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교수

기사입력 2012.12.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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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것과의 결별

    “사랑한 것들 모두다 떠나가고 머리 위에 빛나는 하늘을 기억해. 힘겨운 날들 견디기 힘들어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거야. 슬퍼하기엔 저렇게 파란하늘이 있어. 뒤돌아 볼 것 없어. 이제 잊어야만 하는거야. 또 다른 시간 묻혀버리지 않도록 아직도 많은 날들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언제나처럼 잊지 않기로 해. 힘겨운 날들 견디기 힘들어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거야.”

    장혜진의 <어제와 다른 오늘> 가사이다. 노래는 쉽게 흥얼거려질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일상사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변화경영 전문가로 불리우는 구본형씨가 2007년 출간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출판시장에서 ‘팔리는 책’ 분야로 자리잡은 자기계발서의 ‘그야말로’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이 책은 모든 것은 변하며 ‘누가 이러한 개혁에 저항할 것이냐’ 하는 거창한 물음으로 시작되는 책으로 실업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니 1인 기업가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 비전을 스스로에게 먼저 보여야 한다는 강도높은 주문을 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한 산책길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다섯 가지도 친절하게 요약해주고 있다.

    5년 전에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니 밑줄씩이나 그어가며 공부하듯 읽었던 5년 전 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기 만큼이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더욱 어렵다. 이 모두 ‘습관’이 만들어준 ‘징하디 징한’ 관성 때문일 것이다. 어제까지 해왔던 내 몸과 마음에 착 달라붙어있던 익숙함을 과연 어떻게 과감하게 떼어낼 수 있단 말인가?!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습관에 대해 이러한 말을 남겼다. “습관은 이성보다 강하다. 습관은 인간에게 있어 잠자고 있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을 대하게 되므로 자극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년이 지나면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지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많은 습관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또한 오스트리아 시인, R. M.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오늘의 맑은 이 아침, 이 순간에 그대의 행동을 다스리라. 순간의 일이 그대의 행동을 결정한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 오늘 그릇된 한 가지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새롭고 강한 성격으로 출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습관은 새로운 운명을 열어줄 것이다.”

    두 문학가의 습관에 대한 격언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것, 늘 새로움에 열려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날마다 초단위로 쏟아지는 놀라운 정보들에 의해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 ‘MUST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지 않으면 꽤나 뒤떨어진 사람 취급받는 2012년의 대한민국민이라면 갖추어야만 하는 필수덕목이 된지 오래인 것 같기도 하다.

    한의사들도 개원가에서든, 학계에서든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가?! 오히려 온실 속에 안온하게 지내고 있는 내가 들판에 내던져진 채로 세차게 불어오는 찬바람을 오직 원장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모두 버텨내야 하는 개원가의 선후배들에게 과연 ‘변화’라는 단어를 던질 자격이라도 갖추고 있는가 괜히 머쓱해진다. 이 시간에도 진료를 더 잘 하기 위한 임상강의 쫓아다니며 주중 주말 새벽 자정을 마다않고 열성을 다하시는 선후배님들은 얼마나 많으시며 또한, 종교단체에 속해서든 개인적 결심에 의해서든 해외, 국내 낙후지역으로 의료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계신 선후배님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 줄도 나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이라면 강의주제로 도마 위에 오르지도 못했던 수많은 ‘경영’, ‘컨설팅’ 등의 보다 전문적인 영역의 강의도 요즘은 자주 열리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열심히 걷고 달리고 뛰는데도 한의계가 지속적으로 힘들어지고 있다는 진단을 안팎에서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세상의 변화의 내용, 폭, 속도에 한의계의 노력이 그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방향 설정의 오류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절대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알아서 시험점수가 올라가던 시대는 끝났다.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이야기를 요즈음의 수능세대에게 이야기하면 코웃음칠 것이다. “수학점수는 수학문제를 푼 연습장 두께에 비례한다”는 이야기도 20년 전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께서 주문처럼 외시던 잔소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요즈음, 수면시간이나 연습장 두께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입시전략이다. 문제풀이도 오프라인 과외교사부터 교수급 인터넷 강의까지 수단도 방향도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한의계 내부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방식이 “그저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땅도 감동하여 우리를 알아줄 것이야” 수준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노력에 비하여 결과물이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든 투쟁이든 연구든 열심히 하는 분들이 주변에 넘쳐나시니 하는 말이다.

