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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2일 (수)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34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34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仁’은 ‘人’과 ‘二’가 합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윤리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사회적으로 사람답게 해주는 ‘사람됨’이라 할 수 있다.



‘의(義)’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는 마음이다. 유교에서는 무엇을 할 때 이(利)가 된다고 하여 하는 행동과 이해(利害)에 관계없이 오로지 옳기 때문에 하는 행동으로 구별한다. 이 중 이해관계에 구애됨이 없이 오로지 옳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하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의에 입각한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이(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소인배(小人輩)의 짓이요, 의(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군자(君子)의 행동이라고 한다.



‘혜(慧)’와 ‘지(智)’란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지(般若智)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꿰뚫어 보는 초월적 영적지(靈的智)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인간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에서 얻어진 분별지(分別智)나 이성적 지식 혹은 일상적 의식의 한계 내에서 머리를 짜내서 얻어진 지략(智略)이나 지모(智謀) 같은 것을 뜻한다.



‘대위(大僞)’는 큰 위선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위(僞)’는 거짓 즉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는 인위(人爲)적 행위를 통틀어 말한다. 따라서 ‘대위(大僞)’란 엄청나게 큰 거짓행위란 뜻이다. ‘육친(六親)’이란 나와 부· 모, 형·제, 아내, 아들에 대한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 사이의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가족관계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효(孝)는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사랑이고, 자(慈)는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을 뜻한다. 노자는 『도덕경』 전체를 통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충격요법’ 비슷한 말을 하여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인의, 효성, 자애, 충성 따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최고로 여기는 덕목이다. 그래서 이런 것이 강조되고 실천되기를 바라고, 이런 것이 실천될 때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도덕경』에서는 이런 것이 강조되는 세상은 아직도 덜 된 세상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적 가치가 강조된다는 사실은 결국 그런 윤리적 이상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는 뜻이다.



사랑이 강조되면 될수록 그만큼 사랑이 부족함을 반증하는 셈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일수록 도덕이 더욱 거론되고, 정신적으로 병든 사회일수록 종교가 더욱 성행하게 된다. 마치 강력한 약이 많고 용한 의원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에 아직 질병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증거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설령 인(仁 )이니 의(義)니 하는 유교식의 최고 덕목이 완전히 실천되는 사회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런 덕목의 실천만으로는 완전한 사회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란 이런 덕목의 실천을 넘어서서 이런 덕목이 더 이상 문제되거나 필요하지 않은 사회, 윤리적 제약이나 규범에 머물러 있는 단계가 아니라 이런 단계를 넘어서 완전한 자유의 경지를 구가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을 최고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를 이룬다고 하여 그런 것과 상관없는 동물의 세계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물의 영역 특히 서로 물어뜯으며 살아가는 본능의 세계, 유교에서 말하는 금수(禽獸)의 세계는 인간이 이어갈 수 있는 삶의 형태 중에서 최하질의 것이다. 노자가 즐겨 말하는 인간사회가 이런 것일 수는 없다.



그가 가르치려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이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단계를 벗어나 인간답게 살려고 인의예지 등을 강조하게 되었지만 자칫 이 두 번째 율법적·윤리적 단계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라 착각하지 말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단계를 전인격적(前人格的, pre-personal), 인격적(人格的, personal), 초인격적(超人格的, trans-personal) 단계로 나눈다면, 제2의 윤리적 단계는 그 자체로서는 완성일 수 없고, 대도(大道)가 세상에 편만해도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율법이나 윤리가 폐한 사회가 아니라 완성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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