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한의사
(대구 수성구한의사회 부회장·안아픈한의원)
프롤로그 — 일부 부정적 댓글을 접하며
한의신문 두 편의 기사에 대한 많은 응원과 더불어 일부 부정적 댓글을 보며, 차마 하지 못했던 마지막 진짜 이야기를 이제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댓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법조문에 없다고 법에(판례 등) 없는 게 아닙니다. 둘째로 이미 약에 양약과 한약이라는 제도적 구분이 있는데, 전문의약품에 명시적 규정이 없다고 거기엔 적용 안 될 거라고 굳이굳이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 다른 댓글은 소송 당사자를 "돈에 미친 원장"으로, 이 사안을 "이권 다툼"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댓글들은, 안타깝게도 외부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논리와 닮은 목소리가 한의계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것은 의과 의사와의 영역 다툼도 아니고 한의사 간의 이권 다툼이 아닙니다. 의료법 본연의 입법 취지, 한의사의 의료인으로서의 권한과 임무, 그리고 법에 규정되지 않은 형사처벌의 부당함에 관한 문제입니다.
1·2차 기사의 주제가 법리와 각성의 문제였다면, 이번 마지막 3차 기사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있는 한의학의 정체성과 미래에 관한 질문입니다.
1장. 위정척사(衛正斥邪), 쇄국의 길
한의계 일부에서는 한의학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주장하고, 한약과 한약 외 의약품의 제도적 구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한의대 정원 축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한의학의 미래를 꿈꾸는 것일까요?
이는 마치 구한말 조선의 안정과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쇄국정책을 편 흥선대원군과, 그를 따르던 조선 유림들의 모습과 그 궤를 같이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당시 조선의 유림들이 목숨 걸고 지키면서, 외세 유입을 막으려 한 이념인 유학적 세계관과 신분체제에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열린 문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킨 나라입니다.
이제 한의계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지키려는 것이 이 땅에 존재해 온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본질인지, 아니면 우리의 안위인지.
2장. 한의학, 그 이름 속의 진실
한의학의 영문 명칭을 둘러싼 소송이 있었습니다. 이 판결은 2016년 7월 14일 대법원(2016다217925)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원고(대한의사협회)의 영문명칭 중 'Medical', 'Association'은 기술적 표장이고, 'Korean'은 지리적 표장에 불과하여 원고의 영문명칭에 자타상표의 식별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2013가합102542 한의학의 영문명칭에 관한 1심 판결)
"위구르의 전통의학에 대한 영문명칭이 'Uyghur medicine'이고, 티벳의 전통의학에 대한 영문명칭이 'Tibetan medicine'이며, 한의학의 한문명칭이 '韓醫學'인 점을 고려하면 피고(대한한의사협회)의 영문명칭 중 Korean medicine이 그 자체로 '한의학'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2013가합102542 한의학의 영문명칭에 관한 1심 판결)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당연한 말이지만'한의학'이라는 명칭이 '한국에 존재하는 의학'이라는 지역적 의미를 포괄하는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최신의 의학 이론과 의약품·기기를 포괄하고, 전통의 이론과 치료방식을 함께 포괄하는 의미의 의학이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과연 너무 앞서나간 꿈일까요.
중국의 중의학과 북한의 고려의학은 그러한 의미의 중의학과 고려의학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3장. 한의학은 과연 무엇인가
한국의 한의학은 이 땅에서 전쟁의 부상과 생명의 위급을 다루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의학은 관념적 이론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외과적 절개·창상 봉합·응급처치 등 실전적인 치료 의학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주기적으로 출몰하는 상한과 온병, 즉 유행성 질환의 치료와 예방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한의학 처방 역사의 시작 자체가 유행성 감염병인 상한의 치료였습니다. 이처럼 한의학은 오랫동안 당대의 최선의 의학 지식에 기반해 질병에 대응해 온 현실의 의료였습니다.
한편, 중국의 금•원 시대의 한의학은 정치적 진출이 막힌 한족의 당대 최고 지성인들이 선택한 학문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대표적 지성인인 이이와 이황 선생의 우주관은 당대 한의학의 우주관과 일치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천재 실학자 정약용 선생은 《마과회통》을 통해 이전의 홍역에 관련된 잘못된 치료법을 비판하고, 새로운 의학 지식과 치료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한의학이 당대 최고 지성의 학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감염병에 맞서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해 온 역사는 종두법의 보급 과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중국에서는 제너 이전부터 인두법이 시행되었으며, 제너가 1796년 우두 접종 실험을 하고 1798년 그 결과를 발표한 뒤 우두법은 중국을 거쳐 조선에도 알려졌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 우두법 관련 의학 자료를 입수하여 《마과회통》 말미에 그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이후 한의사였던 지석영 선생은 우두법을 직접 배우고 국내에 보급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새로운 의학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여 감염병에 대응하려 했던 우리 의학의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지석영 선생은 1898년 고종 황제에게 서양식 의학교의 설립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고, 그 결실로 1899년 3월 28일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관립 ‘의학교’(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가 설립되면서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1907년까지 약 8년 동안 교장으로 재직하며 근대적 의료 인력을 양성했습니다.
