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교수

기사입력 2012.06.15 10:11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B0042012061536706-2.jpg

    B0042012061536706-1.jpg

    한의계의 희망은 무엇일까?

    에피소드3-염소 한마리의 희망

    UN이 책정한 염소 한마리 값은 2만원. ‘염소 한마리의 희망’은 UN의 주선에 따라 ‘삼소회(三笑會)’가 한국전쟁 참전국이기도 한 에티오피아의 여성 교육과 권익 증진을 위해 염소 한마리씩을 소녀가 사는 가정에 지원하는 운동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기다려 듣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토요일 특집에는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과 인터뷰가 진행된다. 얼마 전 ‘삼소회’가 소개되었고 ‘염소 한마리의 희망’을 알게 되었다.

    ‘삼소회’는 여러 종교의 여성수도자의 모임으로 천주교와 성공회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원불교의 교무, 개신교의 언님 등 2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한달에 한번 정도 모여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데, 이번에 에티오피아 소녀·여성 돕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가정에 그 가정의 소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염소 한마리를 전달하는데, 앞으로 3년간 10억원, 염소 5만마리를 보내기로 약속하였다고 한다.

    영아 사망률 세계 1위, 인구 40% 이상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특히 15세도 안된 어린 나이에 성적 학대를 받으며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되고 있는 그들을 위해 염소 한마리는 큰 희망이기 때문에 5만마리를 약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종교이지만 공동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위해 함께 하고 함께 하는 모임의 활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소식은 아침을 더 희망차게 만들었다.


    우리 한의계의 희망은 무엇일까? 우리 한의계의 염소는 무엇일까? 왜 최근에는 다들(?) 꿈꾸지 못하는가? 현실이 힘들다, 어렵다는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올까?
    얼마 전 동의대 학생기자들과 인터뷰 기회가 있었다. 국립한의약임상연구센터(NCRC)에 대한 취재자리였다. 센터 설립부터 현황을 설명한 뒤 시설을 함께 돌아보면서 국내 한약제제 임상시험의 어려움, 한의약 특성 예를 들면 변증의 개념이 반영된 임상시험이 필요한 이유, 기업스폰서가 없는 침이나 뜸과 관련된 임상시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다.

    국립한의약임상연구센터로 설립되었지만, 양방병원 산하에 진료처 밑에 진료부 밑에 진료과처럼 운영하고 있고 예산과 인원조차도 배정해주지 않는 현실에서도 우리 한의계가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한의학이 될 수 있는지를 위한 센터의 기능을 얘기하였다. 그러면서 미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부탁하고 있었다. 약간은 흥분이 되어 얘기하다 보니 학창시절처럼 꿈과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한의학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밤새 고민하고, 강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홍콩을 통해 중국의학서적을 수입하고 학생들과 함께 중국논문번역모임을 만들었던 일!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우리 한의학도들이 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뛰어난 능력을 잠시도 놀리지 않아야 된다는 당부에 이은 결국의 잔소리^^. 그런데 학생들은 잔소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다른 대학의 교수이기 때문에 예의상 그러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진정성이 전달되었던 것 같다. 학생기자가 1년의 휴학기간 동안 미국을 다녀오면서 해외에서 다시 보게 된 한의학의 발전가능성 등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마 뒤, 자신들만 듣기에는 아깝다는 연락과 함께 학생회를 통해 특강 부탁을 받았고, 학생회장과 면담 이후 정규수업이 끝난 저녁 늦은 시간에 강의를 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강의 중간 중간 30여년 전 학창시절 얘기인데도 웃음지으며 공감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과 학생들의 자포자기가 느껴졌다. 혼자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지 않고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다 보면 공감하는 동료들이 많고 그 동료들의 능력은 어디서도 빌릴 수 없는 뛰어난 능력임을 강조하면서 꿈을 얘기하고 희망을 다시 피워보라고 부탁하였다.

    ‘한의대에 원서를 낼 때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라’, ‘제대로 해놓은 일이 많지 않은 미개척 분야가 많다고 도전하였던 한의학’,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경험세계를 과학적으로 밝힐 가능성’, 가슴 설레었던 그때로 돌아가서 10년 뒤 내가 어떤 모습의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을지 상상해보라며 강의를 마칠 무렵 학생들의 눈빛에는 새로운 느낌을 볼 수 있었다.

    기성세대들이 후배들의 꿈을 깨는 것이 아닌지? 너무 쉽게 현실에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지? 한의사 출신 보건복지부장관! 한의학의 철학에 바탕을 둔 보건정책! 내가 부족하면 뛰어난 우리 후배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희망을 얘기하고 꿈을 받아 봅시다.

