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75

기사입력 2011.11.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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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대한여한의사회와의 좌담회

    1974년 7월 대한여한의사회가 발족된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본회가 발족한지 6개월이 지난 같은해 12월 『醫林』誌에서는 좌담회를 열어 ‘대한여한의사회의 근본취지와 활동상, 근후의 전망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에는 대한여한의사회 회장 韓熙淑(행림한의원장), 부회장 金雲貞(무궁화한의원장)·金玉鎭(범일당한의원장), 이사 成海順(성한의원장)·李裕德(제성국한의원장) 등이 참석했고, 『醫林』측에서는 사장 裵元植과 尹一民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裵元植이 논제를 꺼내면 본회 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배원식은 그해 7월 발족한 여한의사회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동안의 활동상황과 이후에 할 일에 대해 韓熙淑 회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韓 회장은 서울시에만 39명의 회원을 갖고 있으면서 일부는 외국에 나가 있고 개인 사정으로 휴업하고 있는 분들을 감안할 때 현재 35명의 회원이 개업을 한 상태에 있고 전국적으로 몇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지는 현재 파악 중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여한의사회의 의의를 “한의사의 사회적 지위라던지 또는 일반의 인식도는 그 전보다는 많이 향상되어 세계적으로도 한의학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이 때 우리 여성들도 학술적으로 연구를 더해야겠고 의료인으로서 국민보건의 일익을 담당한 이상 그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 그 자원도 도야해야만 하겠으니 첫째는 여성동지들끼리 친목과 단결을 하자는 목적 하에서 이 회를 결성하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金玉鎭 부회장은 “현재 여성들이 사회인으로서 현실 참여를 하여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약을 하고 있으니 의당 우리도 직책상 여한의사회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들의 활동은 학술을 더욱 연마하는 동시에 임상경험을 쌓아 이를 서로 토론하고 사회적으로는 무료진료라던가 기타 사회사업에도 봉사해 보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여자 한의사들이 많이 보는 질환은 대체로 부인과 질환, 신경계통, 위장병 등의 순서로 꼽았다.

    배원식은 앞으로 애로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를 이야기하였다. 이에 成海順 이사는 6〜7년 전 여한의사들이 모여 친목회를 만들었지만 유야무야되었던 일을 말하면서 앞으로는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金雲貞 부회장은 남자 한의사에 뒤지지 않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했다.

    韓熙淑 회장은 이어서 여한의사가 외국에서 활동하는 방안에 대해 裵元植 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裵元植은 앞으로 일본동양의학회에 참여할 때 여자 한의사분을 모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현안으로 이사 李裕德은 針灸士法沮止를 위해 총궐기할 것을 주장했다. 金雲貞도 남자 한의사들에게만 책임을 지울 일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역량과 지혜를 가지고 반대운동에 총궐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裵元植은 여한의사회의 무료진료사업에 대해 질문하였다.
    韓熙淑 회장은 그해 11월9일 있었던 진료를 설명했다. 당시 서울시한의사회장 尹四源의 협조로 서대문구 상암동으로 5인의 여한의사회 회원과 宋壽愛, 沈秀子, 石柔順 등 8명의 한의사가 가서 활약하였다. 이 때 와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을 800명에 달한다는 라디오 뉴스의 보도가 있었다고 한다. 한 회장은 앞으로도 이러한 사업에 더욱 힘을 쓸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대한여한의사회가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거행된 활기 넘치는 토론회였다.


    <- 1974년 11월27일 의림지가 주최한 대한여한의사회와의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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