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權英植이 전해주는 實驗談
1963년에 나온 『대한한의학회보』 제1권 제1호에는 權英植(1900〜?) 선생의 ‘病의 70%는 痛症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權英植은 경기도 연천군 출신으로서 서울 종로구에 三世한의원에서 진료를 하였다. 그는 학문적으로 金永勳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醫林』에 1950년대부터 ‘이미 이루어진 한의학의 세계’, ‘한의학의 혁신에 대한 의견’, ‘한방과 양방 진단법의 득실과 치료’, ‘사상의학의 우월성을 이야기함’, ‘콜레라 치료에 대하여’, ‘결핵성 질환을 치료할 예’, ‘중풍을 치료한 예’, ‘여름철 질병을 치료한 예’, ‘한방체계를 이야기한다’, ‘폐결핵을 치료한 예’ 등 임상 경험과 학리를 연계시킨 논문을 다작하였다. 그의 글은 35호부터 시작되어 114호까지 이어진다.
‘病의 70%는 痛症이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實驗談이 나온다.
“시기는 6·25동란 다음해 6월이다. 피난 중 영동읍에 우거하여 한의치료에 전념하던 중 그 읍에서 1里되는 부락민 모씨가 大豆를 파종 중에 뱀에게 물려서 脚大如柱하고 정신혼몽이라. 치료를 新醫에게 받았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당시 동거하는 송모씨가 말하기를 족제비에게 배운 약이 있으니 사용하라 하기에 필자는 상당히 의심하여서 그 유래를 물어보았다.
송씨의 말이 2〜3년 전 여름에 친구에게 가기 위하여 모처에 가는 도중에 여름 더위로 정자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중에 大蛇가 족제비 보금자리에서 그 새끼 三首를 물어 죽였는데 어미 족제비가 와서 보고 蛇를 쫓아내고 그 다음에는 뚝갈나물잎을 뜯어다가 족재비 새끼 죽은 위에 덮어주고 있으므로 송씨는 이것을 관망하고 있었다. 약 30분 후에는 죽은 족제비 새끼가 바들바들 살아나서 족제비 어미애비가 핥아 주어 완전히 소생되어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여기에 뱀에 물린 데에는 뚝갈나물이 약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오후에 친구 집에 방문하였던 바 의외에도 친구 자부가 뱀에 물려서 다리를 사용치 못한다 하여서 송씨는 즉석에서 뚝갈나물을 채취하여서 많이 搗付케 하고 친구와 川邊에 가서 놀다가 4〜5시간 지나서 돌아와서 본즉 10분의 8은 차도가 있어서 명의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필자에게 이 약을 권고하는 것이다. 당시 특효약인 石雄黃도 없고 하여서 이 약을 왕진시 搗付케 하였다. 과연 신기한 약이었다. 백약이 무효했는데 이 뱀에 물린 사람은 2주일만에 완치되어 그 부인으로부터 치하를 받은 사실이 있었다. 만일 송씨가 족제비에게서 이 약을 배우지 않았던들 이 환자는 사망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또 한토막은 물도 특효약이란 것이다. 서울에서 某人士의 치험례인데, 닭고기를 먹다가 목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다. 급히 병원에 가서 진찰한 즉 하등의 滯物이 없고 단지 穀道가 팽창하여서 수술도 못하고 자연요법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하므로 할 수 없이 귀가하여 신음하는데 水漿이 不入하여 몇일도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이다. 그래서 某人士에게 치료를 구하는데, 이 사람도 目見하고 치료방법이 없어서 熟考探思한 끝에 淸水含水를 勵行케 하였다. 무려 10시간에 飮水가 自下하여 完治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冷水로 消炎解毒케 한 것으로 醫者의 적당한 意思로 死에서 生으로 回還케 한 것이다. 결론으로 병은 전부 통증을 발한다. 이 痛症을 제거하는데는 通하게 하는 방법을 써야 하고 通하는 방법은 補不足, 瀉有餘하여 氣血의 균형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에 症狀, 原因, 四象을 綜合診斷, 處方을 하여야 한다.”
<- 1963년 대한한의학회보 제1권 제1호에 나오는 권영식의 실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