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04

기사입력 2012.07.0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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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10월20일 東京 國際鍼灸學會에서 배포된 『醫林』 51호

    1965년 裵元植·權度元·秦泰俊 3인의 한의사는 한국의 한의계를 대표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國際鍼灸學會에 참가하였다. 10월18일부터 11월7일까지 이어진 강행군의 여정이었다. 해외여행의 자유가 없었고 국가적·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3장의 비행기 티켓과 일본 여행비를 마련하여 일본 여행을 감행하는 것은 집을 몇채 팔아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뛰어들었다.

    같은 해에 나온 『醫林』 52호에는 日本 東京에서 열렸던 國際鍼灸學會에 참관했던 세명의 한의사들의 참관기를 裵元植 선생이 기록한 문건이 31쪽부터 49쪽까지 19쪽에 걸쳐 사진과 함께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裵元植 선생이 이 대회를 얼마나 비중있게 의미를 두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기록에 10월20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20일 오전 8시에 우리가 가져온 醫林誌 51호와 權度元 선생의 논문집 등을 합하여 근 6〜700권을 學會場 內에다 운반하여 각국 인사들에게 配本할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회장 정리 관계로 재빨리 나온 금반 국제학회 운영부장인 桐生雅道氏가 本人에 대하여 금반 국제학회를 通覽한 소감을 묻기에 성대한 학회였으며 日本鍼灸學界史上 靑史에 빛날 일이라고 감축의 말을 하였더니 어찌할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워하였다.

    20일 강연은 48번째인 미국의 의사 엠바씨가 첫째이고 우리 권도원 선생이 두 번째였다. 시작하기 전에 모여드는 일본을 제외한 외국인사들에게 醫林誌와 權度元 선생 논문을 합하여 配本하였다. 그 다음에야 日本鍼灸界 人士들에게 配本하였다. 그 역할은 秦泰俊 선생이 하고 고루고루 배본되었는가를 본인이 감시하였다. 배본받은 인사들의 요구가 醫林誌만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있을 법한 것은 51호 醫林誌를 국제학회에 가져가려고 전에 없던 예외로 영문으로 경희대 한의대의 17층 3100평의 방대한 부속병원 건물(당시 건설 중에 있었음. *필자의 주석)을 비롯하여 근대 한방 개황 등과 아울러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여한의사들의 활동상황과 앞으로 2년 후인 1967년 우리 한방계에서 국제한의학회를 개최하겠다는 여한의사들의 文宣運動에 그 분들이 大好奇心이 생긴 것으로 본다.”

    위에서 당시 학회장 내에 옮겨가서 외국 발표자들에게 전달한 『醫林』 제51호를 살펴보면 뒷부분에 영어로 된 논문이 14쪽에 걸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이 시기 일본 국제침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외국인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裵元植 선생의 치밀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醫林』 51호에는 1965년 10월15일자로 기록된 裵元植 선생의 「The Bird’s-eye View of Oriental Medicine in The Republic Korea」라는 제목의 글이 제일 먼저 나온다. 이 글에서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고, 한국의 동양의학회, 『醫林』誌, 사암침법, 사상의학 등에 대한 개략적 소개, 한국에서 한의학이 각광받는 이유 등에 대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어서 송태석, 이금순, 이문송, 송수애, 한희숙, 임경숙, 안숙진, 이명주 등 여한의사들의 영어로 작성된 편지글들이 그 뒤를 이어서 수록되어 있다.

    모두 몇일 후 일본에서 열릴 국제침구학회의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글들이다. 이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유감임을 표하면서 이 학술대회가 세계 침구학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대회가 되게 될 것을 기원하는 글들이었다.


    <- 1965년 의림 51호에 나오는 배원식의 영어논문.1965년 의림 51호에 나오는 배원식의 영어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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