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28)

기사입력 2013.0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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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東洋醫藥大學報』창간호를 보니

    1957년 『東洋醫藥大學報』가 창간된다. 이러한 자료가 있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수년전 강원도한의사회의 명예회장이신 임일규 선배님께서 그동안 모아놓으신 피같은 자료들을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 기증하시게 되시면서 알게 되었다. 기증하신 자료 안에 이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크랩의 형태로 창간호부터 마지막호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순서대로 정리된 자료였다. 이 자리를 빌어 임일규 명예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1957년 12월12일에 나온 『東洋醫藥大學報』 창간호를 보니 일반 신문 크기로 모두 4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당시 東洋醫藥大學 학장이었던 박호풍 선생의 창간을 축하하는 말씀이 있었다. 박호풍 선생은 ‘지식을 체계화시키라’라는 제목으로 한의학의 지식을 체계화시킬 방안을 강구하자고 역설하였다. 한의학과장이었던 김장헌 교수는 ‘진리는 새로운 것, 부단한 연구를 가져라’라는 제목으로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역설하는 축사를 쓰고 있다. 서무과장인 金敎忠 선생은 ‘앞날에의 기대와 희망을 던지련다’라는 제목의 창간 축사를 쓰고 있다.

    첫면 기사 가운데 몇 가지가 눈에 띤다. 그해 11월5일에 학생한의학회가 구성되어 회장에 任英宰가 당선된 기사와 교내에서 친선농구대회가 학생한의학회 주최로 개최되었다는 기사, 졸업예정자 논문 제출 요구 기사, 학회지의 논문 모집 공고 등이 눈에 띤다. 또한 부속한의원 개원에 대한 기사도 보인다. 부속한의원의 원장은 박호풍, 부원장은 이완식, 내과 담당은 손석환, 침구과 담당 권영준, 소아과 담당 이계승, 소아과 담당 홍성헌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11월8일에 김장헌, 홍성초, 박성수 등 세분이 교육부로부터 교수자격증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축하연을 열었다는 기사도 보인다.

    2면으로 넘어가면 교무과장 상대식 선생의 ‘학문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를’이라는 글과 약학과장 양충호 교수의 ‘국민식생활의 영양학적 분석’, ‘한의원론 강사’라고 직함이 붙은 한승섭 선생의 ‘한의학 과학화에 선행과제’라는 글이 보인다. 아마도 당시 최고의 화두의 하나인 ‘과학화’를 논하고자 한 글일 것이다.

    3면에는 침구학을 연구하신 안정후 선생의 ‘鍼灸雜話’, 학생위원장 趙鏞日의 ‘젊은 학도들이여’라는 제목의 글, 이종성의 ‘人蔘에 대한 小考’ 등이 게재되어 있다. 또한 권영준 교수의 한시가 게재되어 있다. 한시는 다음과 같다. “恬憺虛無是道生, 不少不衰終不滅, 俗淸不露似無情, 無來無去亦無成, 性離三 身常潔, 南國近年斯學大, 心遠四相志益明, 東方自比好傳聲”

    또한 ‘本大學의 沿革’에서는 당시까지의 동양의약대학의 연혁을 정리하고 있다. ‘미국의 의학’에서는 당시 미국 의학계의 동향을 대학과 연구, 학회 등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학생회 임원이 선출되어 위원들이 바뀌었다는 기사도 눈에 띤다. 위원장에는 조용일, 부위원장에 남순우, 위원에 이형찬, 이상렬, 최성만, 김신규, 김덕렬, 이석산, 우세재, 김경선, 정구채, 이창호, 이덕준, 한기섭, 노연, 박승진, 조태호, 조재헌, 총무부장에 한상환, 차장에 김동진, 공작부장에 이현우, 차장에 정구채, 훈련부장에 정헌화, 차장에 이풍기, 체육부장에 임봉수, 차장 이석산, 기율부장에 이형찬, 차장에 송한창, 유엔학생부장에 최소영, 차장에 손용섭, 학예부장에 김신규, 차장에 김일배, 후생부장에 고경선, 차장에 이창호이었다.

    4면은 학생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 김신규의 ‘체집기’, 한기욱의 ‘제약회사 견학기’, 김종수의 ‘에레지’라는 제목의 시, 조태호의 중편소설 ‘죄수의 딸’ 등이 그것이다.

    <- 1957년에 나온 ‘동양의약대학보’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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