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에 의존하여 기억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건망증을 지칭하는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가 국립국어원에 처음 등재된 것은 2004년이다. 같은 해 중앙대 특강에서 “60세가 넘으면 뇌세포가 죽어 과거의 능력있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즉 “60 넘으면 뇌썩남”이라는 발언을 하신 분이 최근 다시 핫하다. 올해로 68세가 되신 그 분! 과거의 자신이 했던 다소 과격했던 표현에 의거하자면 그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뇌썩남이다. 물론 “환갑 넘어도 뇌가 썩지 않았고 백살이 코앞인 데도 나는 여전히 건재하다”를 증명하고 있는 슈퍼 에이저(super ager)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옥스퍼드는 ‘뇌 썩음’ 즉 ‘브레인 로트(brain rot)’를 2024년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짧은 콘텐츠로 끊임없이 정보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정신적 또는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치매에서 브레인 로트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이라는 시간의 축적과 초월적 편리 위에 디지털 기기에의 의존도는 진정한 물아일체(物我一體) 휴먼을 양산하였고 우리 모두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무관하게 1인 1기 보유 시대에 도착해 있다. 이제는 1기에 해당하는 스마트폰에 AI까지 장착되어 당장 몇 년 후의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의 생활에 불어닥칠 변화는 현재로서도 상상불가라 하니 ‘그만 발전해, 이러다 다 죽어!’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내일을 조심스럽게 기다려 본다.
선관위 뻘짓으로 인한 6·3 지방선거 후유증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개표 수개표’라는 올공시위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에 “부정선거 있었다”는 응답을 한 2030 청년들이 과반을 넘어섰다는 여론조사까지 보도되었다. 세대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에 이들을 합리적, 이성적, 감성적으로 설득할 기성세대의 노력은 여전히 게을러 보인다. ‘요즘 것들은…’이라고 감정적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각은 선입견을 낳고 편견으로 이어졌다가 확신으로 굳어진다. 웬만해서는 이들을 바꿀 수 없다. 독서 취향도 정치 성향도 그렇게 서서히 단단해진다. 상황이 심각한 데도 연일 현정부에까지 저주의 언사를 퍼부으시는 유모 전 의원님의 최근 행보는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의 그의 책 제목들과 무척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한 때 인덱스 붙여가며 읽었던 책들이었다. 그 시절과 그 때의 내 마음은 결론적으로는 도둑맞은 셈인가?
『도둑맞은 뇌』(대니얼 샥터, 인물과사상사, 2023년 1월)
- 기억의 소멸은 소리 없이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 발생하면서 과거는 계속 희미해진다.
- 사람들은 때때로 현재의 자신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느끼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비난한다.
- 편도체는 우리가 두려움이나 자극을 유발하는 사건을 만나면 호르몬 체계에 강력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균형잡힌 뇌』(권택영, 글항아리, 2025년 1월)
- 인간의 행동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우리 몸은 겉으로 보면 대체로 대칭이지만 우리의 행동 방식은 그렇지 않다.
- 마음의 병은 예민하고 치유하기가 어렵다. 원인을 알아내고 치유하기 위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아직도 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편도체는 어느 시점에 어떤 감정을 동원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럴 때는 주로 슬픔과 증오의 감정을 동원한다.
『기울어진 뇌』(로린J. 엘리아드, 알에이치코리아, 2025년 3월)
- 우리의 강력한 편측성은 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발, 눈, 귀, 심지어 콧구멍에서도 강력하고 명확한 편측성이 나타난다.
- 취향은 천차만별이다. 미적 경험은 주관적이고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므로 객관적으로 정의하거나 경험을 평가할 방법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 우리는 방향을 전환할 때 대부분 오른쪽을 선호한다. 방향 전환에서 나타나는 이 편향성은 주로 사용하는 손, 나이, 성별에 영향을 받는다.
『뉴로테리어』(손혜주, 한국경제신문, 2026년 5월)
- 노화로 인해 뇌기능이 서서히 변할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바로 스스로 계획하고 움직이는 주도적 행동 능력이다.
- 눈이 침침해지고 시야가 답답해지는 것은 단순한 노안이 아니라 뇌의 시각 처리 시스템이 고장나고 있다는 조용한 경고였던 셈이다.
- 치매가 중기로 접어들면 두정엽이 손상되면서 감각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자체가 심각하게 손상된다.
- 내 의지대로 언제든 움직일 수 있을 때, 뇌는 스스로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 주도적인 감각이야말로 뇌를 늙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회복하는 뇌』(헤더 샌디슨, 더 퀘스트, 2026년 6월)
- 뇌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제대로 다루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 그동안 과학계가 매달려온 아밀로이드 플라크와의 전쟁 외에도 기본 가설 자체가 잘못됐던 이론들이 있다. 이로 인해 치매 예방과 치료 연구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
- 운동은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개입으로, 실천하기만 하면 수많은 만성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재미는 뇌 기능에 필수적이다. 즐거움은 뇌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 삶의 목적이 명확하면 하루를 시작하고 시련을 견딜 힘이 생긴다. 뚜렷한 삶의 목적은 경도 인지장애 위험을 낮추고 인지저하를 늦춘다.
운동과 담 쌓고 살아온 일간지 기자. 어느날 허리가 아파 한의원을 찾았다. 수백만원짜리 척추 교정 치료를 권유받고 오는 길에 드는 생각. ‘이 돈이면 차라리 PT를 받고 말지.’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인생의 중심이 된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고영, 카시오페아, 2019년)라는 책의 서평이다.
7월 초,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병원이 820억원대 보험사기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의원은 비싼 곳! 한방병원은 보험사기나 치는 곳!” 해당 뉴스에 달린 한의사들을 향한 공격적인 댓글을 읽은 젊은층이 한의학에 대해 가지게 될 부정적 이미지는 뇌와 가슴에 깊고 강하게 각인될 것이다. “너희들 생각이 잘못됐어!”라고 다그치며 그들을 설득해낼 수 있을까?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과정에서 한의사 제도를 둘러싼 논쟁 _ 국회 속기록을 중심으로』(동의생리병리학회지: 26(5): 2012)라는 논문은 열악한 의료 현실, 한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 값싸고 접근성 높은 한약의 존재, 한국전쟁으로 인한 부족한 의료 자원 등의 복합적인 현실을 고려하여 제시된 한의사 제도의 탄생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2026년 오늘날 한국의 의료 현실이 열악한가? 한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있는가? 값싸고 접근성 좋은 한약이 존재하는가? 의사와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여 기회를 주고자 했던 1951년 당시 국회의원들의 질문들에 2026년 오늘날 우리들의 답변은? YES? NO?
지난주 영화 『호프(HOPE)』를 보았다. 나홍진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곡성』 이후 10년만의 작품으로 깐느 경쟁부분 초청작, 헐리웃 배우들의 대거 출연,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 투여 등의 뽐뿌질로 점철된 티저 영상들은 나의 기대치를 최절정에 올려놓았다. 짜디짠 평점으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의 “끌렸다, 즐겼다, 낚였다”라는 한줄평은 정확하게 나의 감상평과 일치했다.
관객들을 여러 방면으로 홀리는 감독의 실력은 여전했다. 신통방통하다는 칭찬! 무슨 병이든 척척 알아맞히더라는 찬사! 침 한방에 벌떡 일어났다는 기적! 한 때 한의계도 환자들을 여러 방면으로 홀리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한의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의료소비자들은 죄가 없다. 한의계는 아직 시대적 쓰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 쓰임의 본질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만이 한의계의 희망(HOPE)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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