    국립대학교에 있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 공무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꽤 불편한 진실을 아주 자주 직설적으로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최근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진단은 “한의사 집단은 이제 한국에서 간호조무사 말고는 다 적이 되어가고 있더라…” 라는 것이었다. 의사도 약사도 물리치료사도 관련 공무원들도 우리를 외면해가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나고 잔칫집이라야 파리가 끓는 법이다. 언젠가부터 한의계의 곳간은 텅텅 비어가고 있고 비유명인 초상집처럼 인적이 드문 곳이 되어가고 있다. 널찍하지만 절대 인파가 북적대지 않는 각 대학 한방병원의 로비와 대기실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임상한의학의 정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몰려야 돈이 돌고 연구도 활성화되고 그 결과가 언론에 공표도 되면 다시 사람이 몰릴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사방경색(四方梗塞)이요,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실제로 요즈음 한의계로 오는 많은 연구비들은 한의계를 어떻게 활성화시켜 보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가지고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응급환자에 인공호흡기 장착하듯, 옆집에 금은보화 배달하다가 우연히 떨어진 금화 한잎 인심좋게 적선하듯, 그렇게 배당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우리가 그간 그 많은 연구비를 받아 뭔가 공공의료(public health)에 기여를 한 바가 있어야 연구비를 밀든, 벼랑에서 밀든 할 터인데, 연구비에 적확한 유의한 쓸만한 결과들이 별로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많이 도출되고 있는 모양인지 암튼 불편한 기색이다. 의사협회에서 금번에 한방재활의학과 교과서 표절문제를 들고 나온 데 이어서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한의학연구원에 감시의 칼눈을 거두지 않고 있기에 지금 내가 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연구비 관련하여 관련단체 분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한의계에서 ‘근거(evidence)’를 보여주는 연구가 거의 없어서 어떤 과제를 기획해서 상부에 보고하기가 본인들도 참 민망하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반만년을 이어온 한의학의 역사가 수년 안에 그간 못했던 연구들의 단점을 모조리 극복하고 유의한 근거들을 ‘좌라락’ 만들어낼 수 있을까? 걱정과 근심을 거두고 희망과 비전을 한꺼번에 거뭐질 수 있을까?

    천연물신약, 첩약건보, 한방 물리요법 급여화 확대 등등의 현안들은 모두 의사, 약사, 물리치료사 직능과의 이견을 품고 있는 문제들이다. 잘 모르면서 이런 현안에 대해 말 한마디, 글 한줄 잘못 남길까봐 어디에서도 입뻥끗 하지 않았다. 1993년 한약분쟁 때도 그랬지만 국민들이, 공무원들이 바라보기에는 한의사들은 늘 ‘한의사’ 입장만 내세우는 것 같단다. 억울해도 이게 현실이다. 물론 우리가 의사나 약사의 입장을 위해 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있다. 이걸 역행하자는 게 투쟁일 수도 있고, 혁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거 안 해주면 우리는 끝장”이라고 버티다 보면 대개의 산업현장에서의 ‘목숨걸고 투쟁’의 결말이 그렇듯이 해고 아니면 자살이다. “절박함은 알겠으나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정중정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의 태도가 이렇다. 그들은 절대 급할 게 없으니 말이다. 48 : 51로 싸우더라도 보다 합리적인 결론이 우리 안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2012년의 마지막날. 올 한해,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고생들 많이 하셨다고 한의사 선후배님들 모두에게 ‘토닥토닥’ 하트를 날려본다.

    2013년 개인적으로는 부산대 생활 5년차를 맞는 해이고, 서른 아홉으로 마지막 30대를 보내는 해이기도 하다. 부산대로 이직하여 1기부터 5기까지 250명의 제자들을, 분에 넘치는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만났다. “이것으로 족해”라고 말해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부산대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더 이상 2030 청년이 아닌 4050으로 분류되는 중년에 입문하는 시점에 이 학생들에게 더 ‘선생다운 선생’이 되고 싶은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습관처럼 강의하고 습관처럼 진료하지 않으리라. 날마다 새로운 강의, 학생들에게 100% 공개할 수 있는 진료를 해 보아야지. 결심해본다.

    그동안 <빈터>칼럼을 통해 주제넘은 지적질을 너무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의사 선후배님들의 격려와 비판을 해 주셨고 그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 2012년을 마무리하며 이 칼럼과도 작별을 고하는 바이다. Facebook도 당분간은 안녕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나를 탐색해보고 싶다. 모두들에게 건승을 기원한다.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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