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36)

기사입력 2013.01.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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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申佶求(1894~1974) 선생은 任德盛(1942~1993) 원장에게서 얻은 申景濬(1712~1781) 선생의 『素砂記』, 『花卉譜』, 『心國天君史記』 등 10여편에서 ‘邀醫診脈說’이란 제목의 글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醫林』 제67호에 나오는 신길구 선생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申景濬은 조선시대 문신으로서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과학적 연구에 매진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실학자적 입장에서 고증학을 바탕으로 『訓民正音韻解』를 지어 한글의 과학적 연구를 하였고, 『八道地圖』, 『東國輿地圖』, 『旅庵集』 등 저서가 있다.

    이 글을 번역한 신길구 선생은 한국 본초학의 금자탑을 쌓은 인물로서 1972년에 『申氏本草學』이라는 본초학계의 불멸의 명저를 남겼다. 신길구 선생께 申景濬 선생의 저작을 선사한 임덕성 원장은 산삼과 인삼 연구에 매진한 한의사로서 서울시한의사회장을 역임하였다.

    아래에 신길구 선생의 번역문을 아래에 全載한다.

    “어떤 醫員 한 분이 蓬萊山에서 왔는데, 當世의 良醫라고 한다. 나의 聰明을 듣고 나의 詩文을 보고 因하여 나의 손을 잡고 말하되, ‘나는 診脈을 잘하는 良術을 가졌지요. 秀才의 脈候가 과연 어떠한지 내가 장차 試驗하리라’하고 드디어 診脈하라고 三指로서 脈의 氣候를 보고 한참동안 물러앉어 자리를 바로 하고 말하기를 ‘脈候가 고르지 못하고 浮하면서 急하니 病이 반드시 많을 것이오. 良藥을 먹고 또 鍼灸를 한 然後에야 可히 病을 免하리이다’고 한다. 나는 잠자코 밖으로 나와 스스로 생각하기를 ‘하늘이 이미 나를 낳으시고 斯道의 큰 責任을 맡기시었은 즉 진실로 장차 病이 없어야 完遂할 터이다. 내가 먹을 만한 良藥을 그 어느 사람이 능히 調製할까? 黃帝, 岐伯, 扁鵲, 華陀의 新方을 그만두고 내가 스스로 지어 먹는 것이 좋겠다’하고 곧 二丸, 二湯, 三貼 등을 製造하고 道德丸이라 이름하였다. 대개 孝悌, 忠信, 仁義, 禮智로서 八味丸을 만들고, 溫良, 恭儉, 誠敬으로써 六味丸을 만들고, 이에 非禮면 勿視하고, 非禮면 勿聽하고, 非禮면 勿言하고, 非禮면 勿動으로써 四物湯을 만들고, 또 程明道, 程伊川, 朱晦庵, 壽考, 康寫로써 一貼을 짓고, 退溪, 栗谷, 尤庵의 學業으로써 六君子湯을 삼고, 이에 淸愼, 安和로써 一貼을 짓고, 또 高明光大로써 一貼을 만들고, 堯舜孔孟의 心學으로써 周公의 潤德을 加味하고, 泉水로 달여 반쯤되거든 曾子의 日三省法으로써 日三服한 즉 病이 어떻게 하여 생기고 疾이 어찌 이루게 될고.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蔘黃이 비록 千萬이나 진실로 可히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龍腦鳳膽도 또한 閑物이 될 것이니 醫의 이른바 定志丸, 潤中湯이 어찌 可히 同日로써 말하랴. 그리된 然後에애 國脈이 浮하고 天下가 病들게 되면 내가 반드시 道德丹으로써 고치고 다스릴 터이다. 脈의 浮沈을 내가 어찌 근심하고 病되게 여기랴. 尙且 나는 知覺이난 이래로 아무는 아무의 藥을 쓰고 아무는 아무의 鍼灸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病이 快差하여 平常時와 같이 回復된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즉 醫家가 진실로 執症과 製藥이 能熟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다.
    진실로 或 나의 調製한 바의 藥을 쓰면 天下의 사람이 다함께 仁壽하는 境域에 到達하여 擧皆 오래되어도 無病할 터이다. 어찌 沈寒痼冷에 呻吟하는 근심이 있으랴. 그리고 良醫의 大道는 누구든지 여기에 지낼가 보다!”

    아마도 申景濬 선생은 도덕이 땅에 떨어진 당시의 시세를 한탄하여 그 처방을 의학에 빗대어 풍자한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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