서 대응 답변을 만들어 공유하기로 했다.



국제자문회의(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시작



29일 아침 일찍 참가단은 회의장에 도착했다. 오전 9시30분에 개회식이 시작하지만 8시30분에 가서 위원들을 기다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의 등재 결정과정을 설명하자면, 국제자문위원회의 위원은 총 21명으로 구성되고 그 중에서 기록유산등재를 심사하는 등재소위원회(RSC, Register sub-committee)는 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회의에 앞서 등재소위에서 평가심의를 해서 등재추천 보고서를 올리게 된다.



그 보고서를 토대로 전체회의가 확정 의결하여 유네스코 본부에 승인 요청을 하게 되는데 최종적으로 사무총장이 결재를 하고 위원회 의장이 이 사실을 공식통보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음이 공식화 되고 언론에서 보도가 가능해진다.



7월29일 오전 9시50분 바베이도스 교육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참가단은 일단 옵저버석에 앉아 개회식을 지켜보기로 했는데 의장이 뜻밖에도 위원석 중 빈자리에 옵저버들이 앉아도 좋다는 발언을 했다.

정말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21명의 위원석을 준비해야 하는데 회의장을 준비하는 측에서 좌석을 30석 이상 준비를 했고, 불참한 위원들도 몇 명 있었다.



우리 일행은 즉시 위원들 옆의 빈자리로 달려가서 위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위원들과의 공식·비공식 접촉이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위원들과 나란히 앉아 회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동의보감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위원들이 동의보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고, 충분히 세계기록유산으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심사기준이 강화되다



개회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회의가 10시 50분부터 의제(Agenda)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의순은 3일간(7월 29일~31일) 총 12개로 진행될 예정인데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록유산등재후보에 대한 사정(Assessment of nomina tions for the Register)은 5번째 의제였다.



그런데 예전 회의의 예를 보면 의순에 상관없이 제일 마지막에 상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잠시도 회의장을 떠날 수는 없었다. 동의보감에 대한 토론이 언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고 토론이 시작될 경우 적절한 답변을 해야 했다.

회의는 의장과 부의장, 서기의 선출로 시작되었고, 국제자문위원회 내의 소위원회와 지역위원회의 보고가 이어졌다.



등재후보의 사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등재소위(RSC)의 위원장이 심사보고가 우리의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그 요지는 어느 때보다 심사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신청된 기록유산은 40개국에서 총 55건을 신청했는데 18건은 소위에서 등재추천이 되지 못했고, 4건은 추천되었으나 국제자문위원회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이고, 33개만이 등재되는 것으로 보고를 했다.



등재가 추천되지 못하는 사유는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그 기록유산이 한 국가나 지역의 유산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기록유산의 가치는 있지만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 세계인의 유산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위원들과 공무원에게만 배포된 등재 사정과 관련된 회의자료를 볼 수 있었다. 필자는 그 위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백장에 달하는 회의자료 중 동의보감 관련 심사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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