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53

기사입력 2011.06.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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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宇善의 儒醫論
    일제시대 어느 儒醫의 고뇌

    “유학자가 변신하여 의사가 되니 이는 정말로 웃음살 일이로다. 비록 그러하지만 유학자는 도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의사는 병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그 치료하는 기술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의사를 病工이라 하였으니 병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여 그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을 변화시켜 웃는 얼굴로 만드니 이것은 웃을 일이다. 어찌 크지 않은가. 이 책은 의사들의 기준이라, 그 대증하는 처방을 써서 새겨 세상을 구하는 의술로 삼으니 이 기술은 헌원과 기백의 왕도요 주된 다스림이다. 유학자가 옮겨 사용하여 능히 사람을 살리는 법을 두면 그 또한 진원의 생명수일 것이로다. 笑(근심을 웃음으로 바꾼다는 뜻)로써 책이름을 짓노라.”

    위의 글은 金宇善이 1914년 『儒醫笑變術』이라는 자신의 저술을 간행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책 제목인 ‘儒醫笑變術’은 “儒醫가 의학으로 웃음으로 바꿔주는 기술”의 의미이다.

    1928년 金宇善의 아들 金在溶이 이 책의 이름을 『醫家秘訣』이라고 바꾸어 간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跋文을 썼다.

    “범문정이 일찍이 사당에서 기도하여 말하기를 ‘제가 재상이 되어서 천하의 사람을 구제하게 해주시거나 아니면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천하의 아픈 사람들을 구제하게 해 주소서’라고 하더니, 나중에 과연 재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송나라 사람들의 복이다. 아버지께서는 집을 본받고 벼슬을 물리쳐 유업에 종사하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셔서 나라를 치료하는 기술을 얻으심이 있으셨다. 겨우 관직을 얻으셨는데 그 때 정국이 매우 통탄스러워 비록 程伊川 先生의 백성을 오래살도록 하는 방법으로도 쉽게 효과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관직을 벗어던지고 대동강을 건너 고향으로 내려와 구기자 우거진 곳에 홀로 거처하셔 향초를 캐고 약초를 심고 황제, 기백, 화타, 편작의 뭇 서적들을 구하셔서 읽고서 말씀하시기를 ‘내 비록 재주는 없지만 일찍이 등용됨에 뜻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그것은 그만두었다. 내가 지금부터 의학을 공부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유학자가 변하여 의사가 되니 또한 가히 웃기는 일이다’하셨다. 이에 따라 비밀스럽게 기록하신 것과 신묘한 처방의 핵심을 수집하여 두 책을 만들어서 모든 집안사람들과 이웃마을에 시험해보고서 이를 바탕으로 고을이나 현 사람들에까지 미쳤으니 쓰기만 하면 곧바로 효과를 보아 오랫동안 신통한 효과를 보았는데 천하가 제 때(좋은 정치)를 만나지 못해서 천하 사람들의 고통을 다 구할 수 없었으니 매우 안타깝도다. 범문정은 다행히 관직을 얻어서 당시의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나 아버지께서는 불행하게도 관직을 얻지 못하여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오래살게 하는 방법을 시험해 보지 못하셨다. 이 책은 족히 사람의 목숨을 거듭나게 할 수 있으니 이에 백세토록 병을 앓는 사람들의 복일 것이로다.”

    아들 金在溶은 부친 金宇善이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儒醫로 생활하게 된 과정의 전말을 넌지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겨우 관직을 얻으셨는데 그 때 정국이 매우 통탄스러워 비록 程伊川 先生의 백성을 오래살도록 하는 방법으로도 쉽게 효과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서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儒醫笑變術』이 나온 해가 1914년이고 金宇善이 의학 연구에 전념한 것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면 金宇善이 벼슬을 버리고 대동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온 시기가 통감부를 설치하고 일제의 간섭이 시작된 1905년 무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지배하에 관직을 유지한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韓醫學에 귀의하여 濟世의 길을 걸으면서 儒醫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 김우선의 유의론이 적혀 있는 자신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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