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李炳幸 선생과 姜丁熙 선생의 침술 Battle
1969년 9월29일 오후 3시에 한의계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한국식 침법의 권위자인 李炳幸 선생의 침법과 일본식 침법의 권위자인 姜丁熙 선생(두 인물 모두 한의사)이 중풍 환자를 놓고 치료 시합을 했기 때문이다.
강정희 선생이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살았던 중풍환자의 주치의로서 활동하면서 그 환자가 左腕 탈구상태를 치료하여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병행 선생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鍼道源流’의 연구자로 유명했던 이병행 선생에게 비교시침을 청한 것이다. 이에 대한한의사협회의 심창기 사무국장과 언론인들의 입회 하에 비교시침한 결과 일침 사용 25분만에 탈구상태로 운신부동이던 左腕을 번쩍 들어 침도의 신묘한 경지를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이날 비교시침에 임할 때까지 강정희 선생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하였지만 이병행 선생이 시침하고 25분만에 좌완을 번쩍 들어올렸다.
李炳幸(1906~1974, 호는 晩齊) 선생은 민족 고유의 鍼法 확립으로 한국 한의학의 정체성 수립코자 노력한 鍼灸專門 韓醫師이다. 李炳幸의 저술로는 『子午流注法註解』, 『鍼道源流重磨』, 『東醫壽世保元 性命論註解』, 『小兒麻痺退治秘訣』, 『高血壓과 中風』, 『奇經八脈의 新硏究』 등이 있다.
『子午流注法註解』는 1967년에 子午流注法을 소개하기 위한 62쪽의 소책자이고, 『鍼道源流重磨』는 鍼道의 源流인 『鍼灸大成』을 註解한 데다가 여러 鍼法들을 取捨選擇하여 첨가하고 자신의 鍼法인 太極鍼法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太極鍼法은 李炳幸 자신이 개발한 四象醫學理論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전통침법이다. 그는 四象人의 臟器의 大小를 太陽人이 肺大肝小, 太陰人이 肝大肺小, 少陽人이 脾大腎小, 少陰人이 腎大脾小라는 李濟馬의 학설을 제시하면서 체질감별법을 제기하였다.
姜丁熙 선생에 대한 자료는 1959년 『東方醫藥』에 서울시한의사회 회원명부에 “姜丁熙 五三 慶南 鍾路區內資洞三 安保”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경상남도 출신으로 종로구 내자동에서 안보한의원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정희 선생이 구사했던 일본식 침법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침법을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本問祥白 선생의 침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의사협보(후의 한의신문) 1969년 9월 30일자에서는 이 사건을 “鍼道源流, 日式鍼術制壓”,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 과시, 29일 이병행씨와 강정희씨 임상 비교 실험”이라고 크게 제목을 붙이고 있다. 강정희 선생이 이병행 선생이 구사한 침도원류에 대해 신묘한 탁효를 극찬하고 일본학계에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환자였던 이○○씨는 ○○병원에 1개월여 입원치료도 했고, 접골사의 치료도 받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어서 강정희 선생에게서 침술 치료를 해왔지만 감각이 전혀 없던 左腕이 하품을 하거나 기침을 할 때 손끝이 저절로 움직이는 정도로 나아졌지만 운신부동의 상태였었다고 한다. 이것을 이병행 선생이 25분만에 침도원류로 치료해낸 것이었다.
이병행 선생은 같은 달 7일에도 대한한의학회와 경기도한의사회 공동주최로 종묘 구내에서 학술강습회를 개최했을 때에도 연사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는 鍼道에 대한 강론과 관절염, 좌골신경통, 유주신경통의 치험례 발표가 있었다. 당시 이형찬 대한한의학회장은 ‘鍼道源流’ 제4편을 프린트 책자로 참석한 회원들에게 배포하면서 “사학의 학술 향상을 위해서 오늘 이 강습회를 경기도와 공동으로 마련했다”고 말하였다.
1969년 9월30일자 한의사협보에 나오는 이병행 선생과 강정희 선생간의 침술배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