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2.8℃
  • 맑음4.5℃
  • 맑음철원5.0℃
  • 맑음동두천6.1℃
  • 맑음파주4.6℃
  • 맑음대관령1.1℃
  • 맑음춘천5.6℃
  • 맑음백령도9.5℃
  • 맑음북강릉8.8℃
  • 맑음강릉11.8℃
  • 맑음동해10.8℃
  • 맑음서울10.3℃
  • 맑음인천11.2℃
  • 맑음원주6.7℃
  • 맑음울릉도13.2℃
  • 맑음수원8.1℃
  • 맑음영월3.5℃
  • 맑음충주5.3℃
  • 맑음서산5.2℃
  • 맑음울진7.6℃
  • 맑음청주10.0℃
  • 맑음대전8.4℃
  • 맑음추풍령5.4℃
  • 맑음안동5.9℃
  • 맑음상주9.1℃
  • 맑음포항11.0℃
  • 맑음군산7.3℃
  • 맑음대구8.1℃
  • 맑음전주7.6℃
  • 맑음울산9.4℃
  • 맑음창원11.6℃
  • 맑음광주8.6℃
  • 맑음부산12.1℃
  • 맑음통영10.5℃
  • 박무목포10.2℃
  • 맑음여수12.0℃
  • 맑음흑산도11.9℃
  • 맑음완도8.9℃
  • 맑음고창4.9℃
  • 맑음순천2.3℃
  • 맑음홍성(예)7.2℃
  • 맑음5.8℃
  • 맑음제주11.8℃
  • 맑음고산12.7℃
  • 맑음성산11.3℃
  • 맑음서귀포12.7℃
  • 맑음진주4.4℃
  • 맑음강화6.4℃
  • 맑음양평7.1℃
  • 맑음이천6.9℃
  • 맑음인제3.9℃
  • 맑음홍천5.2℃
  • 맑음태백3.0℃
  • 맑음정선군2.1℃
  • 맑음제천3.1℃
  • 맑음보은4.1℃
  • 맑음천안4.9℃
  • 맑음보령6.8℃
  • 맑음부여5.0℃
  • 맑음금산4.4℃
  • 맑음6.0℃
  • 맑음부안7.7℃
  • 맑음임실3.3℃
  • 맑음정읍5.9℃
  • 맑음남원5.0℃
  • 맑음장수1.9℃
  • 맑음고창군5.3℃
  • 맑음영광군5.4℃
  • 맑음김해시10.5℃
  • 맑음순창군4.4℃
  • 맑음북창원10.6℃
  • 맑음양산시7.9℃
  • 맑음보성군8.1℃
  • 맑음강진군5.8℃
  • 맑음장흥3.0℃
  • 맑음해남4.0℃
  • 맑음고흥4.6℃
  • 맑음의령군4.4℃
  • 맑음함양군3.1℃
  • 맑음광양시9.5℃
  • 맑음진도군8.0℃
  • 맑음봉화1.4℃
  • 맑음영주4.7℃
  • 맑음문경6.1℃
  • 맑음청송군3.0℃
  • 맑음영덕9.9℃
  • 맑음의성3.5℃
  • 맑음구미7.3℃
  • 맑음영천5.7℃
  • 맑음경주시6.3℃
  • 맑음거창3.1℃
  • 맑음합천6.6℃
  • 맑음밀양8.1℃
  • 맑음산청4.8℃
  • 맑음거제9.0℃
  • 맑음남해9.8℃
  • 맑음7.2℃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30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30

B0112009082532178-2.jpg

B0112009082532178-1.jpg

77세까지 內醫院 首醫로 봉직한 醫科 수석합격자



1608년(광해군 1년) 10월26일자 『光海君日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醫書 印出의 감역관 李絡은 東班에 서용하고, 申得一, 李希憲은 본 아문의 정직에 제수하되 이미 정직을 행하였으면 높은 품계로 부록하라. 唱準 이하 사람들은 훈련 도감의 兵書를 인출하고 내린 賞格의 예에 따라 마련하라.” 이것은 醫書의 간행에 공이 있었던 몇 명의 의관에게 관직을 제수하도록 하는 광해군의 교시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한명의 의관이 등장하니 이름이 申得一이다.



申得一에 대해서는 『醫科先生案』에서는 “平山申得一內內資尙衣主簿崇政首醫十五年澤舟中軍”, 『內醫院先生案』에서는 “平山申得一宣祖辛卯科 資主衣主崇政首醫十五年享年七十七”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와 같은 몇 개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 인물은 아버지가 中軍 申澤周이고 1591년(선조 24년) 辛卯 式年試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1608년에 의서의 편찬에 공적이 있어 正職에 제수되었고 77세까지 살면서 마지막 15년간 首醫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1619년에는 侍藥廳에 봉직한 공로로 加資되어 東班에 봉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질병치료에 공적이 많아 여러 차례 상과 加資를 받았다. 그의 치료에 대한 기록은 『承政院日記』에 소상하게 적혀 있다. 이 기록들은 앞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그의 치료술에 대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죽기 전 15년간 內醫院 首醫로 근무하면서 鳳林大君을 치료한 공으로 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고 품계가 資憲大夫(정2품)에까지 이르렀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