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STA 제185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1>
[한의신문] KOMSTA는 1993년 한의사들에 의해 설립되어 세계 보건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매년 해외에서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현지인들을 위해 의료봉사활동, 질병예방교육, 건강증진 캠페인 등을 수행한다. KOMSTA는 8월 20일부터 8월 27일까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제185차 WFK-LKC 해외의료봉사를 진행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하는 봉사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호기롭게 지원했으나,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섰다. 우선 공중보건의사 신분으로 참가 허락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일주일 가량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근무처에 양해를 구하고, 국외여행 허가를 받기 위해 여러 주무관청과 수차례 연락한 끝에 간신히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 진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컸다. 국내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 환자를 진료해 본 적은 있었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고 한의치료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 온다면 이들을 어떻게 문진하고 어떻게 치료과정을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복잡한 심경을 안은 채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한의학, 그리고 걱정의 해소
출국 전의 걱정은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뒤 가장 첫 번째 일정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KOICA에서 설립한 한의학 교육-훈련 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KOICA의 글로벌협력의사로 송영일 원장님께서 근무하고 계셨다.
송영일 원장님은 현지에서 환자 진료와 더불어 해외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국 한의학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신다고 하셨고,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5개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여름 캠프를 진행하셨다고 소개하셨다. 송영일 원장님으로부터 센터 설명과 KOICA의 한의학 관련 사업 내용들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에 대한 인지도가 높고, 현지인들이 한의치료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한결 가볍게 다잡고 봉사지인 사마르칸트로 가는 기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타슈켄트 기차역에 도착해서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역무원이 우리의 짐이 너무 많다며 탑승을 제지한 것이다. 사무국 선생님과 통역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 끝에 우리는 한 객차당 2개의 짐만 실을 수 있다는 허락을 겨우 받았고, 여러 객차로 뿔뿔이 흩어져 기차에 탑승했다. 열차가 정차하는 짧은 시간 동안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어떤 단원들은 자기 몸보다 큰 짐을 질질 끌면서 기차에서 내렸고, 어떤 단원은 자기 캐리어에 박스를 2개나 얹은 채로 플랫폼의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걸어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낯선 타지에서 끙끙대며 짐을 나르는 고된 상황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일사불란하게 짐을 옮기며 단원들 사이에는 끈끈한 전우애가 싹텄다.
다음날은 진료실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봉사를 진행할 현지 병원에 방문했다. 병원 시설은 깔끔하였고 잘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현지 관계자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우리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장비들을 옮겨 주셨다. 진료실을 여러 개로 나눠서 운영하기로 했던 터라 준비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나, 단원들이 모두 맡은 구역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빠르게 배분하여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세팅을 마칠 수 있었다.
침 한 번에 쌓인 신뢰…문화의 차이 속에서 배운 진료
진료 첫날 아침,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소에 들어섰다. 가장 염려했던 소통 문제는 통역사분들 덕분에 완벽히 해소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셨거나 한국학을 전공한 통역사분들은 환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주셨고, 어려운 의학용어들은 검색을 통해 확인까지 하면서 환자분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진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환자분들은 한국의 여느 한의원에 오시는 환자군과 대체로 비슷했다. 주로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성장 상담을 받고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또 대가족 중심의 부모 봉양 문화가 자리 잡은 우즈베키스탄 특성상,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고부갈등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체중이 많이 나가 고민이라는 노인 환자에게 ‘술을 많이 드시나요?’라고 물어보았는데, 통역사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보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술이 금기시되어, 술을 먹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되는 행동이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통역사분의 중재 덕에 오해 없이 넘어갔지만, 진료 중 무심코 건네는 질문 하나에도 현지 문화를 깊이 배려해야 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진료 둘째 날에는 첫날에 비해 환자가 큰 폭으로 늘기 시작했다. 첫날 진료를 받고 호전되어 온 가족을 데리고 온 환자도 있었고, 우리의 진료 모습을 본 병원 관계자들이 그들의 지인들에게 소개하여 찾아온 환자들도 많았다. 어떤 환자들은 먼 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들 중에는 한의학 치료가 처음인 환자들도 있었으나 이전에 침을 맞아본 적이 있다고 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의아해하며 어디서 침을 맞았는지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수년 전에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일하면서 한국 한의원을 방문하였거나 외국인 대상 의료봉사활동에서 침을 맞았다고 답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수년 만에 침을 맞으러 찾아왔다는 환자들을 보면서, 새삼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한의사분들께 감사함과 존경심이 느껴졌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Ozgina kuting(잠시만 기다려주세요)”를 외치며 정신없이 침을 놓던 중간에 문득 밖을 보았는데, 복도에 가득 찬 환자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예진과 안내 단원들이 보였다. 사실 나는 진료실 안에만 있었던 터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몰랐는데,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자들 속에서 순서를 안내하고 한국어와 우즈베키스탄어를 섞어가며 예진하는 단원들을 보면서 나 또한 더 열심히 봉사에 임했던 것 같다.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본인의 척추 MRI 촬영 필름을 들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실제로 통역사분의 설명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는 라마단 같은 종교적 관습이나 육류 위주의 식습관 탓에 과체중 환자가 많고, 그로 인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의 의료 환경이나 환자들의 여건상 수술 치료를 받기는 쉽지 않은데, 이로 인해 비수술적으로 치료받기를 희망하는 환자가 많으나 실제 지속적인 치료를 받는 비율은 낮다고 한다. 현지에서 한의학 진료가 좀 더 보편화되어 한의학이 강점을 보이는 비수술적 근골격계 질환 치료 등이 더 활성화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까지의 진료를 무사히 마치고 어느덧 마지막 진료일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계획된 일정상 오전 진료만 예정되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환자분들이 혹여라도 진료를 못 받을까 봐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병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손에 번호표를 쥐고 우리에게 인사를 해주는 주민분들을 보면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찾아온 환자분들을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식사시간까지 미뤄 가면서 마감 직전까지 한 명이라도 더 정성껏 진료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료하며 받은 감사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컸다. 어떤 환자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다음에 우즈베키스탄에 오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였고, 어떤 환자는 고맙다며 직접 농사지은 포도를 박스째로 주시기도 하였다. 또 어떤 환자는 침을 맞으면서 치료 효과도 좋았지만 자신이 한국에서 일했던 젊었을 때가 생각났다면서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회상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봉사는 절대 혼자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출발할 때와는 사뭇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팀장님 말씀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봉사를 했을까? 혹시 내가 실수를 해서 찾아오는 분들은 더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한국과 한의학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왜 한의사가 되었고 한의사로서의 소명과 지향점을 깊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일주일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봉사는 절대 혼자 힘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단원들 중 누군가가 짐 관리를 소홀히 하다 기차에서 짐을 분실했다면, 밀려오는 환자들 속에서 예진을 꼼꼼히 하지 않았더라면, 봉사지를 세팅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땡이를 피웠다면 결코 성공적인 봉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봉사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봉사 기간 내내 팀원들을 잘 이끌어주신 김상균 팀장님과, 현지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송영일 원장님, 환자 보느라 고생하신 윤희영, 김태규, 설승민, 정광호 원장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 순간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고다은, 고서현, 김나연, 박도원, 서은해, 송지영, 이민호, 이수형, 이현경, 진희수, 최현경 단원, 통역 모히라 선생님, 그리고 누구보다 큰 도움을 주신 KOMSTA 권수연 대리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봉사를 가기 전 여러 가지 걱정과 고민을 안고 떠났지만 이제는 누군가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다. KOMSTA에 꼭 지원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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