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 문화가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는 문화에서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가’를 묻는 문화로 바뀌기를 기대”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뉴스에는 Human Error, System Error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어떠한 시시비비를 가릴 때,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인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의료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특정 의료인의 부주의나 능력 부족, 즉 Human error(개인의 실수)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들은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그 사람이 실수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실수를 막아줄 안전장치는 있었는가?” 등등의 질문과 문제 제기를 통해 점차 System error(시스템의 오류)를 인지하기 시작했고,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변할 수 있었다. 개인의 잘못을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수를 유발한 구조와 환경을 함께 살펴보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학습 부진, 과연 개인만의 책임인가?
하나의 예로, 미국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리비 시온(Libby Zion) 사건을 들 수 있다. 1984년 18세 대학생 리비 시온이 병원에서 사망하였는데, 당시 담당 전공의는 과도한 근무시간 속에서 여러 환자를 동시에 관리하고 있었고, 감독 체계 또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료진의 실수로 환자가 사망했다는 논쟁이 있었으나, 시온의 사망 원인을 특정 전공의의 판단 착오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왜 그 전공의는 그런 환경에 놓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고, 결국 뉴욕주에서는 전공의의 연속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이른바 ‘리비 시온 법’이 제정되었다. 전공의의 업무량을 관리하여 의료사고를 예방하고자 만들어진 이 법은 이후 미국 전역으로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 제도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각 전환은 의료의 안전 문화를 크게 바꾸었다. 개인을 탓하는 방식은 문제를 반복하게 만들지만, 시스템을 점검하는 방식은 구조를 개선하고 재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에도 적용을 해보면 어떨까. 현재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이 유급을 하거나 학업 성취가 낮을 때, 우리는 흔히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수업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가 낮으면 “교수가 수업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답은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다.
학생의 실패가 오로지 개인의 의지 문제라면, 왜 매년 비슷한 유형의 어려움이 반복되는가. 특정 학년에서 유급률이 높게 나타나고, 특정 과목에서 지속적으로 학업 부담이 과도하다는 평가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정말 몇몇 학생의 노력 부족이나 한 교수자의 수업 방식 문제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시험 일정이 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면 아무리 성실한 학생이라도 학습의 깊이를 유지하기 어렵다. 교과목 간 내용이 충분히 조정되지 않아 동일한 개념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된다면, 학생은 통합적 이해보다 단편적 암기에 의존하게 된다.
실습과 이론 수업이 시간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학생은 ‘왜 배우는지’를 체감하지 못한 채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학습 부진을 과연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시스템 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 충분
또한 학생 상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다. “공부를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겠다”, “시간은 쓰고 있는데 남는 것이 없다.” 이러한 목소리가 한두 명의 경험이 아니라 매년 유사하게 나타난다면, 우리는 학생 개인을 평가하기에 앞서 교육 구조를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수업에 대한 불만이나 교수 역량 부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강의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학생 참여가 저조할 때, 우리는 흔히 “교수가 수업을 잘하지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교수자가 충분히 교육을 준비하고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임상, 연구, 행정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교수법 연수나 수업 코칭을 받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새로운 교육 방법을 시도하고 싶어도 시간적, 제도적인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평가 결과는 개인에게 돌아가지만, 개선을 지원하는 구조는 충분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의 질을 오로지 개인의 역량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교수자의 역량 또한 개인적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연수와 피드백, 동료 학습 공동체, 교육 지원 체계 속에서 성장하는 시스템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문제의 원인이 사람에게만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놓여 있는 환경, 곧 시스템 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교육에 대해 지나치게 Human error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지는 않은지, 평가 일정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지는 않은지, 실습과 이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학생이 질문하고 성찰할 수 있는 여백이 보장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지 않은 채, 결과만 보고 개인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한다.
한의학교육은 오랜 전통과 학문적 깊이를 지닌 체계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의료 환경의 변화 속에서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의 내용은 점점 늘어나고, 사회적 요구는 확대되며,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학습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때 교육 문제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결과도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System error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면제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이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교육과정의 중복과 과밀을 조정하고, 학습성과 기반 평가 체계를 구축하며, 교수 역량 개발과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은 모두 시스템 차원의 접근이다.
교육환경 개선은 공동의 과제
교육의 실패를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는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육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만약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면, 교육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지적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교육은 함께 구조를 개선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공동의 과제가 된다.
좋은 교육은 좋은 사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의지를 가진 교수,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 있어도, 그 노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 한계에 부딪힌다.
반대로, 잘 설계된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실수를 줄이고 잠재력을 끌어올린다. 의료가 안전을 위해 시스템을 점검하듯, 한의학교육 역시 성장을 위해 구조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교육 문화가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는 문화에서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가’를 묻는 문화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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