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19)

기사입력 2012.11.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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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 『東西醫學報』창간호의 서문을 보니

    1916년 『東西醫學報』의 서문을 읽었다. 한문으로 쓰여 있어 번역이 필요해서 아래에 번역하여 소개해 보고자 한다.

    『東西醫學報』는 1916년 6월 공인의학강습소에서 홍종철을 발행인으로 하여 간행한 잡지로서 이듬해 6월까지 8호에 걸쳐 간행된 일제강점기 한의학 학술잡지이다. 창간호의 서문을 통해 이 시기 한의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의학을 공부하지 않고서 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학문을 가히 익히지 않고서 의사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반드시 배우고 나서 또 익혀야 할 것이다. 의학에 있어 옛 것에 얽매이고서 가히 의사라 할 것인가? 또한 지금의 것만 탐하고서 의사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반드시 옛 것을 연구하고 또한 지금의 것을 해야만 가히 의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말이 모두 여기에서부터 나왔거늘 나 또한 그렇게 여긴다. 이르기를 두 번 읽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낫고 무리들의 지혜를 쌓고 학설들을 아울러서 마음에 경계가 없음에 옛것에 대응하여 지금의 것을 증명하여 단점을 보충하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술을 행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각각 배움이 있으니 배우는 것은 어떤 것에 정통하고자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나중 사람들에게 전하여 나의 학문이 썩지 않게 하는 것은 학문의 원래의 이치요 사람의 본능이니 억지로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연유인가. 시론적으로 한마디 하고자 한다. 東醫로 免許를 받은 자들이 6000여 명에 이르니 이것은 적은 것이 아니로되 지금 6000여 명들이 주소가 일정하지 않고 의학을 부업으로 삼기도 하고 연소자는 다른 일로 분주하기도 하여 폐업이 속출하며 나이든 사람들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 면허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그 줄어든 만큼 보충이 안 되고 있다. 이것은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기량이 부족해서 스스로 다른 사람의 조소를 불러일으키고 법령에 익숙하지 못하여 취체가 엄밀하지 못하며 단지 糟粕만을 지키고서 부족한 자본을 쫓아서 局을 베풀어 얼마 있다가 곧 그만두며 대우도 西醫에 미치지 못하고 영업의 이익도 더욱 날로 부족해져 낙심할 따름이다. 더욱이 발흥하여 길게 이어갈 희망도 없으니 이것은 심리적 퇴보이다. 하나의 나무를 재배하고 하나의 짐승을 키움에도 반드시 전문적 가르침이 있어야 하니, 우리들은 반드시 전문적 가르침이 있어야만 그 이력으로 족히 그 사업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졸업증서가 있은 다음에 비로소 면허증이 있게 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바뀌지 않는 바른 준칙이다. 오늘날 우리 東醫들은 가장 다루기 어렵고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위임받은 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전문적 가르침도 없고 전문적인 학교도 없어서 그 실상이 이미 공허하고 또 형식적 졸업증도 없으니 이것은 자연히 도태되어 돌아갈 뿐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조선에 있는 의사는 조선인, 일본인, 외국인을 합해도 600여 명에 지나지 아니하니 이러한 숫자로는 반도의 인민들을 치료해낼 숫자가 안되니, 이른바 博施濟衆을 堯舜이 병으로 여길 것이로다. 醫藥을 요즘에 이르러는 열심히 공부하여 이를 익히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날로 새로이 하여 전문적 기능이 있은 다음에야 이 도가 썩지 않아 인류에 행복이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사람들의 희망에 부응하여 東西古今의 學理로 公認醫學講習所의 學生들에게 敎授하고 講義를 엄선하여 月報를 만들어 同志同業者들이 함께 보게 하고자 하니, 책임은 위중한데 갈 길은 멀도다! 이 길을 보장할 수 있음은 내가 감히 기약할 수 없으니 讀者諸君들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

    <- 1916년 간행된 ‘동서의학보’ 창간호에 나오는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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