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47)

기사입력 2013.06.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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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2월 李鍾馨 회장의 제4차 세계침구학술대회 참관기

    李鍾馨(1929~2008) 선생은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대한한의학회 이사 및 이사장을 역임하였던 인물이다. 호가 松齋인 그는 1929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후 한의학 연구의 뜻을 품고 1949년 晴崗 金永勳 선생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서울로 와서 지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김영훈 선생은 그를 지도하면서 동양의약대학에 입학하도록 배려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1955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수석합격의 영예를 갖게 되었다. 1973년에는 일본, 동남아시아, 미국 등의 전통의학계를 시찰하기 위해 외유를 하였다. 1975년에는 일본동양의학회 회원, 1976년에는 대만중의사회 고문 등에 위촉되기도 하였다. 1983년에도 국제동양의학회에 참가하여 유럽의 전통의학계를 시찰하였다.

    당시 대한한의학회 회장이었던 李鍾馨은 1975년 2월17일 제4차 세계침구학술대회가 열리는 미국의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시에 도착한다. 본래 57명의 한의계 인사들이 참가를 신청했지만 인원 제한 등으로 인하여 17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이때 참관했던 기록은 1975년 3월에 나오는 『醫林』 제108호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를 李鍾馨 회장의 목소리로 아래에 정리해 본다.

    17일 일행은 도착 즉시 대회 개최장소인 시저스 파레스 호텔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 집행위원장인 王家駿이라는 분을 찾아 일행의 도착을 알리니 환영해 주었다. 특히 재미 한의사회 회장인 尹聖熙 선생과 본 대회 집행위원인 의사 金聖洙 선생이 나와서 참가수속을 도와주었다. 오후 7시부터 라스베가스 시장이 초대하는 환영파티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일본측 참가자, 대만측 참가자들과 만났다.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께서 나오셔서 축사를 하며 격려해 주었다.

    2월18일 개회식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었다. 네바다주 부지사의 환영사, 대회장 크렘스씨의 개회사, 그리고 명예회장인 경희대 조영식 총장의 축사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곧이어 학술 발표가 시작되어 연사들의 강연이 있었고, 오후에는 여러 개의 방으로 갈려서 워크샵으로 학술 발표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발표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인 남녀,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한요욱 한의사협회 회장이 발표자의 이름과 논제를 소개하면 통역이 영어로 통역한 후 발표자가 발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월19일 오전 경희대에서 준비해간 한의학 교육현황 및 한방병원의 시설, 진료현황을 찍은 영화가 대전당에서 상영되었고, 노정우·유근철·최용태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유근철 교수의 침술마취수술 과정과 김형래 선생의 소아마비 치료과정이 필름으로 상영소개되었다.

    2월20일까지 70여편 논문의 발표가 모두 끝났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들을 다음과 같다. 침술과 면역학(미국), 동의진단과 서의진단의 결합(스페인), 침의 자극전도(프랑스), 耳鍼法 소개(미국), 원혈탈모증의 鍼治例(일본), 동통 제거와 鍼術(미국), 음양오행설과 鍼術(아르헨티나), 체중 감소(비만증)요법과 침술(미국) 등이다. 특히 미국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꼽는 것이 비만증, 동통 제거, 정신신경계(노이로제, 알코올중독증 등)의 침 치료라고 한다.

    제4차 세계침구학술대회를 총괄해 보면 대회 준비를 위한 미국측의 활약이 지대하였다. 특히 이번 대회를 위한 한·중·일 삼국의 활약이 열렬하였다. 특히 한국이 ‘국제동양의학회’창립을 제안하여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의 한의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과정이었으며 아울러 자체적으로 내실화를 다져나가는 과정이었음이 분명하다.

    <-1975년 의림 108호에 기록된 이종형 선생의 제4차 세계침구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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