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58

기사입력 2011.07.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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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韓醫들의 활동 '근대 한의학의 시작을 연 인물들'

    조선 말기 고종·순종 년간에 활동했던 韓醫들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온 한국 한의학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인물들이다.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 한의학의 전통을 계승한 데다가 개항이 되면서 서양의학과의 공존으로 한의학의 위기를 점차 인식하기 시작한 세대였다. 일부 인물들은 궁중에서 御醫로 근무하면서 세계 의료계의 변화를 느끼면서 진료를 하였고, 민간에서 활동한 인물들은 넓은 한의학에 대한 국민적 선호도를 바탕으로 사회적 입지를 굳혀 나갔다.

    궁중에서 御醫로 근무한 인물들은 『朝鮮王朝實錄』, 『承政院日記』, 『日省錄』 등 궁중의 역사 기록 속에 활동상이 나온다. 朴準承(1847~?), 洪哲普(1853~?), 徐丙孝(1858~1939) 등은 이들 기록에 고종·순종을 치료하는 모습과 치료의 공적으로 관직의 품계가 상승하거나 상을 받거나 지방관에 임명되는 기록들이 나온다. 이들 御醫들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1910년 이후에도 한의사단체의 설립, 한의학 교육기관의 운영 등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게 된다.
    李峻奎(1852~1918)는 1906년 『醫方撮要』라는 제목의 醫書를 간행하는데, 이 책은 고종의 명령을 받고 직접 지은 조선 최후의 관찬의서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李峻奎는 당대에 명망있었던 御醫로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醫書를 만들어달라는 고종의 뜻을 받들어 이 책을 짓게 되었다. 裵碩鍾(1874~?)은 御醫로서 1906년 개인적으로 喪을 당한 상태에서도 고종의 부름을 받았던 名醫였다.

    洪在 (1872〜?)는 구한말 궁중에서 가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제시대에 陰陽百草精이라는 약물을 개발하여 이를 대중화에 성공한 인물이다. 약물 개발로 얻어낸 대중적 인기로 그는 동아일보에 『醫方類聚』를 찬양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개항기에 민간에서 활동하면서 한의학 연구로 시대를 빛낸 黃度淵(1807~1884), 李濟馬(1836~1900), 李圭晙(1855~1923)의 3대 名醫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이들 세 인물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온 한국 한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 한의학으로 이어져 올 수 있게 한 學術大家들이다. 공통적으로 儒醫인 이들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로서 자신의 독창적인 의학적 학문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1898년 崔奎憲과 李鶴鎬는 大韓醫士總合所라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한의사단체를 구성하는데, 이 단체는 이후 한의사단체의 모태가 되었다. 이 단체는 1909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趣旨書를 내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때 발기인 명단에 들어간 인물들은 林炳厚, 金海秀, 金鎭夏, 金良濟, 洪鐘哲, 趙炳瑾, 金寬稙, 李海盛, 景道學, 盧驅榮, 張亨變, 鄭在轍, 李喜豊 등이다.

    1904년에는 張容駿(1867~?)을 중심으로 同濟醫學校라는 한의학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이후 한의과대학의 모태가 되었다. 이 학교에 都敎授로 선발되었던 金永勳(1882~1974), 田光玉(1871~1945) 등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劉鴻基(1831~?)같은 인물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백춘배, 정병하, 이종원 등 개화파 지도자들을 키운 ‘白衣政丞’이라고 이름이 높았다. 趙性燦(1865~?), 孫師濬(생몰년대 미상), 沈希澤(생몰년대 미상) 등은 이 시기 명의로서 장안에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었다.

    구한말 이들의 활동은 일제라는 길고긴 터널을 뚫고 지나갈 바탕을 만들게 되었다. 이들은 현대 한의학의 역사에서 정신적 자양분으로 작용되고 있다.

    <- 구한말 서울시가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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