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건 글 쓰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

기사입력 2026.10.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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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완 작가, 신작서 인간과 문명, 생명과 윤리의 의미를 묻다
    혼불문학상 수상작 『에케 호모』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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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신문] 한의사이자 소설가인 오수완 작가가 신작 『에케 호모』로 제1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 작가로부터 작품에 담긴 의미와 한의사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삶의 균형,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주>

     

    Q. 신작 『에케 호모』로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쓴 이래 세 번째 수상이다. 혼자 작업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작업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더구나 <에케 호모>는 한국 문학에는 다소 생소한 소재라 당선이나 출간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 수상으로 그동안 혼자 해 온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돼 기쁘다.

     

    Q. 『에케 호모』의 장르는 SF다. SF 장르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문명의 종말이라는 아포칼립스적, 극단적인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이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화의 흔한 영웅 서사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출발했다. 정말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할지 궁금했다. 일종의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SF를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고 한다면 그 정의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에케 호모>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류와는 다른 생물종으로 규정한 뒤 일련의 사색을 거쳐 마침내 인류와의 대결을 택한다.

     

    소설은 늙은 수리공이 말 못 하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문명이 붕괴된 세계를 여행하는 풍경을 그린다. 둘은 침묵의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사건을 겪는데 그러면서 작품은 문명, 기술, 지식, 폭력, 사랑, 윤리, 생명, 예술 등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Q. 『에케 호모』에서 책이 중요한 물건으로 등장하는데, 작가에게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누구나 어떤 대상에 이유 없이 매혹되곤 하는데 내게는 책이 그런 물건이다. 책의 물성은 물론 그 안에 숨은 테크놀로지,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들 모두에 흥미가 있다. 화형문자(fleuron)나 장식화, 인쇄 기술, 타이포그라피, 판형, 조판, 출판의 역사, 서지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문명이 완전히 사라졌다 재건된다 해도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면 책은 정확히 지금과 같은 형태로 다시 발명될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 전용 외부 기억장치로, 일종의 확장된 표현형으로 여전히 작동할 테고.

     

    Q. 이전 작품부터 『에케 호모』까지 작품마다 소재와 세계관이 모두 다른데, 주제를 정한 후 스토리를 만드는지?

    늘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것, 나만 쓸 수 있는 걸 쓰려고 한다. 누군가 쓸 수 있다면 굳이 나까지 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서로의 삶을 낭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걸 써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쓰는 것 역시 시간 낭비다. 쓰는 동안 재미없는 이야기라면 읽는 데도 재미없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독자에게 읽으라고 권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흔하지 않은 소재를 찾게 된 것 같다.

     

    글을 쓰기 전에 주제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는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무엇을 그리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글 역시 끝까지 쓴 뒤에야 전체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결국 글을 쓰는 건 글 쓰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애초의 구상을 문장으로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주제는 마지막에야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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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한의사인 동시에 작가인데, 두 일을 병행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의사이면서 동시에 소설가였던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체호프가 있고 그 외에도 코난 도일, 슈니츨러 같은 이름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직업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의사 출신 작가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살려 써낸 소설들도 있지만 그쪽으로는 아직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

     

    체호프는 ‘의학은 나의 아내, 문학은 나의 정부’라 말한 바 있다. 그건 삶과 꿈을, 현실과 신비를 대비시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장대 끝에 걸린 무게추를 떠올리는데, 한쪽은 문학, 한쪽은 한의학의 무게로 밧줄 위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한의사와 소설가로서 균형을 잡으며 삶을 꾸리는 일은 오래 전부터의 과제였다. 지금으로서는 낮에는 한의사, 밤에는 소설가로 활동하는 게 고작이다. 아마 앞으로도 둘을 화해시키지 못한 채 허둥대며 한 발씩 나아가지 않을까.

     

    Q. 오랜 기간 많은 환자를 만나온 경험이 소설 집필에 영향을 미치는가?

    한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토록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모든 분이 환자이기 이전에 각자의 결핍, 욕망, 감정, 성격, 한계, 가능성, 서사를 가진 인간이라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다. 그런 경험이 쌓여 인체, 인간, 노화, 삶, 질병, 인류에 대한 사유와 이해의 폭을 넓혀 줬을 것이다.

     

    한의학을 배운 덕분에 글쓰기에 도움이 된 부분도 있다. <에케 호모>에서 숲에서 만난 노인이 폐렴 끝에 죽음을 맞는 장면이나 지텍에서 노먼의 신체가 파괴되는 장면은 비교적 수월하게 썼는데 병원 수련과 해부학 실습의 경험 덕분일 것이다.

     

    Q.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등단하기까지의 과정은?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대학 다닐 때는 오히려 그림을 그리거나 기타를 치거나 했다. 동기의 권유로 당시 PC통신 천리안의 문학동호회 ‘산책길’에 가입한 것이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기억한다. 산책길의 소설 소모임에서 활동하며 문단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다 등단을 목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시간을 10년쯤 보낸 끝에 2010년에 중앙장편문학상에 당선됐다.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고 어떤 삶을 이어가고 싶은가?

     

     

    언제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지력이 떨어질 테니까. 체력은 그렇다 쳐도 정신이 무뎌지는 건 스스로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늦기 전에 서둘러 남은 이야기들을 써 보려 한다. 우선 올해 쓴 장편소설이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의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이 책이 나온 뒤의 일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막연히 미래를 생각해 보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 떠오른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밧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대면서, 침을 놓다 말고 문득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떠올리는. 지금 바라는 것은 다만 그 정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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