    에피소드4-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뭐니?

    학생들과의 대화나 졸업생들과의 만남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는 교육문제이다. 중국과의 경쟁적 교류에서도 교육문제는 뜨거운 감자취급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의학교육에 만족하다거나 어느 한의대는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한의학과 중의학은 동등할 수 없고 질적 평가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향에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교재가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중의학교재를 번역 인용하고 있다.

    얼마 전 2박3일간의 (양방)의학교육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미국, 일본에서 의학교육을 선도적으로 개혁하여 성과를 이룬 대학교수를 초청하여 ‘성과 바탕 의학교육(Outcome Based Medical Education)’을 위해서 ‘학습성과가 무엇인지’, ‘왜 학습성과인지’, ‘어떻게 학습성과를 달성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물론 ‘의학교육 평가인증 제도’가 변화함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대학교수들의 볼멘 목소리도 들렸지만, 대부분 교수들이 자신들이 교육받을 때와는 다른 교육방식, 보다 효율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학습성과는 교육에 대한 불만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다. 기존의 교육이 ‘안다’, ‘이해한다’, ‘인식한다’, ‘기억한다’, ‘깨닫는다’를 목표로 하였다면, 성과 중심의 교육은 ‘판별한다’, ‘구분한다’, ‘평가한다’, ‘적용한다’, ‘분류한다’로 사용되는 용어부터 다르다. 기존 교육이 ‘교수자 관점’, ‘내용 강조’, ‘지식 위주’, ‘투입 중심’, ‘상대평가’, ‘종합평가’가 중심이었다면, 성과 중심의 교육은 ‘학습자 관점’, ‘과업 강조’, ‘역량 위주’, ‘결과 중심’, ‘절대평가’, ‘형성평가’가 강조된다.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평가하려는 교수들에게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불만은 늘 해소될 수 없다.

    10년 아니 20년 전과 비교할 때, 한의학교육에 사용되는 교재 분량은 몇 배로 늘어났지만, 과연 개원 후 임상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실용 가능한 내용이 몇 배로 늘어났는지 의문이다. 시험치고 암기할 내용은 늘어나고 국가시험의 족보는 늘어났지만, 실제 임상에서 한약을 처방하거나 침구를 비롯한 술기 나아가 병명진단에 필요한 기기 활용이나 협진 능력배양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이론교육이 미흡하고 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선후배가 함께 직접 환자들을 대상으로 참관하거나 실기를 배울 수 있는 의료봉사 활동의 기회라도 많았지만, 요즈음 대학교육에서 얼마나 이론과 실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는 아는 것만 많은 의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의사를 원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많이 가르치면 알아서 잘 할 것이라 학생들을 믿었지만, 이제는 학생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성과 바탕 의학교육(Outcome Based Medical Education)’을 위해서는 교육시기별, 단위별, 과목별 학습성과를 정의하고 수준을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강의’도 ‘지식’, ‘태도’로 구분해야 하고, 강의 이외에 ‘조별 활동을 통한 교육(Team based Learning)’을 위한 시설, 역할극, 표준화 환자, 비디오 리뷰 등에 필요한 인적·재정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론만으로 될 수 없는 교육시스템이자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의학교육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할 수 있는 한의사’가 ‘한의원’을 직접 경영하게 될 한의사인지, ‘한방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한의사인지에 따라 학습성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의학교육은 ‘한의사’와 ‘한의대 임상교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학생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두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의사’가 ‘한방·양방에 모두 능통한’ 한의사인지, ‘한방에 능통하고 양의사와 소통이 가능한’ 한의사인지에 따라 학습성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의사 혼자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것인지, (의료가 이원화된 현실에서) 파트너(양의사)와 소통이 가능한 능력을 키울 것인지에 따라 최종 졸업할 때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교수개인의 능력이나 취향에 따라 ‘전통 한방만’, ‘양방 위주에 부실한 한방’, ‘한방·양방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연결고리가 모호한’채로 전체교육을 교수에게 맡겨두었다.

    희망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리 한의계의 ‘염소 한마리의 희망’은 학습성과를 최종 마무리하는 임상교수들에게 달려있다. 임상교수를 더 이상 돈만 버는 역할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과별 진료실적으로 경쟁시키고 성과급으로 유혹하는 경영이 개선되지 않으면 한의학교육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뿐이다. 임상교수는 한의학교육의 ‘삼소회’가 되어야 한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