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원 원장

기사입력 2011.06.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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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정과 콤플렉스론

    한방에서 병인의 하나로서 인간의 일곱가지 정서 즉 ‘노, 희, 사, 우, 비, 공, 경’ 이라는 칠정이 주요 병인이라는 사실은 황제내경부터 제시되었기에, 인간의 정신 현상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한의학의 이론은 그 역사가 약 2500여년 정도가 된 셈이다. 더욱이 사상체질의학에서도조차 애노희락이라는 네가지 정서를 체질에 따른 정신역동, 체질구분, 체질질병 등에 매우 중요한 점으로 제시하고 있기에, 한의학에서 칠정, 감정적 스트레스의 문제는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이론을 임상에서 적용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 같지는 않다. 이 이론이 맞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서 문제와 구조화된 신체적 질병의 상관관계, 그리고 치료에서의 역할과 작용 등에 대해서는 총론적으로는 동의되지만, 각론적으로는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병인으로서의 칠정’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과도한 감정의 동요라고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이 또한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 스트레스를 수용해서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는 주로 집단 무의식이라고 알려진 분석심리학이라는 독특한 정신병이론을 창안하고 그에 따른 치료법을 제시한 바가 있는데, 필자는 융의 이론 속에서 칠정의 문제를 이해할 단서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융의 심리학을 분석심리학이라고 하지만 초기에 융은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콤플렉스 심리학’이라고 명명했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쓸 것이다. 예를 들면 키가 작은 남자는 키 콤플렉스가 있다느니, 가난한 사람은 가난 콤플렉스가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융이 정의하는 ‘콤플렉스’란 ‘감정적으로 강조된 심리적 내용’ 또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심적 요소의 어떤 일정한 군집’을 말한다. 콤플렉스는 하나의 핵요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이 핵요소는 강한 정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자. 예를 들어보자면, 키가 작은 남성이 있다. 이 남성은 키 이야기만 나오면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쓰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키 작은 남성이 키 콤플렉스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키 작은 남자의 과거를 한번 상상으로 만들어보자. 이 작은 남자가 어릴 때 키로 인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거나, 여자 친구에게 거절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과거의 내용에는 이 남자가 키로 인한 열등감, 불편함, 수치심, 친구들에 대한 분노, 자신을 거절한 여자에 대한 적개심, 실망감 등등의 ‘감정의 덩어리’가 그 당시의 기억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이 남자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여자들은 나를 싫어한다라든가, 아니면 반대로 여자들은 모두 쓸데 없다라든가 하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남자가 느끼는 이런 내용들을 심리적인 내용이라고 하며, 이 심리적 내용에는 그간의 키로 인한 아픔과 고통 등이 감정적으로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여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물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건전한 상식과 심성을 가지고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극히 일부이겠으나, 이런 콤플렉스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남성은 ‘방어기재’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매우 권위적이 되거나, 아니면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비굴할 정도의 자세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이런 여성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매우 비굴했던 남성이 끝내 여성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아마도 보편적인 사랑의 상처로 인한 경우보다 더 큰 슬픔을 느끼거나, 또는 반대로 분노를 표시할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이성 친구에게 거절당한 후 부적절하게 반응하여 언론매체에 오르는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 때 느끼는 깊은 슬픔이나 분노 등의 감정의 특징은 때로 그 당사자의 자율적 의지와 자유의식을 압도하여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게 하고, 때로는 사회가 허용하게 되는 선을 넘어가 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융은 말하기를 “콤플렉스 영역이 시작하는 곳에 자아의 자유는 중지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콤플렉스는 의식을 자극하여 그 질서를 교란시킨다. 심해지면 의식의 자아는 콤플렉스에 사로 잡힌다. 콤플렉스가 자극되면 인간의 정서 감정은 불편해지고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

    유명한 일화로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은 주유를 분노케 하고 분노에 사로잡힌 주유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그 유명한 대사인 “하늘이 주유를 내었는데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내었는가”를 읊조리고,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 주유의 죽음을 설명하는 의학적인 해답은 천하호걸 주유의 과다한 음주,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간경화, 이로 인한 식도 정맥류 출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주유는 분노라는 칠정이 병인이 되어 죽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간기울결’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융의 이론을 빌려 말하자면 제갈공명은 주유의 콤플렉스가 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명은 주유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였고, 이에 주유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그 콤플렉스가 주유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유의 죽음이 의학적이 아니라 극적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정서적 자극에 의해서 심장 마비가 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융이 말하는 콤플렉스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복합, 또는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의식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한의학에서 칠정이라 하여 인간에게 마음과 몸에 질병을 일으킬 정도의 감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시적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삶을 통해서 장기간 형성된 감정의 덩어리, 즉 콤플렉스라고 이해된다. 그 콤플렉스의 양상이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쾌락이라는 양상으로 특정 상황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병인으로서의 칠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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