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학을 ‘보건경제’의 언어로 번역하다
이번 WHO Global Summit on Traditional Medicine에서 Plenary 2는 논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에 해당했다.
앞선 세션들이 글로벌 보건 시스템의 위기와 불균형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Plenary 2는 그 문제를 어떤 정책 언어와 경제적 논리로 다룰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자리였다.
이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건강은 더 이상 비용(cost)이 아니라 투자(investment)라는 인식이다.
이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보건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만성질환과 정신 건강 문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노동 생산성 저하, 조기 은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이미 명확해진 상황에서 예방과 생활 관리, 장기적 건강 회복에 대한 투자는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요소로 제시됐다.
Plenary 2의 논의는 전통의학을 문화적 자산이나 보조적 치료 수단으로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대신 전통의학을 포함한 다양한 건강 개입이 사회 전체의 비용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질병 발생 이후의 치료에 집중하는 구조와 질병 발생 이전의 불균형을 관리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과 생산성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가 구체적인 사례와 분석을 통해 제시됐다.
전통의학, 정책 설계의 언어로 들어오다
이 과정에서 보건경제 분석 기관인 WiFOR의 참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WiFOR는 보건 정책과 건강 개입을 단순한 지출 항목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는 투자로 평가하는 분석 틀을 제시했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의학 논의가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라는 단계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Plenary 2에서 제시된 논의가 보건 전문가 내부의 담론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건경제, 정책 분석, 투자 관점에서의 언어는 장관급 Ministerial Round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는 전통의학을 둘러싼 논의가 학술적 평가의 단계를 넘어 국가 정책과 재정 설계의 테이블로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제도화의 조건: 표준화·데이터·거버넌스
이러한 맥락에서 Plenary 2는 전통의학을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설계해야 할 자원’으로 재위치 시켰다. 전통의학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질문은 이미 충분히 반복돼 왔다. 이제 핵심은 전통의학을 어떤 기준으로 제도화하고, 어떤 영역에 적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측정할 것인가에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보건 정책 논의에 ‘정신 건강’과 ‘생활 관리’가 경제적 언어로 본격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서적 불균형, 수면 장애, 만성 스트레스와 같은 요소들은 오랫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Plenary 2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노동 생산성, 사회적 비용, 의료비 증가와 직결된다는 점이 명확히 언급됐다. 이로써 명상, 요가, 생활의학, 전통적 건강 관리 방식은 정서적 위안의 영역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검토 가능한 보건 개입으로 재정의되었다.
Plenary 2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경쟁 구도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의의 중심은 특정 의학 체계의 우월성이 아니라, 국가가 직면한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합의 자원이 가장 효율적인가에 있었다.
이는 의료 체계 내부의 논쟁을 넘어, 정책 설계자의 시각에서 건강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Plenary 2는 이번 서밋 전체 논의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했다.
전통의학은 가치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경제와 정책 설계의 언어로 번역될 때 비로소 글로벌 보건 아젠다 안에서 실질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이러한 보건경제적 논의가 실제 국가 정책과 실행 사례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실행 중인 국가들
이번 WHO Global Summit on Traditional Medicine의 Ministerial Round는 전통의학이 더 이상 ‘가능성’이나 ‘원론’으로 논의되는 단계가 아니라 각국이 이미 정책으로 설계하고 실행 중인 현실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 세션의 핵심은 전통의학의 가치를 선언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각국이 어떤 구조로 제도화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공의료에 연결했는지’ 그리고 ‘표준화·과학화·데이터화를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정책 결정권자 수준에서 직접 교환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이들 국가의 발언을 관통한 공통 흐름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전통의학은 ‘치료법’이 아니라 보건 전달체계의 일부로 다뤄지고 있었다.
이는 전통의학이 국가가 책임지는 보건 서비스 체계 안에서 기능하도록 재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전통의학은 ‘전통 그대로’가 아니라 현대 시스템에 맞춘 표준화의 경로를 밟고 있었다.
즉, 전통의학을 제도권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려면 표준화와 관리 체계가 필수라는 인식이 장관급 논의에서 이미 공유되고 있었다.
셋째, 전통의학의 과학화는 ‘선언’이 아니라 기술 기반 실행 과제로 언급됐다. 전통의학은 ‘경험의 영역’에 머물기보다 ‘측정·관리·개선 가능한 정책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장관급 논의 테이블 안에 두 개의 민간 전문기관이 공식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이다. WiFOR는 전통의학 논의가 국가가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제적 언어로 번역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Alira Health는 전통의학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동 행동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종합하면, 이번 Ministerial Round는 전통의학이 정책, 산업, 기술이라는 세 축 위에서 이미 실행 단계로 진입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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