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60)

기사입력 2011.07.22 09:18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B0042011072233518-2.jpg

    B0042011072233517-1.jpg

    해방 이후 현대 한의학 인물들
    한의학 현대화의 주역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의학의 부흥에 대해 부심하면서 1947년에 東洋醫學會라는 학술단체가 결성된다.
    이 단체는 1947년 『東洋醫學』이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하면서 趙炳瑾, 金永勳, 洪在 , 愼彩晟 등을 名譽會長으로 추대하여 한의학의 부흥에 노력하였다.

    교육계에서의 활동도 빛난다. 1946년에 東洋醫學專門學校設立期成會에 京畿道의 醫生들이 京畿道醫生會館을 기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탕이 되어 1948년에 한의학교육기관인 東洋大學館이 설립된다. 朴鎬豊은 초대 學館長을 맡게 되고 이 학교는 1951년에 서울한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나중에 경희대 한의대의 모태가 되었다. 1957년에는 朴性洙·金長憲·洪性初 3인의 한의사들이 대학교수 자격을 공식적으로 획득하면서 현대적 한의과대학의 교수의 시작을 열었다.

    한의사제도의 창립은 큰 업적으로 꼽힌다. 1951년 1월 전쟁기간 부산에 임시국회의사당이 마련되었을 때 金永勳, 方周赫, 朴性洙, 朴鎬豊 등은 적극적으로 국회의원들과 교섭을 시작하여 윤무상, 권의수, 이우룡, 정원희 등의 국회에서의 증언에 힘입어 한의사제도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한의사제도가 완비되면서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학회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73년에는 서울에서 제3회 세계침구학술대회가 개최되어 세계 25개국의 학자 700여명이 모여서 학술대회를 열었다. 본 학술대회가 열릴 수 있기까지 裵元植의 노력은 빛난다. 1976년에는 姜孝信, 具本泓, 崔容泰, 柳根哲 등 4인이 최초로 한의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한의학 제도화 이후로 학위제도에 의한 최초의 박사학위 수여자들이라는 점에서 높은 영광이 있는 것이었다.

    1976년부터 ‘집념’이라는 드라마로 허준의 『동의보감』 붐을 일으킨 이은성은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시킨 인물이다. 1990년 이 각본이 바탕이 되어 『소설 동의보감』을 만들고 1999년 드라마 허준이 제작되면서 한의학에 대한 신뢰도에 긍정적으로 작용되었다.

    최광수, 김만호, 신경희 등은 한의사로서 한의학계뿐 아니라 문화계에서도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다. 특히 최광수가 그린 허준 영정, 김만호·신경희의 글씨는 유명하다. 동양의약대학에서 배구로 국가대표를 지낸 한의사들은 배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개인적 학술활동도 빛난다. 조규철, 임홍근, 허연, 최석근 등은 한의학을 학술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학술지 간행, 의료봉사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한의사 집안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일부 인물들은 후손들을 한의대에 진학시켜 현재에도 한의사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 집안으로 춘원당한의원 가문, 『洪家秘傳』의 洪淳昇, 三省家誡로 대표되는 權五震, 田光玉 田錫鵬 父子, 朴炳昆과 아들 朴京均 등이다. 한편 金基澤 교수와 趙世衡 원장처럼 학문적 사승관계로 끈끈이 이어진 경우도 보인다.

    한편 趙憲泳, 蔡仁植, 孟華燮, 盧正祐, 申佶求, 金相孝, 李殷八, 朴仁圭, 韓南洙, 崔周若, 李炳幸 등 한의학의 신 영역을 개척해나간 선구자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들은 이론과 임상, 저술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상승시켰다.

    1990년대 한약분쟁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뚫고 현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들 현대 한의학 인물들의 치열한 삶의 결과이다.

    <- 1973년 개최된 제3회 세계침구학술대회 광경.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