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의대 교수가 한의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 원칙을 제시하다”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지난 2025년 12월19일 경희대학교 청강한의학역사문화연구소(소장 차웅석)에서 제6회 근현대한의학연구사 콜로키움 및 근대한의교육문화특별전으로서 ‘영소회통으로 침구종주 바로 세운 한의지사, 전광옥(田光玉, 1871〜1945)’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주인공 田光玉(1871∼1945) 선생은 諸醫書에 博通한 한의학 교육자이다. 그는 황해도 태생으로 京城에서 醫生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1904년 洪哲普의 노력과 고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한의과대학 同濟醫學校의 敎授로 金永勳과 함께 선발되어 한의학 교육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15년 전국적인 학술단체인 全鮮醫會가 만들어진 이후 東西醫學硏究會 등 단체에서도 講師로 활동하면서 한의학 교육에 힘썼다.
1936년에 간행된 『忠南醫藥』 제5호에는 전광옥의 ‘治病要領論’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忠南醫藥』은 忠南醫藥組合이라는 충청남도에 조직된 한의계를 망라하는 단체에서 간행한 기관지다. 『忠南醫藥』은 1937년에 『漢方醫藥』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1942년까지 50호까지 간행되었다.
『忠南醫藥』 제5호에 게재된 전광옥의 ‘治病要領論’은 한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 원칙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에 그 내용을 요약한다.
첫째, “治病必求其本” 즉 병의 근본을 치료하라는 것이다. 병은 標本의 구별이 있으니, 겉으로 드러난 증상(表)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원인이 되는 기혈의 허실과 장부의 상태(本)를 찾아야 하며, 눈에 보이는 증상뿐만 아니라 은연 중에 숨어 있는 無形의 원인을 살펴야 훌륭한 의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소변 불통이나 인후 폐색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는 먼저 증상(表)을 치료하여 급한 불을 끄고, 나중에 근본(本)을 치료하는 유연하다는 것이다.
둘째, 정기를 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邪氣를 小人에, 正氣를 君子에 비유하여 설명했고, 사기를 몰아낼 때 도적의 괴수를 잡듯 핵심을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陰陽氣血의 상호 의존 원리를 설명했다. ‘陽生陰’, ‘氣生血’이라는 키워드를 들어서 음과 양, 기와 혈은 서로 뿌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양이 부족하면 음이 생기지 않으므로 양을 보충해서 음을 키우는 것과 기를 보해서 혈을 안정시키는 원리를 설명했다.
痰의 치료에 있어서도 痰은 火와 氣의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므로 단순히 痰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火를 내리고 氣를 다스리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넷째, 겉모습과 반대로 치료하는 反治法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으로서 ‘塞因塞用’, ‘通因通用’의 두가지를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속이 막힌 듯해도 허해서 생긴 것이면 보하는 약을 쓰고(塞因塞用), 설사를 해도 열이 심한 것이면 오히려 내려주는 약을 쓰는(通因通用) 등 병의 실질에 맞는 처방을 강조했다.
다섯째, 한의사의 소명으로서 三世之書에 정통해야 함을 강조했다. ‘三世’의 의미에 대해서 그는 鍼灸(黃帝), 本草(神農), 脈訣(岐伯)의 세 가지 학문에 대한 능력이 갖춰져야 함을 뜻한다는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는 맥으로 병을 살피고 약으로 다스리며 침으로 질병을 쫓아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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