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책임 완화 보완장치로 제도화 제안…공개 대상·경중 입장차 확인
[한의신문] 환자가 수술을 맡길 의료인의 의료사고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이 국회에서 본격 논의됐다.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의료시장 신뢰 회복 필요성이 제기된 반면 양방의료계와 정부는 필수의료 위축과 의료인 기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며 공개 대상과 범위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소희 의원(국민의힘)은 29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의료사고 이력, 국민은 알아야 합니다’를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환자가 의료인을 선택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이력공개 제도의 도입 필요성과 구체적인 설계 방안을 논의하고자 개최됐다.
◎ “의료사고 이력 알 권리, 환자 선택권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소희 의원은 자신의 의료사고 경험을 공개하며 의료사고 이력 공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공정한 진료계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15살 때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며 “사고 후 수술한 의사가 한 달 전에도 다른 환자의 동맥을 손상시킨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故 신해철 씨 의료사고를 언급하며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도 같은 의사에게 수술받은 환자가 사망했다”며 “그 이력을 알았다면 같은 선택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료사고 이력 공개가 공정한 진료계약의 전제라고도 강조했다. “극심한 정보 비대칭 속 진료계약은 불공정 계약”이라며 “환자가 알고 선택할 기회를 보장해야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고 밝혔다.
특히 현행 제도에서 △금고 이상 형 확정에도 면허취소·정지 자동 연계 불가 △확정된 의료사고 형사처벌 이력 확인이 불가한 점을 들어 의료인 진료 지속 여부와 환자의 정보 접근권은 별개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토론회에 불참한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전공의협회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하며 “공개 범위와 의료인 권리 보호, 국민의 알 권리의 조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만큼 오늘 제기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국민 안전과 알 권리를 보장할 입법 방향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의료사고 특례 확대의 빈틈, ‘의료인 이력공개’로 메워야
박성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이후 환자 권리 보호 과제와 의료인 이력공개제도의 입법적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에 나서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에 따른 형사책임 완화에 맞춰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 선택권을 보장할 의료인 이력공개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의료사고 특례 확대는 환자와 가족의 권리 보호 장치를 함께 강화해야만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며 “의료인 이력공개제도는 형사처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선택권과 의료시장 신뢰를 높이는 장치인 만큼 정보 접근권 보장을 통해 환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인 이력공개제도의 입법 근거로 △환자의 알 권리 및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 △의료사고 재발 방지 △허위·과장광고를 통한 경쟁 우위 차단 △성실한 의료인이 신뢰받는 의료시장 질서 확립 등을 제시하며 “정보공개는 형사처벌보다 경미한 책임 수단으로, 환자 보호와 의료인의 기본권 간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 사례도 소개했다. 박 교수는 미국과 영국은 의료인의 징계·형사처벌 이력 등을 공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은 징계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의료인만 예외로 둘 이유는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공개 대상 정보로 △업무상 과실치사·치상 확정판결 △마취 상태 환자 대상 성범죄 확정판결 △의료과실에 따른 민사 손해배상 확정판결 △무면허자 수술 및 대리수술 등을 예시로 제시했다.
또한 공개 기간은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선고 후 10년·5년·2년 등으로 차등 적용하고, 공개 항목은 의료인 성명·면허종류·면허번호·죄명·공개 사유·선고 및 판결확정일 등을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정보 제공 방식은 변호사·세무사·회계사협회의 징계정보 공개 시스템이나 미국 각 주의 의료인 정보 검색 사이트와 유사한 형태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 알 권리와 기본권 사이…의료사고 이력공개 ‘정교한 설계’ 주문
한편 권용진 서울대 공공진료센터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토론에서는 의료사고 이력공개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인의 기본권, 필수의료 보호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참석자들은 환자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공개 범위와 방식은 환자안전이라는 목적에 맞게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료인부터 국가가 일정 기간 이력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인의 면허를 추가로 제한하거나 형사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초기에는 중대한 의료과실부터 시작해 향후 대리수술과 무면허 의료행위, 중대한 성범죄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이번 논의를 의료사고 이력공개를 넘어 의료소비자의 정보 접근권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에게는 안전할 권리와 선택할 권리,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하지만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는 의료기관과 의료인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며 △의료법상 진료의사 선택을 위한 정보 제공 규정 구체화 △환자 안전·선택을 위한 도움 정보를 적극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백경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인 이력공개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의료인의 인격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경과실과 중과실을 구분하지 않고 공개하면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개 대상과 기준, 한계를 헌법적 정당성과 법체계에 맞게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이력공개 논의의 목표가 ‘환자안전’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어은경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단순히 판결 결과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사고 재발을 막기 어렵다”며 “독립적인 환자안전사건 조사기구와 전문직 심사기구, 의료인 교육·감독체계, 국가 차원의 의료인 정보관리 시스템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의료사고는 개인의 과실뿐 아니라 시스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만큼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학습·개선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실질적인 재발 방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윤동욱 한국의료변호사협회 부회장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의료인의 형사책임이 일부 완화된 만큼 환자의 알 권리를 보완하기 위해 이력공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의료인의 기본권을 고려해 공개 대상을 중대한 사안으로 한정하고, 공개 기간과 절차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등 비례성 원칙에 따른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는 의료사고 이력 자체를 공개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사고는 개념이 모호하고 대부분 과실범에 해당하는 만큼 형사 확정판결만으로 공개할 경우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성범죄 등 고의적인 의료범죄에 대한 정보 공개는 검토할 수 있다”며 “현행 면허취소와 재교부 제한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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