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에서는 지난달 30일 개최된 ‘감염병의 한의약 대처를 위한 TF’ 제3차 회의에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최준용 교수의 ‘한국 한의학의 감염병 접근’이라는 주제의 발표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한국 한의학의 감염병 접근 방안은?
다양한 감염병에대한 정책 아이디어 수립 및 우선순위 따른 실천 필요

감염병은 가벼운 감기에서부터 무서운 결핵, 폐렴,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에이즈 그리고 올해 유행했던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중요한 감염질환들은 국가 필수공공의료 시스템에서 담당하며 질병관리본부와 국립보건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관련 정책 및 연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감염성 질환들에 대해 한의계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데 지금 한의계는 감염성 질환들에 제대로 다가설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만약 감염병에 접근한다면 전략적으로 어떠한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 등에 접근할 것인지 등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경증 감염병이나 만성·소모성으로 나타나는 감염질환 치료 이후의 후유증 같은 경우에는 1차 한방 의료기관에서 한의약이 충분히 역할을 해나갈 수 있으며, 필요시 한·양약 병용투여 등을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메르스 등과 같은 중증 혹은 강한 전염력을 가진 감염병의 경우에는 국가방역체계 내에서만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한의계는 경증 감염질환과 중증 및 강한 전염력을 가진 감염병 등에 대해 구분짓고 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감염병에 대한 구분 및 접근전략 모색 필요
근래 한의계의 주요 감염성 질환에 대한 대응 살펴보면 지난 2009년 감기에 이어 신종 플루, 그리고 올해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유행성 호흡기 질환에 한의계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었다. 이에 대해 양의계에서는 총력을 다해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양 의료 직능 단체간 대립구도가 늘상 지속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느 한편을 들어주기 어렵게 되고 기존에 감염병에 대한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한의계는 아쉽게도 제대로 기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이러한 한·양의계간 대립구도의 틀을 깨고 철저하게 국민보건의 측면에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면 향후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 위기상황이 닥쳐도 한의계가 감염병 대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감염병 예방이나 치료에서는 한의약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또 1차 의료와 병원, 연구개발과 진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등 각 분야에서 어떻게 준비해 나갈지에 대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모으고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하나 실천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정책적 지원 속에 중국 중의약이 경험한 감염질환 대처 시스템이나, 일본에서 독감인플루엔자 환자 치료 및 독감 예방접종 시 한약병용투여를 활용하는 연구 및 진료행태 등 해외의 감염질환에 대한 전통의학 적용 사례를 어떻게 벤치마킹해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양의계 대립구도보다는 국민보건 측면서 고려해야
한국 한의약의 경우 해방 이후 민간 위주의 1차 의료 중심으로 자리 잡고 발전함에 따라 필수공공보건 분야의 국가보건시책 참여가 어려웠고, 한의과대학 및 의과대학이 별개로 운영되는 교육시스템과 의료 2원화의 한의사 의사간 배타적 면허 시스템, 각종 감염 질환에 대한 한·양방 협진의 경험 및 상호 이해 부족 등으로 감염병 분야에서 한의약의 참여가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 정부의 중의약 발전 정책에 따라 병원 중심으로 급성 감염성 질환에 전통의학 치료기술 적용에 있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교육 측면에서는 일부 중의약대학(종합대학) 내에는 중의학원·의학원(서의전공)·중서의결합원 등의 단과대학이 존재해 중서의결합을 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가 있고, 대형종합병원 규모의 중의약 및 중서의결합 병원을 갖추어 응급실, 중환자실 및 수술실을 구비하고 여기에 중의가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한 중의약 및 중서의결합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중의약 진료시스템 구축
이러한 배경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중국에서도 일반적인 서의들이 중의약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출간된 논문(BMJ Open 2015;5:6 e006572)에서 국가 중의약관리국의 지원 하에 발간된 중의약(중서결합) 진료지침이 존재하는 질환에 대해 별도로 서의 중심으로 발간된 진료지침(위생부, 중화의학회, 중국의사협회 등에서 발간)에서 중의 치료를 어느 정도 추천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604개의 진료지침 중 12%만이 중의치료를 단순히 언급했고 이중 근거중심의 중의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중의 치료를 권고한 지침은 단지 5개에 불과했다.
국제 거대자본이 뒷받침되는 주류의학인 서의에 대응해서 만약 중국 정부의 중의약 및 중서의결합에 대한 별도의 정책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중의약 및 중서의결합 진료지침을 갖추고 대형병원 중의약 진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방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