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 병원장

기사입력 2012.04.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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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임의 연구와 임상에 대한 소회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누구도 나고 자라서 늙으며 죽어가는 인생의 과정과 결과는 같습니다. 의료는 그러한 생의 마디마다 성장을 도우며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치료하며 노화를 억제하는 등 생명을 진작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료는 사람의 삶의 이력에 선한 인연을 묻히는 과정입니다.

    여성의 일생에 대해 한방부인과학은 월경ㆍ임신ㆍ출산ㆍ수유(經孕産乳)의 생리 전반에 걸쳐 역할을 하게 되어 있으나 특히 임신과 관련된 것은 그 어떤 부분보다 중요하다할 것입니다.

    제가 한방부인과학에 입문한 이후 레지던트 시절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시작인 월경과 관련해 ‘다낭성 난소증후군(polycystic ovarian syndrome)’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조교수와 부교수 시절에는 주로 여성의 월경이 다하는 것과 관련하여 갱년기 및 폐경기 후 증후군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한의계의 발전이 정체된 근래에는 개인적 연구 역량과 교실의 인적 자원을 난임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난임에 대한 진료가 생식내분비, 약물안전성, 스트레스 관리, 의사-환자관계를 통합하는 제 분야에 기초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난임 여성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 및 방계 가족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한의학과 선한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주제인 것입니다. 또한 한방진료로 태어난 아이들은 필경 생의 처음부터 한의학을 접하므로 주기적인 보양 프로그램이나 질병 치료법을 쉽게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 지속가능한 한의학 선호자로 성장하기 쉬운 법입니다.

    과거 초기 중풍 환자가 한방병원 입원의 주상병이던 시절, 한방치료로 사회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뇌혈관질환에 대한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 위상은 높았습니다. 이후 의료환경에 대한 변화 과정에서 대상 중풍 환자의 유형이 변하여 새로운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연장함에 있어 한의학은 새로운 근거와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통과 기타 근골격계의 동통에 대해 여전한 국민적 신뢰와 진료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들에 더하여 난임을 한방부인과학의 핵심 분야는 물론 한의학 전반에 걸쳐 중요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과제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그 사이 근거중심의학적 흐름이 한의계에도 밀려와 이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된 것입니다. 근거는 역사적ㆍ경험적 근거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어 현대의학적 방법론에 따른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과학적 범위까지 확대되어 그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어 한약 사용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아 이의 극복이 절실해졌다는 것입니다.

    셋째, 의료행위 역시 경제적 활동이므로 비용효과성이 증명되고 의료비에 의한 진료장벽이 낮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등 보조생식술에 대한 시술비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 확대되는 과정에서 한방의료 분야는 소외된 상황이 전개되어 그럴 기회가 차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저는 한의사협회와 경기도한의사회 등 한의계의 협조를 받아 먼저 2010년부터 2011년 초까지 난임에 대한 한방임상진료지침을 개발했고, 그해 여름부터는 경기도의 연구비와 자체 한방병원 연구비를 조성하여 조경종옥탕 및 수태환과 침구 치료를 이용한 한방 난임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에는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부인과학교실의 이동녕 교수 등과 함께 복지부 연구과제로 한방난임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의계의 특성상 개인 중심의 진료, 양방과 다른 진료기록 양상, 자연주기의 치료에 따른 남성 요인 통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한방진료의 근거를 수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별 진료 역량 차이도 양방에 비해서는 좀 더 큰 편이라 회원들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한의학에 의한 난임 진료의 공공의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와 사업은 물론 각 지자체 단위의 난임사업들을 충실하게 설계해 진행하고, 참여자의 교육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개인단위의 진료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취합할 수 있는 환자등록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차의료 현장에서 임신을 희망하여 내원하신 분들에게 “아들을 낳는 처방이 있다”거나 하는 그런 말들은 이제 그만하였으면 합니다. ‘구사(求嗣)’라는 말이 대를 잇게 하는 방법이니 옛사람의 관점을 그대로 좁게만 수용한다면 ‘아들 낳는 법’이라고 억지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처방이 있지도 않지만, 있고 없음을 논하기 전에 생명에 대한 외경과 사회에 대한 한의사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고 깊어지는 사람, 그런 분들이 한의계에 늘어나야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로서의 한의학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암이건, 척추이건 일가를 이루고, 이 어려운 의료환경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다들 하나의 주제에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얇게 번져서 입으로만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학문의 계곡을 이뤄 후학들을 품어낼 수 있는 그런 선배들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분들을 많이 뵙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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