이렇듯, 지석영 선생은 우두법의 보급뿐만 아니라, 이 땅의 의학을 더욱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체계로 이끄는 데 선두에 있었습니다. 그의 동상은 지금도 서울대병원 대한의원 앞에 서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의학은 당대 최고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의료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의학을 다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은 우리 이 땅에서 생명에 대한 전인적 접근(holistic approach)을 바탕으로, 당대(contemporary) 최선의 과학기술 성과를 활용하여 질병과 상해를 진단·치료·예방하며,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4장. 인체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전인적(whole-person) 접근vs 국소적 접근
한의학이 당대 최고의 과학적 성과를 흡수하며 발전해 왔다면, 그 과학적 성과를 받아들이는 한의학만의 고유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체를 국소적 병변으로만 보지 않고, 전인적(whole-person)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세포 단위의 국소적 병변 발견에만 몰두하지 않고, 포괄적이고 전인적인 관점에서 인체의 균형과 외부 환경의 물리·화학적 영향, 그리고 그 둘의 조화까지 함께 고려하며 병을 바라보는 태도. 이것은 전혀 다른 의학적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인체를 바라보는 접근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에서 M.D.(Doctor of Medicine)와 동일한 의사 지위, 즉 physician으로서 인정받는 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와 같은 인체를 바라보는 유사한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한의사를 다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한의사는 대한민국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인으로서, 포괄적이고 전인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진단·치료하는 분야의 전문의사입니다.
5장. Physician의 글로벌 스탠다드 — MD·DO, 그리고 한의사
미국에서 MD와 DO는 똑같이 약을 처방하고 진료를 행하는 의사(Physician)입니다. DO가 포괄적·전인적 접근을 택하고 200시간의 정골의학(OMM, 추나와 유사) 수련을 추가로 받지만, 동일한 면허 권한을 가집니다.
이러한 근골격계 중심의 훈련 때문에 DO 졸업생들은 재활의학 분야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며, 일차의료(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와 함께 이 분야를 자신들의 전통적 전문 영역으로 삼아 왔습니다.
2025년 기준 미국 내 MD 양성 학교는 158개, DO 학교는 40여 개에 달하며, DO 졸업생의 약 56%가 일차의료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전인적 치료 방식은 인체와 질병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의 차이일 뿐, 별개의 의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한의학 역시 과학 기반의 근거중심의학을 바탕으로 전인적 진단과 치료를 시행합니다. 건강보험 급여와 자동차보험 청구가 인정되는 추나 치료는 한의사가 DO와 같이 인체 구조와 균형을 다루는 임상적 전문성이 있는 의사임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현재 세계 의과대학 목록(WDOMS)을 보면 중국의 중의약대학, 베트남의 전통의학대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대학은 물론 북한의 고려의학 학부를 포함한 의과대학까지 전 세계의 전통·통합의학 교육기관들이 정식 의과대학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한국의 한의과대학들 역시 세계 의과대학 목록(IMED·AVICENNA)에 정식 등재되어 국제사회에서 의학 교육기관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세계적 기준에서 전통을 품은 통합의학 전문가가 'Physician(의사)'의 지위를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한의사가 포괄적 전인적 치료를 행하는 부분에서 전문적인 의사라는 지위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고 우리가 이미 걸어왔으며 마땅히 되찾아 확인해야 할 당연한 정체성입니다.
6장. 미래의 한의학— 박제된 전통인가, 살아있는 의학인가
한의학이 현대 의학 이론과 최신의 과학기술, 그리고 모든 유용한 의약품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은 결코 한의학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외도(外道)를 걷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당대 최선의 도구로 환자를 살려낸' 한의학 본래의 역동적 정체성으로 되돌아가는 가장 순수한 회귀입니다.
과거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당대의 과학을 받아들여 최초의 우두법을 소개한《마과회통》을 썼듯, 우두법을 도입하고 대한의원을 이끌었던 지석영 선생이 그러했듯, 한의학은 단 한 번도 시대의 첨단 문물을 흡수하기를 주저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는 오직 한약과 전통 침구만 쓰겠다"며 자발적 쇄국을 고집한다면, 한의학은 박물관 유리관 속에 들어간 '박제된 전통'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의학의 성과와 의약품, 최첨단 기술을 주체적으로 흡수하고 포용할 때, 한의학은 대한민국 일차의료의 최전선에서 호흡하는 '가장 강력하고 살아있는 현실 의료'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D.O.가 현대의학의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쓰면서도 '전인적 치유'라는 자신들만의 독보적 가치를 지켜냈듯, 우리 역시 현대 과학을 품은 '전인적 전문의사'로서 의료의 지평을 넓혀가야 합니다.
에필로그 —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한의학
우리는 그동안 법률조차 규정하지 않은 '양약'이라는 유령 같은 단어에 스스로를 가두고, 검찰과 일부 판결에서 씌운 '무자격자'의 프레임 앞에서 스스로 위축되어 왔습니다.
의료법이 개정되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으로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사법부는 기존 법률에 근거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일 뿐, 개별 의료행위의 합법성을 미리 허가해 주는 기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 쇄국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순간, 한의학의 영토는 더욱 고립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며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유산은 빛바랜 과거의 기록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법에 없는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져야 합니다.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일부 판결의 관행적 유죄 논리를 바로잡고, 일차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의약품과 기기를 당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의료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 당대 최선의 도구로 환자를 치료하는 당당함을 회복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이자, 100년 후,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갈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할 '진짜 한의학'의 미래입니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이제,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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